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로' 죽으러 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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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7월 01일 06: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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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6일 진보신당 당 대회는 전국위원회가 상정한 안건 중 아무 것도 처리하지 않은 채 끝났다. 5. 31 연석회의 합의문은, 당 대표가 서명한 문건임이 “인정”되었을 뿐, 다시금 당 기관 어느 곳의 심의도 거치지 않은 물건으로 남았다. 사실 전국위원회도 이 합의문 승인 안건을 당 대회에 상정만 했을 뿐 내용 심의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절차다. 당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사안을 당의 공식 의결 기관 어느 곳에서도 한 달이 넘게 심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정의 순간을 다시 두 달 뒤로 미뤘다. 적어도 지금 이 국면에서 진보신당은 하나의 ‘정당’으로서 이미 작동을 멈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신당 하나로’의 승리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5. 31 합의 이후 갑자기 등장한 ‘진보신당 하나로’ 흐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대회 사흘 전 밤에 당 내 각 흐름의 대표들(대개 비공식적)을 모아 중재안을 논의하게 한 것도, 범독자파 내에서 중재안 반대 여론이 강하다는 게 확인되어 합의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당 대회 전날 시도당위원장 서명을 받아 이것을 의장단에게 제출한 것도 ‘진보신당 하나로’ 흐름의 힘이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일들이 당 내에서 호응을 얻고 최소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여론 지형을 만들어낸 게 ‘진보신당 하나로’ 흐름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있었다. 우선 ‘진보신당 하나로’ 흐름은 분명 상당수 당원들의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에 바탕했다. 통합파 성향이든 독자파 성향이든, (당의 명망가 정치인들과는 달리) 진보신당을 사랑하는 당원일수록 6월 26일에 당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러한 당원들이 ‘진보신당 하나로’라는 구호 아래 결집했다.

    따라서 6. 26 당 대회의 비정상적인 결과를 당 상층부의 담합의 산물로만 볼 수는 없다. 그 이면에는 지금 당장 쉽게 정리되기 힘든 당원들의 심리 상태가 있었고, 이에 따른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을 함께 보아야 한다. 그것은 ‘진보신당 하나로’ 흐름이 만들어낸 결과가 결코 합리적이거나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고, 더구나 이것이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진보신당이 민노당과의 통합 논의에 휩싸인 지난 몇 개월 동안 이미 이 당을 지배해온 것은 ‘진보신당 하나로’ 정신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몇 달 전부터도 이 정신은 특히 독자파 성향 당원들 사이에서 더 강했다(나부터도 그랬다). 그 결과가 곧 통합 주도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양보였고, 그 최종 산물이 5. 31 합의문이었다. 따라서 ‘진보신당 하나로’ 흐름을 당원들의 자발적인 결집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결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진보신당을 지배해온 봉합 상태의 연장 요청에 다름 아니었다.

    아무튼 당 대회는 이렇게 ‘진보신당 하나로’의 메아리 속에 끝났다. 하지만 이 메아리의 울림은 딱 여기까지만이다. 이제 더 이상 ‘하나로’를 외쳐서는 안 된다. ‘하나로’ 모여 있을 두 달이라는 시간을 번 것을 뿌듯하게 기억하며 ‘진보신당 하나로’ 흐름은 시의적절하게 자신의 생을 마감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선택의 순간을 더는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에 민노당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통합한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길일 뿐이다. 아무리 “우리 하나로”라는 구호가 아름답게 들린다 할지라도, ‘하나로’ 죽으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살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하나라도 더 많은 동지들을 모아 살아남아야겠다. 이런 일이 급한 때에 ‘하나로’라는 구호는 이제 사절이다.

    앞으로 2개월간 필요한 것은 논쟁이 아니다

    대의원대회에서 몇몇 대의원들이 이렇게 발언했다. 2개월의 유예 기간 동안 통합/독자 논쟁을 제대로 해보자고. 대의원대회 끝난 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통합파와 독자파가 진검 승부를 해보라고.

    ‘승부’는 좋다. 하지만 이것이 ‘논쟁’이어서는 안 된다. 결코 ‘논쟁’일 수는 없다. 논쟁을 하려면 지난 몇 달 동안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부족하니 지금 와서 논쟁을 하자고 한다. 그럼 그 논쟁의 10회 연장전이 시작되면, 막상 필요한 ‘행동’들은 언제 해야 하는가? 다시, 9월부터?

    내가 보기에 우리가 열심히 논쟁하고 나서 8월 말이나 9월 초 임시당대회에서 들을 말은 빤하다. 당의 명망가 정치인들은 오직 이 한 물음을 입에 담아두고 이때를 득의만만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벌써 9월이고 총선 국면은 시작됐는데, 당신들 무슨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제 다른 길은 없다.” 이 몇 마디에 범독자파 성향 대의원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그 가을이 어떤 이들에게는 몹시도 기다려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논쟁만 하고 있지는 못하겠다.

    2011년 정기대의원대회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종합실천계획’만 채택한 게 아니었다. 그와 함께, ‘당 역량 강화 종합실천계획’도 통과되었다. 그러나 후자는 민노당과의 통합 논란 속에서 사문서가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이 계획 또한 ‘진보신당 강령’으로부터 ‘진보정당 10년 평가 보고서’, ‘비전 2010’, ‘당 발전전략’ 등 진보신당이 생산한 훌륭한, 하지만 책장에 갇힌 문서들의 긴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다.

    앞으로 두 달간 우리는 이 문서의 자발적 실행자가 되어야 한다. 통합 논란 속에서 주인을 잃어버린 이 문서의 내용들 중 당 발전전략의 비전 구체화, 활동가층 조직화, 총선 준비와 같은 과제들에 착수해야 한다. 그래서 이 여름이 끝날 무렵 저들 과거회귀론자들이 ‘무장해제된 당’이 아니라 ‘이미 제 갈 길을 가는 당’을 마주하며 오히려 선택의 순간에 마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제 앞에서 우리에게는 절망할 시간도 없고, 논쟁에 머물 여유도 없다.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 이 글은 7월 4일에 발간될 <진보작당 뉴스레터>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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