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사회 건설을 위한 선언서
        2011년 06월 19일 11: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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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환 목사님은 1974년 3월 1일 삼일운동 55주년이 되는 날에 전 독일에서 55명의 간호원, 광부, 학생, 목사, 실업인들이 함께 ‘민주사회 건설을 위한 선언서’를 발표하고 독재에 항거하는 깃발을 들고 일어섰다. 아래는 선언서 전문이다.

       
      ▲’선언서’ 낭독 장면. 

    민주사회 건설을 위한 선언서

    I

    민주사회의 건설은 전 국민의 요청이며 민족사의 방향이다. 일찍이 빼앗기고 억눌린 백성의 민생을 구하려던 동학혁명과, 박탈된 민족의 자주생존을 회복하려던 기미년 독립운동, 그리고 독재아래 짓밟힌 민권을 소생시킨 사월 학생혁명은 바로 인간의 존엄과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민주사회의 건설을 그 목표로 하였다.

    그럼에도 항상 피흘려 찾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다시금 빼앗기고, 양심과 정의를 주장하는 외침은 무참히 짓밟히었으며,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는 가련하게 상실되니, 이러한 역사의 악순환과 오늘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어디에 원인이 있는가?

    부정과 특혜로 살찐 특권층이 마음대로 치부와 사치를 자행하고 다수의 서민대중은 착취된 노동과 민생고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친 이 반민주적, 반사회적 현실을 초래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국민의 입과 귀를 강제로 틀어막고, 정당한 주권행사를 탄압하며,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깡그리 막아 놓음으로써 봉건적 절대권력을 혼자 거머쥔 채 민주사회 건설에 반역하고 있는 주동인물은 누구인가?

    동포여! 민주사회 건설의 동지여!
    사회구조의 모순과 국가의 위기를 철저히 인식하라!
    민족의 굴욕적인 예속이 다시 오기 전에, 국민이 영구히 한 독재자의 노예로 되기 전에, 수수 방관적 자세를 버리고 일어나서 이성과 양심을 거스린 독재의 무리들을 물리치자!
    빼앗긴 국민주권과 짓밟힌 인권을 회복하여 민족의 이념인 민주사회를 창건하는데 헌신하며 참여하자!

    II

    참된 민주사회의 건설은 현실의 철저한 비판과 분석을 통해 반민주적이며 반사회적인 요인을 찾아내고, 이를 제거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박정권의 현 팟쇼적 독재체제가 바로 그것이라 단언한다.

    왜 그런가?
    첫째, ’10월 유신’은 민주사회의 반역이다. ’10월 유신’은 탱크와 대포를 앞세워 국회와 정당을 해산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불법으로 억압한 채 오직 개인의 권력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국가의 기본이 되는 헌법을 제멋대로 고쳐버린 민주사회의 반역이다.

    박 정권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낭비와 비능률과 불안정을 가져오기 때문에 우리 실정에 맞지 않으니 ‘한국적 민주주의’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박정권이 그러면 언제 ‘서구식 민주주의’를 해 본 일이 있는가? 12년 동안 입법, 사법, 행정의 실질적인 권력을 독점한 채 헌법을 마음대로 바꾸며 혼자 지배하고서, 낭비와 비능률과 불안정만 남아 있다고 하면,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남북통일을 위해 장기집권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유신을 한 지 일년도 못되어 남북대회의 길마저 중단되고 말았는가?

    국회의원은 임명제로 해버리고, 국정감사는 폐지시켜버리고, 사람은 영장도 없이 잡아 가두며, 대통령직은 영구 독재의 총통직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한국적 민주주의’란 말인가? 민주주의를 모독하고 우리 국민을 모욕해도 분수가 있다.

    왜 차라리 ‘박씨 왕국(朴氏王國)’을 만들지 않았는가? 박정희의 정치행로는 공약의 위반과 속임수의 연속이었다. "군(軍) 본연의 임무에 복귀하겠다"던 5.16 혁명 공약은 휴지화 해버리고, 자기 손으로 제정한 헌법의 삼선(三選) 금지조항을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변칙 삭제했으며, 삼선 대통령 출마시 장충단 공원에서 "이번이 마지막 출마이며, 후계자를 찾겠다"고 호소한 공약을 뒤엎고 영구집권 독재체제를 만든 그의 기만과 우롱에 국민이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된다.

    이성과 양심의 소리를 외치는 지성인과 종교인, 학생들을 체포 감금하고, 정당하게 개헌을 요구하는 국민의 청원(請願)마저 팟쇼적 철권(鐵拳)으로 짓누른 독재자와 그의 ‘유신체제’는 국민의 이름으로 제거되고 심판을 받아야 한다.

    둘째, 극도의 빈부격차와 부정부패에 책임을 져야 한다.
    주문같이 외어오던 박정권의 ‘경제성장’은 특혜를 입은 극소수의 대재벌에게만 엄청난 부(富)를 집중시켰고, 중소기업의 몰락과 서민생활의 빈궁화를 가져 왔다.

    수십억 불의 외국 빚을 들여다 불실기업(不實企業)을 만들어 국가 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으며, 국민생활의 실정과 공익을 무시한 사치성 소비산업을 도입해 낭비와 사치풍조만 조장했다.

    GNP 는 높아졌고, 수출은 증대되고, 국민소득은 몇 배로 늘었다고 하는데 어째서 대다수의 국민대중은 생계비가 안 되는 저소득으로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고, 실업자 빈민들은 슬럼지대에서 인간 이하의 비참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독일인들에게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는 재독 한인들과 독일 종교인. 

    그럼에도 소수의 특수족은 ‘오적촌(五賊村)’을 이루고, 에스카레터 장치까지 한 수천만원의 호화주택에서 온갖 사치와 향락을 누리고 있지 않는가? 이것이 박 정권이 약속한 근대화며 번영이었고, 이것을 위해 국민은 허리띠를 조르고 일해야 했는가? 이것이 국민총화며 국력배양인가?

    ‘중농정책(重農政策)’이다, ‘농공병진(農工竝進)’이다, 구호를 외치고, ‘소비가 미덕이 되는 사회’니 ‘풍요한 사회’를 선전하더니, 고도성장을 달리고 있다는 경제발전이 어째서 국민경제의 기본이 되는 식량과 연료문제도 해결 못하고 매년 수억불어치의 외국쌀을 빚으로 사다먹는 형편이 되었는가?

    생산량과 통화량, 물가지수와 실업자수의 경제통계를 한번도 정직하게 사실대로 발표한 적이 없고, 과시주의(誇示主義)와 전시효과 위주의 졸렬하고 불성실한 경제정책을 거듭해온 박 정권이 다시금 무슨 찬란한 용어를 쓰면서 사탕발림을 해도 이미 속을 대로 속은 국민은 더 이상 믿으려 하지 않는다.

    외자도입과 금융특혜에 얽힌 어마어마한 부정과, 썩을 대로 썩은 특권층의 파렴치한 부패타락을 아는 국민은 국가민족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박 정권에게 더 이상 맡길 수 없다.

    셋째, 굴욕적 대일정책이 국민경제를 예속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박 정권의 이성을 잃은 경제정책과 굴욕적인 자세가 국민경제와 사회풍조를 점차 일본에 예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미 부패와 무절제로 빚만 남기고 실패한 차관정책을 직접투자(直接投資)로 바꾸어 박 정권은 경제적 침략을 노리는 일본의 사양산업(斜陽産業)을 마구 끌어들이고 있다. 49%까지의 외국투자만 허용하던 그나마의 보호정책을 100%까지 투자하게 양보해주고, 민족산업의 파탄을 가져오게 했으며, 지배와 침략을 목적으로 들어오는 일본기업들에게 세금을 면제해주고, 공업단지를 닦아주며, 더욱이 일본노동자의 ¼도 못되는 저임금으로 착취당하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노동쟁의도 할 수 없게 만든 지극히 굴욕적인 조약을 맺어 국가 이익을 팔아먹고 있다. 그나마 고갈되어가는 국내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몰인정한 경제동물(經濟動物)들이 단숨에 흡수해 버리지 않겠는가? 민족의 고혈을 빨아가는 경제적 식민정책을 모르는가, 벌써 잊었는가?

    중화학 공업이라는 미명하에 민족경제 성장과는 상관이 없는 일본의 공해산업(公害産業)을 들여와 조국의 강토를 못쓰게 더럽히고, 매판자본가들을 앞세워 국민경제를 일본경제권 속에 예속시킬 위기와 징조가 너무나 뚜렷하다.

    어느새 왜색(倭色)종교와 문화가 이토록 민족문화를 침식했고, 처녀들의 정조를 토산품(土産品)이라고 팔아먹는 망국적, 반민족적 퇴폐가 이 사회에 풍미(風靡)하게 되었는가?

    넷째, 잔인무도한 정보정치는 공포에 떨게 한다.
    오직 박 정권의 안보만을 위해 매수와 조직과 잔혹한 고문을 구사하며 온갖 비인도적 만행을 다하고 있는 정보조작은 국민의 양심을 마비시켰고, 민족의 의기(義氣)를 꺾었으며, 사회각계에 불신과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해 놓았다.

    진리의 전당인 학원과 사회적 양심을 대변하는 언론을 온갖 악랄한 수단으로 질식시켰고, 민주적 신념을 가진 지성인과 정치인을 테러하였으며, 공갈 사취 밀수 등 사회악과 범죄에 기식(寄食)하면서, 세계여론에 의해 ‘마피아단’이라고 규탄되고 있다.

    죄없는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끌고가 법도 인도적 양심도 존재치 않는 정보부의 지하실에서 몽둥이로 치고, 불로 지지고, 불구를 만드는 마수(魔手)의 집단이 김대중(金大中)씨를 수은을 먹여 현해탄에 던지려 했고, 최종길(崔鍾吉)교수를 고문으로 죽게 하지 않았는가?

    무엇 때문에 국민은 혈세를 바쳐, 이같은 악의 떼들이 막대한 국가예산을 허비하게 하고 그리고 또 공포에 떨어야 하는가?

    III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양심마저 짓밟은 채 독재자가 영구집권의 아성(牙城)을 쌓기에 광분(狂奔)하는 오늘의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것도 후진국의 운명이러니’ 하며 체념(諦念)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가 언제는 별수 있었느냐?"며 자학(自虐)과 패배주의에 사로잡혀서도 안되겠다.

    불의(不義)가 승리하고 독재가 참월(僭越)하는 이 오욕(汚辱)의 역사를 비굴하게 살다가 후대에까지 물려줄 것인가? 민족사의 발전을 가로막고 민주시민의 이성과 양심을 테러하는 이 현실을 남의 일처럼 방관하고 있을 것인가? 침묵이나 방관은 곧 현실에의 긍정이요 동조(同助)이다.

    국민이여! 민주사회 건설의 동지여!
    독재의 세뇌(洗腦)에서 벗어나 올바른 비판의식을 갖자!
    용기를 가지라! 힘을 모으라! 그리고 "독재정권아 물러가라"고 함성을 지르자!

    아무리 철면피의 독재자라도 줄지어 외치는 국민 전부를 옥(獄)에 가두고 혼자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민심(民心)의 기반을 잃고 우방국가들의 지탄을 받은 박 정권이 오래 버틸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체제의 개혁이 없는 단순한 정권이나 인물만의 교체를 원치 않는다.

    그리고 구국(救國)을 빙자하여 일어날지도 모를 제2의 군사(軍事)구테타를 우리는 철저히 경계한다. 그것은 항상 민주사회를 배반하며 권력탈취의 악순환을 가져올 뿐이다.

    올바른 민주사회는 국민대중이 주권을 회복하고, 사회대중이 이익(利益)을 대변하며, 국가와 사회의 권력을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설된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대중 스스로가 확고한 민주의식과 참여 정신을 통해 지켜나가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탄압과 방해를 무릅쓰고, 이국(異國)땅 한 모퉁이에서라도 민주사회 건설을 위한 토론의 광장(廣場)을 마련하며, 뜻을 같이하는 국내외 동포들과 함께 반독재 투쟁의 대열(隊列)에 뭉치고저 한다.

    독재여, 물러가라! 동지들이여, 승리하라!

    1974년 3월 1일
    삼일운동 55주년의 날에

    서명인(가나다 순)

    강돈구 (Tübingen) 강영란 (Rheinhausen) 강정숙 (München) 김길순 (Würzburg) 김득수 (Münster) 김복선 (Berlin) 김복희 (München) 김순환 (München) 김영한 (Heidelberg) 김종열 (Münster) 김원호 (München) 박대원 (Köln) 박소은 (Marburg) 박종대 (München) 배동인 (Köln) 배정석 (München) 서돈수 (Duisburg)

    손덕수 (Göttingen) 송두율 (Münster) 송복자 (Münster) 송영배 (Tübingen) 양원차 (Gelsenkirchen) 오길남 (Kiel) 오대석 (Frankfurt/M) 오인탁 (Tübingen) 유충준 (Gelsenkirchen) 윤이상 (Berlin) 이민상 (Regensburg) 이보영 (Kiel) 이삼열 (Göttingen) 이승자 (Frankfurt/M) 이영빈 (München) 이영준 (Bochum) 이재형 (Hamburg)

    이정의 (Berlin) 이준모 (Frankfurt/M) 이 지 (Marburg) 이지숙 (Göttingen) 이태수 (Göttingen) 이화선 (Frankfurt/M) 임신자 (Frankfurt/M) 임승철 (Rheinhausen) 임영희 (Duisburg) 임학자 (Tübingen) 임희길 (Frankfurt/M) 장성환 (Duisburg) 장행길 (Bottrop) 정정희 (Münster) 정하은 (Berlin) 천명윤 (Gelsenkirchen)

    최두환 (Göttingen) 최순택 (Köln) 최승규 (Heidelberg) 홍종남 (München) 황능현 (Boc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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