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이슬람계, 무고한 희생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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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6월 18일 10: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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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9·11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그리고 전 세계인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우리는 그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까?

    우선 이 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혹은 심각한 피해를 입은 모든 이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 재앙과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필요한 작업은 이 사건이 현대 사회 속에서 갖는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모색해보는 것이다. 이 모색이 올바른 방향을 향하기 위해, 마이클 웰치(Michael Welch)가 『9·11의 희생양』(갈무리, 박진우 옮김, 19000원)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테러 무관 모든 이슬람국 ‘악’으로 규정

    웰치 교수가 지적하고자 한 것은 9·11 사건의 진정한 ‘희생양’이 무고한 아랍, 이슬람계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전 미 대통령 조지 부시(George W. Bush)는 9·11 사건 발생 이후, 아프카니스탄을 향한 공격을 선포하고, 그 이후에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 아래에서 중동 지역을 향한 전쟁을 계속한다. 결국, 미국 정부는 자국의 안전과 세계 평화를 구호로 내세워, 9·11 테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모든 중동 지역,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을 악(evil)으로 규정해왔다.

    이 책의 저자가 사용하는 ‘희생양’(scapegoat)이라는 용어에 조금 더 주목해보자. 르네 지라르(Rene Girard)의 희생양 이론(Scapegoat theory)에 따르면, 한 사회는 그 공동체 내부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이 희생양은 공동체의 내부/외부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준다. 즉, ‘타자’인 희생양을 공동체의 외부로 밀어내면서, 나머지 공동체는 더욱 강력한 결속과 안정을 누린다.

    물론 희생양이 되는 대상은 진정으로 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공통체의 평화를 위해 유죄인 것으로 ‘구성된’ 존재이다. 그리고 웰치 교수는 이 이론을 9·11 사건에 적용하여, 미국 정부가 죄를 덮어씌우려고 노력하는 희생양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이 같은 부시 정부의 ‘희생양 만들기’는 많은 미국 대중들에게 지지를 받은 바 있다. 미국 시민들 중 많은 수가 미국의 ‘대 테러전쟁’에 지지의 뜻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에 등장하는 한 가지 흥미로운 설문 조사를 살펴보자.

    『벌거벗은 군중』(The Naked Crowd)의 저자 제프리 로젠(Jeffrey Rosen)이 실시한 이 설문조사는 비행기 승객들에게 공항의 보안을 위해 어떤 기계를 도입하면 좋을지를 묻는 것이었다. 답변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계는 두 가지가 있었다.

    공포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는 승객들의 벌거벗은 몸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이른바 ‘나체기계’(Naked Machine)이고, 다른 하나는 승객들의 몸은 흐릿하게 보여주는 대신, 소지품의 이미지는 여전히 동일한 수준으로 조사할 수 있는 ‘얼룩기계’(Blob Machine)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조사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조금 더 안전하다는 기분이 들기만 한다면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이겠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말하면, ‘실제로 이 기계가 안전을 담보하는가’가 아닌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자신의 나체를 드러내는 수치심을 억누를 정도로 비이성적이다. 웰치 교수는 이에 대해 “하루 종일 텔레비전에서 흘러넘치는 테러리스트의 공격과 관련된 끔찍한 이미지가, 대중이 위험의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없게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 대중들이 9·11을 겪으며 갖게 된 ‘테러에 대한 공포’는 부시 정부의 ‘희생양 만들기’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희생양이라는 기제는 경우에 따라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기제의 기본적인 목적이 사회 구성원들을 안정시키고, 공동체를 더욱 공고히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9·11 사건에서 발생한 희생제의는 어떤 점에서 문제인가? 마이클 웰치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의 희생양 만들기는 또 다른 종류의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기능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범위는 비난을 특정 대상에게 할당해야 할 필요성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혼란을 잠재워야 할 필요성에까지 이른다.

    오늘날의 희생양 만들기는 – 그것이 아무리 신경질적으로 보일지라도 – 이러한 사회적 필요들을 충족한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희생양 만들기는 다분히 자멸적이다. 이것이 정치적 폭력의 발생에 대한 어떠한 현실적 원인과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희생양은?

    다시 말해서, 미국 정부가 선언한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를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진정한 해결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사건을 통해 반성해야 할 부분, 그리고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단지 그 원인을 하나의 (무고한) 희생양에게 돌려 전쟁을 자행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것이, 웰치 교수가 이 책을 통해 목표했던 작업이다.

    이 책은 2011년을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도 많은 생각할 꺼리를 제공한다. 우리 역시도 전쟁, 혹은 테러에 대한 공포를 일정 부분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안보를 확보하고,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양 만들기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또한, 대중들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정치적 왜곡이 있어서도 안 된다. 불과 두 달 전에 “북한이 농협 전산망을 해킹했다”와 같은 웃지 못할 주장들이 소동을 일으켰던 사실을 떠올려보면, 우리 사회 역시 ‘희생양 만들기’라는 과오를 ‘잠재적으로’ 저지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마이클 웰치의 주장처럼, 책임과 죄악을 타자에게 전치시키는 것에서 벗어나, 정직한 반성과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때 현대 사회는 한 걸음 더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 * *

    저자 : 마이클 웰치 (Michael Welch)

    비판범죄학자이자 사회학자.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런던대학 경제학부의 인권연구소에서 연구교수를 역임. 현재는 미국 뉴저지 주 뉴브런스윅에 위치하는 룻거스 대학 형사행정학과의 교수이다. 그는 형사행정, 사회통제, 인권에 이르는 사회문제에 주된 관심을 두고, 이와 관련해 여러 권의 저서와 다양한 종류의 연구 논문을 발표해 왔다.

    현재 그는 자신의 학생들과 독자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홈페이지(www.professormichaelwelch.com)를 운영하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미국의 처벌제도』, 『불타는 깃발: 도덕적 공황과 저항의 범죄화』, 『억류된 사람들: 이민법, 그리고 이민국 감옥 복합체의 확장』, 『교정: 비판적 접근』, 『투옥의 모순』이 있다.

    역자 : 박진우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 졸업. 학부에서 정치외교학을 복수전공하며 정치·사회 이론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미국소설과 문학이론을 공부하였고 「호손의 『주홍글자』에 나타난 희생양의 정치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를 계기로 희생양 모델·이론에 관심을 갖고 『9· 11의 희생양: 테러와의 전쟁에서 증오범죄와 국가범죄』를 번역, 출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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