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동, 10~20대들의 농성 &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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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6월 21일 08: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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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마철이다. 워낙 습기를 힘들어하는 체질인 탓에 요즘처럼 폭염과 습기가 번갈아 피부를 공격하는 날씨엔 에어컨이 있는 은신처를 찾는 게 일이지만 요즘은 시원하고 한적한 공간도 마음을 편하게 하지 못한다. 가만히 모니터 창을 지켜보고 있기 힘든 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온다. 한반도 전체를 장악한 장마기단처럼 이 나라를 음습하게 하는 일들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장마란 놈이 원래 몸과 마음을 불쾌하게 하는 기분 나쁜 놈인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지긋지긋한 장마를 견디는 건 시원하고 쾌적한 가을이 찾아온다는 사실일 것이다. 고진감래란 말이 보답한다는 보장이 있다면 잠깐의 기다림이 오히려 의심스러운 탄탄대로보다 마음 편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장마가 끝나고 찾아오는 건 맑은 가을날씨가 아니라 엄청난 크기로 몰아치는 폭풍이다.

    비극은 더 큰 비극의 전조일 뿐이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장마철은 막을 수 없는 폭풍이 찾아올 날을 기다리며 마음을 태우는 불면의 나날이 되고 말았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그 폭풍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폭풍이 다가온다는 사실 자체도 충분히 공포스럽지만 더 절망적인 사실은 언젠가부터 우리 모두 다 폭풍과 그 피해를 예측할 순 있어도 막을 수는 없다고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

       
      ▲농성 현장. 

    19일 오후, 명동 한 복판에서 장마철 습기에 땀을 흘리고 있던 30여 명의 젊은이들은 곧 다가올 폭풍의 전조를 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독립영화 상영관으로 유명했던 명동 삼일로의 중앙시네마 바로 옆에 위치한 카페 ‘마리’, 그 곳은 현재 명동 도시환경정비사업에 의해 거리로 밀려난 제3구역 철거민들의 농성장이다.

    이날 오후 3시 경. 난입한 용역들에 의해 카페 마리의 집기 및 농성물품이 파손되고, 강제로 셔터가 내려지자 농성에 연대한 10대, 20대들이 두 시간 가량 용역과 대치, 결국 셔터를 뜯어내고 농성장 재진입에 성공했다.

    용역들은 농상참가자가 수적 열세인 틈을 타 농성장을 침탈했지만, 곧 이 상황이 트위터(해쉬태그 #MDmari)로 알려지면서 각 지역에서 연대하러 온 시민들이 점점 늘어났고, 이 때문에 결국 농성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기적처럼 급한 불은 끈 셈이지만 명동 3구역의 상황이 밝은 쪽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3.

    일단, 경찰은 철저히 ‘시행사의 관점’에서 움직이고 있다. 두 시간 가량 펼쳐진 대치 상황에서 철거민 1명이 실신하고, 연대한 시민들이 부상을 입는 등 격렬한 상황이 펼쳐졌음에도 불구, 관할당국인 남대문 경찰서는 용역의 세가 밀리기 시작한 순간 등장해 이들의 퇴장을 도왔다.

    또한 용역의 퇴로를 뚫어주는 한편, 구급차로 옮겨지는 철거민을 바로 앞에 둔 채 불법집회 해산을 명령했다. 동시에 경찰기동대가 동원돼 집회를 시민들의 시야에서 고립시키면서, 이에 항의하는 농성자들을 향해 연행하겠다는 으름장도 빼놓지 않았다.

    이렇게 시행사와 용역, 경찰이 개발사업의 계획에 차질을 빚지 않으려고 조직화된 작전을 구사한 반면, 침탈에 맞서 농성장을 되찾은 시민들은 어떠한 조직 단위로 묶여 있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카페 마리에서 농성 중인 사람들은 ‘두리반’ 농성에 참여했던 10대 10여 명을 비롯해 대부분 10~20대의 시민들. 보통의 투쟁 현장이 각각의 단체들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 농성에 참여한 사람들은 어떤 단체나 단위 소속이라고 말하기 애매모호한 개인, 트위터 등을 보고 ‘개인적’으로 찾아온 개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호사가들은 ‘자발적인 개인’의 힘이 모여 밀도있게 조직된 폭력에 대항하고 있다는 미담을 나누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러한 환상이 곧 승리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농성에 참여한 이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이들이 농성에 참여하면서 줄곧 아쉬워하고 있는 것은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를 보완하고 증폭할 ‘조직’의 참여와 이를 통한 재조직화다.

    4.

    철거 문제이니 철거단체가 해결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쉽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약자가 긴급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직관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한국사회가 갖추고 있었다면 한여름 명동 한 복판의 몸싸움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우리가 이런 일로 우중충한 기분을 공유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무려 1조원이 투입됐다는 명동 일대 재개발 사업장에 수십 명에 불과한 비조직 시민들이 몸으로 막을 수 있는 기한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이다. 투쟁사업장의 안팎에 일가견이 있는 진보정치권의 어떤 ‘선배’라면, 강력한 지역조직이나 정치권이 개입하지 않는 이러한 싸움은 결국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분석하며,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인 힘을 조직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충고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위해서 진보의 힘을 결집시키거나 각기 선이 다른 진보가 제 발로 서야 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복지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치적인 힘이 ‘충분히’ 조직되기 전에 신촌과 명동을 비롯한 전국의 재개발 사업장에서 벌어질 19일과 같은 상황,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폭풍 같은 상황을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도 우리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진실들이다.

    5.

    현재 카페 마리에서 농성하는 젊은이들은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폭풍을 이렇게 몸으로 방어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방식이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피동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덕적으로 분개하는 것이 별달리 유용하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손톱만한 진보정당이나 민중단체가 모든 사안을 책임지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특히 진보의 정치세력화라는 기획의 커다란 전환점에서 고전하고 있는 현재의 진보정치에게 과도한 책임을 미루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한다 한들 그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 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그들이 앞으로도 정치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지금 명동을 지키고 있는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정치, 그리고 그들이 지지할 정치인과 정치세력의 모습에 대한 고민은 추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울 한 복판에서 철거농성장이 침탈당하는 순간, 수많은 운동권 ‘형들’과 ‘투쟁의 선수’들이 부재한 그곳에서 곳곳에 긴급한 호소를 보내고 서로 달려와 주었으며, 이를 통해 폭풍이 불어닥칠 뻔한 상황을 잠깐이나마 연기시킨 젊은이들이 바라는 정치를 말이다. 이들은 현재까지 1조원에 육박하는 자본의 코앞에서 가장 직관적인 방식으로 사안을 알리고 가능한 연대를 조직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용역과의 대치는 끝났지만 언제 다시 밀려올지 모르는 저녁, 농성에 참여했던 일부 청년들의 연대 방문을 요청받은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고문이 철야농성에 참여하고 아침에 컵라면을 나눠먹은 후 돌아갔다. 이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보고 한 인터넷 매체는 정치인 노회찬의 소박함을 강조한 표제로 기사를 내기도 했다.

       
      ▲농성장에서 컵라면을 함께 먹는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사진=조병훈) 

    하지만 그 사진의 원래 주인공은 가장 먼저 찾아와 연대했고, 자신이 떠나면 농성장이 다시 빼앗길까봐 자리를 뜨지 못한 10대들이었다. 다음 날 이들은 금민 사회당 상임고문을 불러들였고, 이 날의 메뉴는 케밥이었다고 한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인들이 단 하나의 소실점만 바라보고 있는 지금, 카페 마리를 지키고 있는 젊은이들을 응원하는 정치인의 지지 방문이 계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몇몇 정치인들의 연대방문이 농성투쟁의 양상이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폭풍을 바라보며 백이면 백 "막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분석이 되어버린 요즘, 그 폭풍을 어떻게든 지연시키며 충격을 줄이려고 하는 젊은이들에게 유명 정치인의 지지방문이 힘이 되는 건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자,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 부디 늦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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