• "교회 통해 노동운동 길로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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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04일 11: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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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 광부가 향수병으로 해고 되었다는 거였다. 혜린이 너도 이제는 노동운동가가 됐으니, 이 얘기를 듣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향수병’ 말이다.

    해고된 광부는 레크링하우젠에 있는 에발트 광산에서 일하는 김영(가명)라는 사람었다. 그는 지하막장에서 작업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의사한테 가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병가를 끊어줘 쉬었는데도, 계속 일을 하기 힘들 정도로 허리가 아팠다.

    ‘향수병’과 해고

    하는 수 없이 그는 다시 의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 의사가 그에게 ‘향수’이라며 병가를 끊어주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는 다른 의사를 찾아갔다. 새로 찾은 의사가 병가를 끊어줘서 쉬고 있는데 해고장이 날아온 것이다.

    같이 공부하던 우리 학습조는 이 소식을 교회에 알리고, 이삼열 박사는 변호사를 통해 노동재판소에 부당해고 소송을 시작하고, 또 교우간호사 한 분이 허리가 아픈 한인 광부를 자기가 일하는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진찰을 받게 한 후 수술을 해서 병이 나았다.

    김영은 교회에 다니지 않았는데 이 일이 생긴 후부터 교회에 나왔다. 당시 한인 광부들은 주독 한국대사관과 일부 ‘애국주의자’들이 장성환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들에 대해 빨갱이 목사, 반정부 교회라고 선전하고, 그런 교회를 다니다가 귀국하면 남산(중앙정보부) 끌려간다는 협박성 소문 때문에 교회에 나가기를 꺼렸다. 겁이 나서 교회를 다니지 못하는 광부들이 많았다.

       
      ▲막장에서 작업 중인 파독 한인 광부. 

    그런데 에발트 광산의 한인 광부들은 내가 경험한 광산과는 노동 조건과 기숙사 환경이 너무 달랐다. 노동 조건의 경우 내가 거쳐온 뒤스브르크 함본 광산, 딘스라켄 로벡 광산, 카스트롭 에린 광산 등 3개 광산에서는 내 노동력으로 힘에 부치는 작업장을 피해 조건이 맞는 곳을 선택하는 게 어렵지 않았단다.

    헌데 에발트 광산의 한인 광부들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가 않았으며, 그 막장은 임금도 도급제였다. 월급제가 아니라 일한 만큼만 주는 제도였다. 아빠처럼 작업장을 선택할 기회도 받지 못한 채, 많은 한인 광부들은 그 막장에 소속됐고, 작업장 이동을 자신이 선택할 수도 없다는 거였다. 

    권력자가 된 한인 통역

    돈을 벌려고 독일까지 온 한인 광부들은 이런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 사람인 광산통역에게 부탁하는 일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광산통역은 그걸로 권력행사를 하고 있었다. 통역은 자기한테 굽실거리고, 아부 잘하면서 선물을 바치거나, 돈 몇푼을 옆구리에 찔러 주는 사람들에게 ‘특별 케이스’로 작업장을 이동해줬다. 그는 한인 광부들의 구세주처럼 행사했다. 

    그뿐만 아니다. 질병보험에 가입했는데도 광산 지정 의사가 있는 거처럼 해서 한 의사한테만 가서 진료를 받게 하는 만들어 놓았다. 다른 의사 한테 가면 ‘향수병’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해고하는 일도 통역과 병원 의사가 짜고 하는거 같았다.

    기숙사 환경도 그렇다. 에발트 광산에는 3층짜리 기숙사 건물에 샤워장은 지하에 몇 개밖에 없었다. 아빠가 처음 도착한 74년도 내가 있던 기숙사는 각 방마다 화장실과 사워장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에발트 광산은 각 층에 부엌이 하나밖에 없었다. 광부들이 자는 방에는 이층침대까지 있는데다가 기숙사 옆에 바로 기차길이 있었다. 헌데 받는 세는 오히려 더 많았다.

    그런데 아빠한테는 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아마 너도 알 것 같은데 우리 집안 고모 아들이 나보다 먼저 파독광부로 왔었다. 그 형은 나의 약혼식과 결혼식에도 참석했고, 너를 무척 예뻐하며 보듬고 다녔다. 그 형이 내가 독일에 도착한 지 얼마 안 지나 고향 사람을 만나러 가자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주말에 그 형과 함께 고향 사람의 집을 방문해서 걸쭉하게 대접도 받고 즐겁게 놀다가 온 적도 있었다. 그데 그때 우리한테 자상하게 잘 해주던 자상하던 그형이 이 광산의 통역이 되어 있었단다.

    ‘외인 출임금지’

    그 다음 날 난 통역을 찾아갔다.

    "형, 좀 해결책이 없을까요?"
    "뭐, 나는 그냥 직원이지 않어?"
    "일이 힘들면 작업장 이동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형이 좀 협조하면 된다고 허는데."
    "어~허, 누가 그려? 나는 그냥 통역만 허지 뭐를 더 혀."

    그리고 그 다음날 또 에발트 광산 기숙사에 갔는데 기숙에 입구에는 ‘외인출입금지’라고 써져 있는 종이가 벽에 붙어 있었다. 김영 사건 후 에발트 광산 주변에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해고당하면 강제 출국당하는 거였는데 재판을 할 수 있었다.

    광산에서 의사를 지정해서 진찰하게 할 수 없다, 광산에서 작업장을 이동할 수 있다, 이런 소문들이 퍼져나갔다. 그 동안 한인 통역은 파독 광부와 독일 광산의 소통이 자기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점을 이용해서, 자기 스스로 권력을 만들었는데, 이제 그런 소통 구조가 투명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한국 정부 대사관에 충성하여 이른바 ‘애국’도 하고 자기 이권도 챙겨왔던 그들이 ‘불순한 세력’의 움직을 막기 위해 머리를 쓴 것이 고작 ‘외인출입금지’ 벽보였던 것이다.

    난 무조건 쳐들어가서 사진부터 찍었다. ‘외인출입금지’ 써붙여 놓은 것을 말이다. (오른쪽 사진. 사진기는 엄마가 항상 혜린이의 예쁜 모습 많이 찍으라고 사주서 들고다녔는데, 역사적인 사진을 ‘찰칵’ 한거다)

    그리고 난 후 나는 곧바로 기숙사 관리실에 갔는데 통역을 없고, 독일 관리인만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저걸 누가 했냐? 저건 비인간적이다!" 그들은 그냥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모른다."고만 했다.

    "Wer hat so gemacht? Das ist unmenschlich." 난 그때 독일어를 잘 하지 못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때에는 나도 모르게 멋진 독일어나 입밖으로 나왔다. 

    연극을 하다

    난 보쿰교회 임원회에서 이 내용을 보고하고 좀더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자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에발트광산 통역이 뭘하고 있는가?’, ‘에발트 광산 한인 광부들과 다른 광산 한인 광부들의 차이가 뭔가?’ 하는 점을 집중 조사해서 비교해 보자고 제안했다.

    보쿰교회 임원회는 나의 제안을 받아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로 하고, 이제부터 선교 활동도 현장을 찾아가는 것부터 일부는 시작하자는 제안도 통과되었다. 이미 도급제 막장에서 일하는 한인 광부들의 호소가 알려져 있고,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진정서를 내는 대책을 논의하는 중이었다. 교회는 대책반을 만들어 잘 움직였다. 그런데 그 진정서를 낸 한인자치회 광부회장이 해고가 되고 만 것이다.  

       
      ▲에발트광산 한인자치회 송대근과 독일 변호사.

    학습 모임 토론에서 연극을 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마침 이삼열 박사가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독일교회(EDK)의 지원으로 한인상담소를 개설할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상담소가 문을 여는 날에 그 연극을 하자고 이 박사한테 제안했더니 그는 엄청 좋아했다. 우리는 그날 연극을 하게 되었다. 

    그 연극의 제목은 "나는 어떻게 해!"(Was soll tun!)
    나는 우리 스스로도 한인 광부들 문제를 잘 모르니, 이 기회에 김영 사례를 연극으로 만들어서 교회 별관에서 공연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모두가 좋다고 해서 목사님께 말씀드리고, 이삼열 박사 협조를 얻어 보쿰교회에 별관에서 우리는 재독한인 광부 사례극 "나는 어떻게 해!"(Was soll tun!) 연습했다. 이삼열 박사의 한인상담소 개설 축하 공연으로 했는데 그 반응은 대단했다.

    광부들은 작업현장에서 자기들의 모습을 별 의식하지 않았는데 자기들의 모습이 무대에 올려지니 처량했던지 눈물을 흘리고, 가족인 마누라들은 늘 출근 모습만 보다가 자기 광부 남편이 저렇구나 보다가 눈물을 흘리고, 그랬단다.

    헌데 에발트 광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마구 터졌다. 지금까지 밝혀진 기숙사 문제, 작업장 이동문제 이외에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이번엔 대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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