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체제 복원이 새로운 정당 건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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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6월 24일 02: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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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승수-이정희 합의문의 통과 여부를 최종 판단할 진보신당 당 대회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시점에서 아주 상식적인 질문을 해보고 싶다. 과연 구체제를 복원하는 것이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일까?

    여기서 구체제란 ‘분당 전 민노당체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분당 전 민노당체제란 무엇일까? 이를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넘어 갈 필요가 있다. ‘구 민노당체제’란 사회 발전 전략 차원에서는 ‘자주파와 평등파가 민주노총이라는 인적 물적 기반을 공유하는 동거체제’ 이며 집권전략 측면에서는 한나라당-민주당-민노당의 3분할 체제를 의미한다. 이를 복원하자는 것이 ‘도로 민노당’ 구상이다.

    지난번 조승수-이정희 합의문의 본질은 북한 문제에 대한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시각 차이를 무시하자는 것에 있다. 즉 ‘네 말도 맞고 내말도 맞다’는 것이 그 합의의 본질이다. 이것은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기 보다는 무시하자는 전략이다. 이는 진보신당의 3월 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이 설정한 협상 가이드라인을 완전히 묵살해 버린 도로 민노당 선언이다.

    따라서 사회당은 거부하고 민주노총이 적극 주도한 이번 합의의 본질은 누구나 다 인정하듯이 ‘구체제의 복원’이다. 그냥 복원도 아니고 전문가의 고증을 거친 완벽한 복원이다. 조승수-이정희 합의문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도로민노당 선언이다. 아마 이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2.

    그런데 도로 민노당의 결성은 진보신당의 소멸을 의미한다. 패권주의 때문이 아니라 진보신당이 내세웠던 정치적 구호와 실험이 폐기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진보신당은 ‘친북당’, ‘민주노총당’을 탈피하자는 취지로 분당을 감행했다. 북한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진보정당, 민주노총의 지배를 받지 않는 노동자 대중정당을 만들자며 ‘진보신당’의 깃발을 들었던 것이다.

    이 정당이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민주노총에 기반한 자주와 평등의 동거체제로 회귀한다는 것은 그 이유가 어디 있건 이 실험을 포기한다는 말이 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진보신당의 20대 지지율은 7%에 이르고, 지난 총선 당시 서울지역 지지율은 4% 수준이었다. 진보신당이 그동안 민노당과의 차이를 대중적으로 설명한 바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볼 때 이것은 매우 신기할 정도의 지지율이다.

    도로민노당의 재결성은 ‘진보신당 자신도 잘 모르는’ 이러한 대중의 소망을 담아줄 그릇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신당이 나중에 정권을 잡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다음 문제다. 민주노총과 북한 문제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새로운 진보정당의 꿈! 그 정치적 씨앗이 완전히 사라지도록 방관할 수는 없다.

    3.

    분당하기 전 민노당은 한 마디로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정당이었다. 내부 이견으로 "북한 핵무기 반대"라는 논평조차 내지 못하던 당이었다. 그 과정을 보며 우리는 민노당이라 부르는 정치적 축적 체제 즉 민주노총에 기반을 둔 자주와 평등의 동거체제가 어떤 임계치에 왔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도로민노당파가 그토록 갈망하는 ‘분당 전 민노당’은 인지도 ‘만땅’ 수준에서 지지도 5%짜리 한계정당이었던 것이다.

    이번 조승수-이정희 합의문은 도로 민노당의 미래를 상징한다. 새로 결성될 도로 민노당은 앞으로 북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새벽 4시까지 조승수랑 이정희가 뭔가 길고 복잡한 합의문을 만들어 오길 기다려야 한다.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민노당 세력과 진보신당 세력이 공정한 합의 틀 안에서 평화롭고 합리적으로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로 민노당을 꿈꿀지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정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두 체제가 공존하는 연방제 통일이란 권력의 속성상 불가능한 일이다.

    한쪽의 힘이 한쪽을 압도해서 역학 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한 통일은 없다. 궁극적으로 다른 꿈을 꾸는 이상, 자주와 평등이라는 두 세력은 같은 당이라는 껍데기를 쓰건, 다른 당이라는 형식을 취하건 어차피 통일은 안 된다는 얘기다.

    4.

    어떤 사람들은 합당 안이 부결 되었을 경우, 노회찬-심상정-조승수가 탈당하는 사태를 우려한다. 그러나 나는 과연 그 사람들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인지, 의문이 든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었다면 셋 중에 한둘도 아니고, 셋 중에 셋이 다 모여 있는 진보신당이 지금 이 지경이 되어 을까? 오늘 진보신당의 모습은 번갈아가며 당 지도부를 맡아 온 노심조의 무능을 상징한다.

    진보신당은 노출된 한계를 빠르게 정리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이 다시 자리를 만드는 변증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이 시민단체와 다른 근본적인 차별성은 아무리 작은 당이라 해도 ‘권력의지’를 기본 원리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당이 권력의지를 기반으로 조직되어있는 이상, 지도력이란 마치 쓰레기통처럼 늘 비워졌다가 다시 채워지기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오히려 위기 속에서 늘 새로운 지도력이 만들어진다. 생각을 해보자. 이정희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심조가 떠난 민노당이 지도력 붕괴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동안 진보진영은 승진 적체에 시달려 왔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음이 떠난 사람은 편하게 배에서 내려줘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적으로 원수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부담 가질 필요도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당 내부에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새롭고 참신한 권력의지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새로운 리더십을 건설하는 것이다.

    5.

    코미디언 분들에게는 죄송한 얘기지만, 우리는 뭔가 앞뒤가 안 맞을 때, ‘코메디 수준’이라는 말을 한다. 내가 보기엔, 새로운 진보정당 추진위원회가 도로 민노당을 주창하고 있는 것은 정말 코메디 같은 일이다.

       
      ▲필자

    상식적으로 새로운 것은 일단 낡은 것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도로 민노당에 대한 거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 민노당 같은 과거로의 회귀 전략에 대해 ‘새로운’ 이라는 레토릭을 갖다 붙이는 것은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의 이름을 노동부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코미디다. 정직한 화법은 아니다.

    도로 민노당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아니다. "북한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진보정당! 민주노총의 지배를 받지 않는 노동자 대중정당!"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의 길이다.

    선거연합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도로 민노당이라는 과거 회귀 전략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오늘의 배고픔을 못 이겨서 내년에 심을 씨앗까지 팔아먹는 일이다. 한해 농사를 망칠 수는 있다. 그러나 씨앗까지 모두 팔아먹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전략은 개나 줘버리자. 도로 민노당이야말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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