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 거주자 무력감 재확인"
    By
        2011년 07월 01일 10:04 오전

    Print Friendly

    저는 지금 이 글을 다소 상심한 상태에서 씁니다. 상심한 이유는, 노르웨이라는 국가의 ‘질서’와 부딪친, 일개 외국인 거주자로서의 저의 무력함을 재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아프고 감정이 혼란스러운데, 일단 독자 여러분들께 유익할 수 있는 어떤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 제 감정을 가다듬고 순서대로 이야기해나가겠습니다.

    노르웨이 국가질서와 부딪치다

    저는 보통 매년 7월마다 국내로 가곤 합니다. 학회와 강연 등이 보통 방학인 이 때에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가다가 제 가족들도 저와 함께 국내로 일시 귀국하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6개월짜리 신생아인 저희 딸 ‘사라’를 유모차에 실어 관할 경찰서의 외국인계에 가서 딸의 영주권을 신청했을 때에, 그 계획은 뿌리째 흔들리게 됐습니다. 저희들의 신청서는 접수 후 처리 기간이 "약 4개월 정도"라고 통보됐는데, 그 처리 기간에 해당되는 7월에 신생아인 ‘사라’가 외국 나들이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원칙상은 안됩니다. 원칙상 영주권 심사처리 기간에 영주권 신청인이 국내에 있어야 하며, 국외로 나갈 경우에는 체류 자격이 없음으로 재입국 보장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이 암스테르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남한에 가겠다는 것이라고요?

    글쎄, 이 경우에는 노르웨이가 가입돼 있는 유럽연합 중심의 솅겐(Schengen) 조약 자유여행권의 외부 국경을 암스테르담에서 넘게 되니 암스테르담 국제공항 여권심사대 심사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는 것이죠. 원칙상 체류자격이 없는 영아를 체류자격이 있는 일가와 함께, 분명히 영주를 목적으로 하려는 상황에서 그냥 들여보낼 수는 없지만, 어쩌면 영아라고 봐줄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좌우간 책임 못집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아연실색했는데, 곧바로 옛날 저희 대학 신문에서 읽은 이야기가 기억났습니다. 학생 사증 갱신에 소요되는 기간이 8개월 정도 될 수 있기에, 수많은 재노르웨이 외국인 석사, 박사과정생들이 사증 갱신 처리 중일 때에 해외 학회 참석을 하고 싶어도 노르웨이를 떠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옛날에 읽었다는 것입니다(http://universitas.no/nyhet/53117/uten-rettigheter-i-manedsvis/).

    외국인, 유죄 추정 범죄 예비군

    아니, 노르웨이가 좋아서 공부하러 온 사람을 국가의 포로로 삼아도 되느냐고, 의분을 느낀 바 있었던 것도 이제 기억났습니다. 단, 저는 그 기사를 읽었을 그 당시에, 한 돐도 되지 못한 제 딸에게도 똑같은 잔혹한 규칙이 적용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외국인 관리 정책의 차원에서는 외국인 박사과정생이든 제 딸이든 똑같이 "무죄가 판결되기 전에 유죄로 추정되는 범죄자 예비군" 정도입니다. 하자가 없어 체류자격이 부여될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는, 관리/통제 대상자뿐인 외국인은 일단 ‘하자 있는 인간’으로 분류돼 원칙상 입국 불허됩니다.

    물론 이것은 철칙은 아닙니다. 여권 검사하지 않는 ‘Schengen 조약 자유여행권'(유럽연합가입국들과 노르웨이 등 유럽경제구역의 일부 국가) 안에서는 움직여도 현실적으로 큰 장애는 없고, 또 정말 저희와 같은 영아의 경우에는 어쩌면 어머니의 눈물어린 읍소 앞에서는 국경 수비대 대원은 마음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안움직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일단 원칙은 하나입니다. 검증 받지 않은 외국인 거주자는 ‘적대적 타자’로 추정되며, 국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타자에 대한 제반 검증'(체류자격 심사)은 무제한적으로 긴 시간을 요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10~11개월 동안 사증 갱신을 기다렸던 외국인도 만난 적은 있었습니다.

    노르웨이/유럽 국경 안에서 갇힌 ‘관리 대상자’에게야 미치도록 불편한 일이지만, 국가 입장에서는 관리 대상자의 불편은 아무 의미도 가지지 않습니다. 감시/통제의 대상물에게 그 어떤 인간적 감정들도 인정되지 않는 것이죠.

    호미 파파의 혼종성 이론

    저희 가족의 거취는 아직 미정입니다. 저야 어차피 국내행해야 하지만, ‘사라’ 어머니는 무거운 심정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신생 손녀를 조국에 계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보여드리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아이 건강에 매우 나쁠 수 있는 강제 송환의 가능성이 있는 한 그저 참고 살아야 할는지, 이민청(http://www.udi.no/) 등 우리들을 관리하는 국가 부서에 전화해서 이것저것 문의를 한 뒤에 책임지고 결정을 해야 할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거취 등 우리의 사적인 문제와 무관하게, 한 가지 공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듯합니다. 요즘 종속이론 등 중심부와 주변부의 불평등한 관계를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이론보다 ‘포스트’ 담론에 도취한 학계에서 더 인기 있는 이론은 호미 파파 (http://en.wikipedia.org/wiki/Homi_K_Bhabha) 등의 ‘혼종성'(hybridity; 混種性, 雜種性, 交配)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식민지적/유사식민지적 상황에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만남은 꼭 복종/저항 관계뿐만 아니라 문화 교류, 나아가서 ‘혼합적 문화의 탄생’ 등을 낳으며, 결국 지배자와 피지배자 양쪽을 긍정적으로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이론을 한국사에 적용시키자면 식민지 시기 말기의 아리랑 등 ‘이색적인 조선의 원한 어린 소리’가 일본 ‘내지’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나, 조선에서 신파극이나 엔카(演歌)와 계통적으로 유관한 듯한 ‘뽕짝’ 리듬의 트로트가 인기를 얻었던 현상을 주목해야 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이론을 꼭 맹목적으로 반대하지 않습니다. 억압적 상황이라 해도, 두 인간집단의 만남이란 어떤 생산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죠. 억압적 체제와 무관하게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떤 보편성을 내포하니까요.

    ‘포스트 이론’ 무조건 배격 곤란하지만…

    또한, 억압적 상황을 타파해보려는 시도에서도 대개 어떤 ‘혼종성’이 포착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어로 된 공산주의 서적을 읽고, 일본 동지들과 함께 일본 땅에서 공산주의적 해방 운동을 전개하신 김천해(金天海) 선생님이라든가 최익한(崔益翰) 선생님 등은 바로 이와 같은 ‘혁명적 혼종성’을 대표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포스트 이론’이라고 해서 좌파가 무조건 배격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오늘날 노르웨이를 봐도 노르웨이와 이민자들 사이의 관계에 어떤 ‘혼종성’이 포착되긴 합니다. 중동 음식인 케밥을 애호하는 젊은 노르웨이인들도, 노르웨이 국내 유력 논객이 된 이라크 출신의 발린 알 쿠바이시 선생(http://no.wikipedia.org/wiki/Walid_al-Kubaisi) 같은 분들의 존재도, 노르웨이 급진 정당, 사회단체에서의 이슬람권 출신의 큰 역할도 이를 증명합니다.

    저희 외국인 거주자들이 노르웨이 국가의 ‘관리 대상자’ 위치에 있어도, 우리의 존재가 어떤 혼합문화를 잉태시키는 것은 사실이죠. 그런데 호미 파파의 이론을 절대시하여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을 파기하는 것도 금물이라고 봅니다.

    ‘혼종성의 탄생’이라는 한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르주아 국가는 이민자들을 관리, 통제하고, 그 노동이 자본에게 무탈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제반 조건을 조성해주는 것이고, 이 상황은 ‘유사 식민지적 상황’이라고 규정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당한 폭력성, 강제성을 띠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국가가 우리를 일종의 ‘유사 포로’로 삼아 관리, 통제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는 중무장한 수비대가 관리하는 유럽연합의 국경을 국가의 허락없이 넘나들 수 없기 때문이죠. 관리자들이 중무장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떤 무장도 당연히(?) 허용되지 않고, 국가와의 무장 대립을 시도해보려는 이민자는 당장에 ‘테러리스트’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국가, 무장한 관리자들의 부대

    결국 레닌의 정의대로 국가의 골간이란 ‘무장한 관리자들의 부대’인 셈이죠. 혼종성이라는 현상은 인정돼도, 기본적으로 이민자 등 수많은 내부 식민지들을 거느리는 자본주의 국가는 폭력에 기반을 둡니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 국가를 전복시키고 무계급사회를 건설하는 과정도 아마도 불가피하게 결국 폭력적 측면을 띠게 될 것입니다.

    물론 사회주의자의 신성한 의무는 가능한 한 폭력을 제한시키고 인민들의 조직화의 최대화를 통해 비폭력적 혁명의 이상을 달성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이상은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달성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역사적 경험은 단순한 대답을 내주지 않습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