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미, 감당키 힘든 일이 터질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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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6월 21일 08: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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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구 사무실로 쓰는 ‘풀뿌리 사랑방’을 드나드는 탈학교 청소년이 있다. 이름하여 ‘간꽁취’ 보좌관. 개콘 간꽁치 트레이너의 후계자로, 스탬프를 완력기 다루듯 하고, 사무실 셔터를 내릴 땐 매달리다시피 한다.

    간꽁취 보좌관

    그는 학교 폭력에서 놓여난 대신 무료함과 그에 따른 우울함을 얻었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탈학교 청소년들을 찾아다니더니 몇몇과 면담을 하고 왔다. “또래끼리 편하게 만나”라는(청년유니온 정신과도 통하는?) 취지에서 나는 가지 않았고, 다녀온 간꽁취는 만난이들 대다수의 공통점을 전했다.

    첫째, 낯을 가린다. 내가 일단 빠지길 잘했다 싶었다. 둘째, 다들 내 지역구에 산다. 아직 통계는 없지만, 아무래도 탈학교 청소년이 내 지역구에 많은 것 같다. 셋째, 검정고시를 공부하는 간꽁취와는 달리, 그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하고 있다.

    우리는 간꽁취가 가입한 청소년 인권행동 단체나 내가 속한 민주노총 경북지역 일반노조가 탈학교 청소년 노동문제에 접근하기에는 너무 큰 곡괭이라고 판단 내렸고, 4월 둘이 함께 청년유니온이라는 낫과 망치(?), 호미를 들었다. 나는 “청년유니온은 이런저런 사업을 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청년유니온은 탈학교 청소년의 노동 사각지대로!”라고 외칠 의사가 없다. “말 꺼낸 놈이 임자”고, 내가 청년유니온이니까 어차피 자급자족해야 한다.

    말 꺼내고 임자가 되어버린 청년유니온 구미모임의 사업은 현재 걸음마도 아니고, 짚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단계다. 우리가 파악하기로 구미 지역 청년유니온 조합원은 4명인데, 이들은 교육희망네트워크 준비 모임에 가도 똑같이 만난다.

    아니 좀 더 솔직해지자. 조합원 죄다 풀뿌리사랑방 식구들이다. 조합원 수는 둘째 문제고, 우리는 이후 지금껏 더 이상의 탈학교 청소년들을 만날 수 없었다. 간꽁취가 이미 만났던 이들도 기약이 없다. 덕분에 간꽁취는 툭하면 우울하다고 낑낑대고, 밥 먹는 도중에 팔뚝질을 하는 등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스러운 증상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진보와 좌파는 촌스러워서 실패했나?

    간꽁취와 함께 동네를 다니다 ‘노는 아이들’을 스쳐 지났다. “야, 너도 저기 끼어서 같이 놀지. 너랑 놀아주느라 내가 더 우울해.” “그러고 싶은데요. 끼워주지를 않는다니까요.” 간꽁취가 거기 끼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을지 모르겠지만, 노력하기부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대로의 문화가 있다. 척력이 상당한. 그런데 말이다. 이거, ‘우리’도 그렇지 않나? 그 아이들이 우리 노는 데 끼려면 쉬 낄 수 있나?

    “어이 간보좌, 밥 먹다 말고 자꾸 팔뚝질할래? 짜증난다니까.” “재밌잖아요.” “너 그렇게 살면 니 자식들은 절대로 진보운동 안 해. 진보는 미친 놈인 줄 알고.” “하아, 우울해서 이런다니까요.” “지금 널 보는 내가 더 우울한데, 옛날에 조지 오웰이 뭐라 그랬는지 아냐?” “예? 뭘 조진다고요?” “사회주의자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괴짜들이 불길할 정도로 많다.” “(입안의 밥풀을 선보이며)ㅋㅋㅋ”

    “사람들은 흔히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는 말 자체가 영국의 온갖 과일주스 애호가나 나체주의자, 샌들 이용자, 섹스광, 퀘이커교도, ‘자연 치유’ 사기꾼, 평화주의자, 여성주의자를 다 끌어들이는 자력을 지녔다는 인상을 받는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

    여기서 사기꾼 정도를 빼면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괴짜는 절대 나쁜 게 아니다. 세상에는 더 많은 괴짜가 필요하고, 모두가 알고 보면 괴짜다. 문제는, 괴짜들이 개성은 자기네만 가진 양 유독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대중들에게 잘 보이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의 적잖은 수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강남 좌파’니 ‘간지 좌파’니 ‘패션 좌파’니 하는 흰소리들이 바로 그 산물이다. 진보가, 좌파가, 노동운동이 구리고 촌스러워서 실패했나? 이런, 지금 돌아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잖아?

    공산주의와 가톨릭주의의 비슷한 점

    그러나 폭풍간지를 뽐낸다고 해서 다른 지점에 닿지는 않는다. 그래봐야 “사람들은 흔히 ‘진보’나 ‘좌파’라는 말 자체가 연예인이 되기에는 좀 어정쩡하게 멋있고, 대신에 책 좀 읽고 말 좀 시크하게 던지며 잘난 체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얼마 전에 어떤 시민운동가는 “아이들 교육 잘 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야 사회가 진보한다.”고 했단다. 갑자기 또 조지 오웰이 툭 튀어나온다. “공산주의와 가톨릭주의가 비슷한 점 하나는 ‘배운’ 사람들만이 완전한 정통파라는 사실이다. (…) 이런 사람들이 정말 흥미로운 점은, 정통이다 싶은 것을 실생활과는 전혀 무관해질 정도로 밀고 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분들의 진보정당 혹은 진보 정부가 들어선 세상은 어떨까? 잘나고 뺀질한 진보는 언제나 촌놈 보수주의의 반란(“잘 났어 정말!”)과 짝패를 이룬다. 폭풍간지 앞에 모두가 무릎 꿇고 하악거릴 거라는 낙관은 버려라. 이 반란의 주력군에는 노동자와 청년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진보’가 허약하거나 밉살스럽다고 느껴지는 욕망의 중산층, 진보의 반란을 반대편의 반란으로 막고자 하는 기득권층의 의도가 마구 섞여들면 그 유명한 파시즘, 그분이 오시는 것이다.

       
      ▲구미공단 전경.(사진=구미시청 홈페이지) 

    ‘간지’와는 무관한 자신에게 일단은 안도한다. 나는 구미에 살고 있다.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인 도시다. 그 안에서도 내 지역구가 가장 젊다. 대학 주변이냐고? 아니다. 일부 학생운동가들이 그토록 동경하는 ‘대공장’과 그가 거느리고 지배하는 하청업체들이 들어서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젊은 생산직 노동자들이 밤에는 술집을 채우고, 아침에는 밤샘 근무를 마친 뒤 고기를 구워먹으며 소주잔을 털어 비운다.

    이들은 정주의식이 희박한 동시에 어쨌든 수가 많아 지방선거 투표율을 30%쯤으로 주저앉히곤 한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젊은 나이에 출마한 나는 지난해 선거 기간 내내 이들 앞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나를 놀라게 만든 노동자들의 말

    (나와 아주 다르고 자신만만한) 간지 좌파라도, 어차피 정우성처럼 생기지 않은 이상 우리 동네 명물 S모 나이트에서도 안 먹히고, 잘못 까불면 ‘재수 없다’는 반응만 자아낼 것이다. 선거 때도 잘난 체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고, 여전히 우리 동네 청년 노동자들 앞에서 가장 조심스럽다.

    이쯤에서, 간꽁취의 고민에 이어 나의 걱정을 털어놓을 차례다. 나는 이 동네에 입주한 사업장에서, 그러니까 청년 노동자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터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별다른 징후도 없고 내가 예감이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만일 일이 터진다면 틀림없이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일 것 같다.

    나는 우리 동네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에게서 좋은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을 엿본 적이 없다. 작년 선거에서 만난 두 여성 노동자는 “이명박은 싫은데, 박근혜는 좋은 사람 아닌가요?” “경북은 그래도 한나라당 아닌가요?”하며 조심스레 묻다가 다음의 말로 날 소스라치게 했다.

    “우리 나라가 삼성공화국이잖아요. 하지만 정작 우린 그 나라 국민이 아닌 거 같아요.” 그들은 왜 아침에 찌개도 국밥도 아닌 고기를 먹는가? “안 그럼 다음에 일할 때 서서 버티기 힘들어요.” 서 있는 게 힘든 정도가 아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발표한 백혈병 환자 가운데는 우리 동네에서 일했던 분도 있다.

    이런 청년 노동자들은 무노조경영이나 어용노조를 이용한 노동자 통제로 인해, 자신을 대변할 노조를 갖고 있지 못하다. 공장 바깥과의 연결고리를 잡기도 버겁다. 아무리 지역의 상징처럼 우뚝 선 기업이라도 그 현장과 ‘풀뿌리’ 사이의 괴리는 심각하다.

    나는 최전선에 선 기분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단 법은 없다. “평범한 노동자에게, 이를테면 토요일 밤 아무 선술집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유형에게, 사회주의는 더 많은 임금과 더 짧은 노동 시간과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사람이 없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 가끔 술집과 식당에서 주워듣는 회사에 대한 불평과 불만들은 항상 투쟁의 잠재적 자양분이다.

    아마 바람은, 불게 된다면 당분간은 개별적이고 산발적으로 불 것이다. 민주노조의 깃발이 펄럭이기 전에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눕게 될 것이다. 우선 노동3권보다는 ‘최소한의 인권’이 더 크게 메아리칠지도 모른다. 나는 이 경우 청년유니온의, 시의원인 나의, 조합원 한명이 시의원인 청년유니온 구미모임의 역할이 당장에는 다른 어떤 노조보다 훨씬 중대할 공산이 높을 거라고 감을 잡고 있다. 남들이야 내 감을 믿어야 할 이유가 없겠지만, 나로서는 졸지에 최전선에 서버린 기분이다. 

    “노동 계급 ‘출신’이면서 이론적이고 딱딱한 문어를 구사하는 유형도 많은 게 사실이다. (…) 즉, 문단의 인텔리가 되어 중산층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유형이거나, 노동당 하원의원 또는 고위 노조 간부가 되는 유형인 것이다. 이 마지막 유형은 세상에 비할 데가 없는 꼴불견이다. 그는 정작 자기 동료들을 위해 싸우라고 선출됐지만, 그 자리는 그에게 오로지 편안한 일자리와 신분 ‘향상’의 기회일 뿐이다.”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하원의원은 아니지만, 기초의원도 충분히 오웰의 타겟이 될 만하다. 나는 세상에 비할 데가 없는 꼴불견이 되고 싶지는 않다. 임기 끝나면 짤리는 기간제 노동자로서, 치안 불안과 쓰레기로 골치 앓는 원룸 밀집구역의 청년답게 주제 파악하며 살아가련다.

    오웰이 읊조리던 “평범하고 수수한 사람”을 위한 조직과 활동만이 내게 ‘이론적이고 딱딱한 문어’ 틈에서 또는 속에서 도대체 실질적으로 뭘 해냈는지 늘 의심스러웠던 내게 편안한 자리와 삶의 향상의 기회를 줄 뿐이다. 

    평범하고 수수한 사람들을 위한 조직

    청년유니온에게 거는 기대도 그렇다. 청년유니온은 최소한 “인텔리가 되어 중산층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유형”은 아니겠지. “정통이다 싶은 것을 실생활과는 전혀 무관해질 정도로 밀고 나”가지는 않겠지. 나는 청년유니온 조합원의 절대 다수를 모른다. 하지만 유니온이라면 그러하지,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난 정말 환상도 관성도 없는 그런 ‘대중운동’을 해보고 싶다.

    어느 날 간꽁취가 털어놓은 사연이다. “어느 게시판에 ‘누가 어제 한국팀 축구 경기를 재밌게 봤다’는 글이 올라왔거든요. 그러면 그냥 ‘아 축구를 좋아하시나 보군요’하면 그만인 걸 꼭 ‘그런 국가주의는 싫다’고 댓글 다는 사람이 있어요. 진짜 그렇게밖에 생각 못 하는지.”

    “그래?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 “명색이 대학생이라는 활동가가요.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꼭 그렇게 써먹어야 직성이 풀리나.” “이야, 난 오히려 네가 국가주의 운운할 줄 알았는데. 나도 옛날에 딱히 그보다 나을 게 없었거든. 네가 그보다, 나보다 훨씬 낫구나.”

    우리 청년유니온 구미 모임은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는 평범하고 수수한 사람들을 기다리며, 우리와 맞먹게 될 사람들과 맞먹는 사람이 되기 위해, 속을 채우기에 바쁘면서도 비울 것은 비우려 애쓰고 있다. 

    추신: “아예 한 일주일 쉬다 가고 싶더라~^^ 너 일하는 것도 더 구경하면서…” 간꽁취의 연락을 받고 구미에 내려왔던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이 상경하면서 내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민주노동당과 그냥 합치다니

    그는 나와 예전 <유뉴스>라는 매체에서 함께했다. 앞으로도 같이 어깨를 걸었으면 좋겠다. <유뉴스>가 문을 닫고, 내가 2008년 1월 민주노동당을 나가면서 한동안 같은 단체에 몸담지 못했다. 청년유니온 덕에 다시 뭉쳤다. 

    얼마 전 진보신당의 노회찬 전 대표가 강물과 바다를 이야기하며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통합을 역설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오아시스에 안주하지 말고 강물이 되어 흐르자.”, “진보정치의 바다에서 만나자.”는 말을 하기도 했던 나는 참 못마땅하다.

       
      ▲필자.(사진=김수민 의원실) 

    강물은 제대로 흘러본 적도 없고, 물결도 소금기도 없는 저수지를 바다라고 가리키고 있는 것만 같다. 진보신당 안에서도 틀어져 나온 마당에 민주노동당이랑 그냥 합친다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진보정당운동을 영영 접거나, 이 참에 주저없이 녹색사회당으로 고고씽하란 신호로 들린다.

    집요하게 당파성을 따져야 할 활동이 있는가 하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운동이 있다. 시위 현장에서 팔짱 걸었던 사람이 평등파인지 자주파인지, "가로등 달아달라"고 찾아온 아주머니가 한나라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한번도 궁금했던 적이 없다.

    쉽게 봉합할 수 없는 차이를 덮어둔 통합론이 되레 진보정치세력을 가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놓고 있다. 연대가 절실하다면 함께할 수 있는 운동영역에서 먼저 손 꽉 잡고 열심히 싸우는 게 낫지 않은가?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을 구미역에 바래다주던 날에 든 생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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