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협약 밥상 차리기'가 뭐예요?
By
    2011년 06월 30일 05:25 오후

Print Friendly
   
  ▲교육에 앞서 간단한 몸풀기 게임으로 긴장을 풀었다.

"숙제는 해오셨습니까?"

"숙제는 다들 해오셨어요?"
"하긴 했는데, 맞는지 잘 모르겠어. 열심히는 봤는데…"
"뭘 알아야 숙제를 하지…"
"난 잘못해왔나 봐… 지금보니깐 다른 학교 꺼네.. 어쩐지 우리 꺼보다 좋더라고."(웃음)

유안나 서경지부 조직차장의 물음에 여기저기서 대답이 돌아온다. 모두 뽀글머리를 한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분들이다. "아이고. 다른 대학 꺼는 비교해보라고 드린 건데.. 지금이라도 한번 읽어보세요."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던 사람들이 어느새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단체협약문이 적힌 종이를 들여다본다.

지난 6월 22일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열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미화간부교육. 이날 교육 과정인 ‘단체협약 밥상차리기’ 교육을 듣기 위해 고려대, 동덕여대, 덕성여대, 이화여대, 연세대 등 서울지역 여러 대학에서 청소일을 하는 미화노동자들이 모였다.

   
  ▲중요한 단체협약 요구사항을 결정하기 위해 조별 토론을 벌였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체협약을 가지고, 말 그대로 ‘밥상’을 차려보는 수업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협요구안을 ‘밥’ 모양의 그림에 적고, 그 다음은 김치, 찌개, 나물 모양 그림에 적는 식이다. 이 수업을 위해 진행팀에서 ‘각 사업장별 단체협약 읽어오기’ 숙제를 미리 내줬다.

교육은 강사의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가 아닌 조별 토론과 발표로 이뤄졌다. 먼저 교육에 참석한 노동자가 5~6명씩 조별로 모여 중요한 단체협약을 선정하기 위한 토론을 진행했다.

"우린 건물 밖 껌 떼는 것도 시킨다니까"

2조의 보조진행을 맡은 강현주 공공운수노조 서울본부 조직부장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안 지켜지는 단체협약을 물어보니, 학교에 쌓였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먼저 외곽 청소 등 부당한 업무 지시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

"우린 눈 오면 눈까지 치우게 해. 이런 외곽청소는 시키면 안되게 돼 있는데."
"우리도 그래. 아직도 건물 밖에 껌 떼는 것까지 시킨다니까."
여러 학교 미화노동자들이 모이다보니, 다른 학교와 비교해 좋은 부분과 안좋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비교되면서 얘기가 진행됐다. 

"동덕은 돈 들어가는 건 안 지키는 것 같아."
"우리는 3분의 2 정도 지키고, 3분의 1은 안 지켜."
"덕성은 그래도 다 잘 지키는 것 같은데."
"고대는 노조 활동 보장이 잘 되는 편이야."
"덕성은 정년이 63세인데 고대는 70세라며?"

   
  ▲밥상에 빠지지 않아아 할 밥과 반찬에 단체협약 요구사항을 기록했다.

30여 분 동안의 열띤 토론이 끝난 후 가장 중요한 단체협약을 적는 밥모양 그림에는 ‘시급 5,410원’이, 국 그림에는 ‘휴가시 대체근로 투입’, 김치 그림에는 ‘정년 70세’가 적혔다.

토론을 마친 후, 이렇게 결정된 단체협약 밥상을 조별 대표가 들고 나와 다른 조에 설명하는 발표 시간이 이어졌다. 발표자들이 발표를 하면 미화노동자들이 "우리 학교도 그런데..", "맞아 맞아." 하고 맞장구를 쳤다.

시급 5410원, 휴가시 대체근로, 정년 70세

"우리는 가장 중요한 단체협약이 월차로 나왔어요. 동덕여대가 복리휴가가 없다고 해서요. 그동안 은행업무는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3조의 발표자로 나온 고려대분회 이진숙 조합원의 얘기다.

"저희는 고용안정과 임금을 가장 중요한 걸로 뽑았어요. 단체협약에 업체 변경하면 고용안정한다고 돼있어도 언제나 불안하고, 제대로 안되고 그러잖아요." 1조는 발표자로 나선 고대분회 이화순 조합원의 얘기에 어느 분이 한 마디 거든다. "정년도 그렇지, 나이를 다시 줄일 수도 있고…"

서경지부 미화간부교육은 공공노조, 서울본부, 서경지부 공동으로 2009년부터 진행돼왔다. 기본교육 과정과 심화교육 과정으로 나눠지는데 월 1회 약 7번에 걸쳐 8개월 동안 진행되고 한 차례 교육에만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조별 발표자가 나와서 단협 요구 사항의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또 ‘학교’ 형식으로 입학식, 방학, 졸업식 등이 있다. 2009년에 기본과정을 수료한 20여명의 간부들 중 15명이 지난해 심화과정까지 모두 이수했다. 이날 교육에 참석한 17명은 지난해 기본교육을 마친 40여명의 신임간부 중 기본교육과정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 간부들이다.

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다. 동덕여대 양예순 조합원은 "교육 받기 전에는 단체협약 내용도 조합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식이어서 이렇게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며 "노조가 그냥 막연히 좋은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교육을 들어보니 꼭 있어야 되는 게 노조라는 생각을 했으며, 자부심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간부미화교육 기획을 함께 한 유안나 조직차장은 "생계를 책임지기도 하고, 가사도 도맡아 해야 하는 이분들의 조건 속에서 8개월짜리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며 "익숙치 않은 토론과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데에도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교육은 한 회, 한 회 준비하는 사람들이 더 큰 감동을 얻어갈 만큼 생동감 있게 진행됐고, 교육을 이수한 간부들은 현장에서 훌륭히 자기 역할을 수행해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