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파, 뭐 하자는 건지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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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06월 16일 04: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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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에 기고한 이기중 당원의 "복지파, 뭐 하자는 건가?"라는 화끈한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 보아도 3년 넘게 당을 함께한 당원에게,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닌 타도의 대상에게나 쓰는, ‘간첩질’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복지파가 통합파의 분노의 대상이 될만한 제대로 된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자의적인 기준으로 복지파를 마음대로 재단한 후, 전혀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이유를 갖다 붙이고 허공에 대고 분노의 감정만 배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대화가 시작됐으니 하나씩 차분하게 답장을 써 보겠습니다.

    연석회의 합의문에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주장하는 <복지국가 진보정치연대>는 그동안 당 안팎에서 누구보다 일관된 주장과 행동을 해왔습니다. 우리의 주장은 선명하고 간결합니다.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이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이 모여(가치연대), 중도+진보 단일정당을 건설하여 집권하자는 다수파 전략입니다.

    이기중 당원의 원문에서 언급한 대로, 비례대표제가 미약하고, 결선투표제도 없는 단수단수득표 소선거구제라는 한국의 특수한 정치상황에서, 결국 양당제로 수렴되면서 제3당은 불안정한 존재로 소멸을 반복하므로, 중도+진보 야권 단일정당에서 진보블럭으로 활동하는 것이 우리의 가치를 실현하고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기중 당원은 통합파가 "민주노동당 및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조직을 포함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정당을 무슨 근거로 새로운 진보정당이라고 주장하는지 당최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면면을 보면 가치와 노선 어느것 하나 새로울 것 없는 NL/PD 운동권 세력들이 재결합하는 예전 민노당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한 정당입니다. 통합파들이 찬성하는 민노당-진보신당 중심의 양당통합 최종합의문을 보면, 진보신당의 창당 논리였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문제가 거의 무시되고 부정되었습니다.

    3대세습과 북핵문제는 민노당 당권파에게는 언급조차 불경스러운 성역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오히려 그 합의문은 예전 민노당 강령보다 후퇴했습니다. 이렇게 민노당 복당 수준의 묻지마 세력통합을 하자는 연석회의 합의안에,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가치연대를 주장하는 복지파가 어떻게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통합파 안에서도 양당 중심 통합이냐 국참당을 포함한 통합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수-자유-진보정당 3자 정립을 목표로 민주당과의 선거연대나 연립정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설령 이런 보수-자유-진보정당 3자 정립론이 성공한다 해도, 소선거구제와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결국 민주당과의 선거연대나 연립정부 구성에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보수-자유-진보 3자 정립론은 가치 중심의 야권 단일정당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므로, 복지파는 반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87년 헌법개정 이후 치러진 6차례의 총선에서, 원내교섭 단체를 구성했던 제3당은 다음 총선에서 모두 소멸하거나 원내교섭 단체 구성에 실패했습니다. 지역구 27석을 얻었던 김종필씨의 공화당, 지역구 24석을 얻었던 정주영씨의 국민당, 지역구 41석을 얻었던 김종필씨의 자민련 등 제3당들은 모두 다음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고 양당에 흡수 되거나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더구나 2000년 이후 치러진 3번의 총선에서는 단 한번도 제3당이 자력으로 원내교섭 단체를 구성한 정당조차 없습니다. 저는 소선거구제 아래 나타나는 이 냉혹한 양당제 수렴 현상을 거스르는 주장이 소위 보수-자유-진보정당 3자 정립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기중 당원은 원문에서 끊임없이 근거도 없이 자의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자기들이 하면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한 결단이고, 남들이 하면 "간첩질"이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억측과 자의적인 해석이 부메랑이 되어 얼마나 아프게 자기 목을 칠 수 있는지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이기중님 원문 중 ‘복지파가 새 진보정당 건설의 파탄을 바라는 이유’라는 부분을 ‘통합파가 복지국가 단일정당 건설의 파탄을 바라는 이유’로 주어와 일부 내용만 바꿔 되돌려 드립니다.

    그렇다면 ‘통합파’는 어째서 복지국가 단일정당 건설의 파탄을 바라는가? 이들이 복지국가 단일정당 건설을 우려하는 이유는, 민노당이 복지국가 단일정당 건설을 우려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강력한 복지국가 단일정당이 건설되면 그들이 주장하는 소위 ‘진보통합정당’의 설 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좀더 심하게 말하면, 복지국가 단일정당 건설이 온갖 진통을 이겨내고 성사되면, 그들이 민노당으로 들어갈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실제로 도로민노당 주장을 하면서 도대체 무엇이 새롭다는 것인지 구체적 내용도 제출한 바 없다. 민노당의 변화를 주장할 뿐, 변화를 추동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정권을 추종하며, 3대세습과 북핵을 언급하는 것조차 불경시하는 세력들과 함께하자고 말하고, 신자유주의 정책과 FTA를 추진했던 것에 대해 성찰하지 않고 있는 참여당과도 함께하자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복지국가를 당헌에 넣고,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공개적인 성찰을 하고 있는 세력이 발언권이 높여가고 있으며, 소속 구청장들이 정규직화 등을 보여주며 좌클릭하고 있는 민주당을 함께할 수 없는 세력으로 매도하는데 힘을 쏟는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에서 추론되는 그들의 목표는, 복지국가 단일정당 건설을 파탄내고, 진보신당의 혼란과 분열을 틈타 복지파를 "간첩"으로 몰고 독자파를 낡은 진보세력으로 매도하면서 이간질 한 후, 민노당으로 들어갈 명분을 얻는 것이다.

    자 어떠신가요. 통합파 입장에서 이런 자의적인 해석과 결론을 근거로 억지 주장으로 매도하면 얼마나 억울하고 황당하겠습니까. 이렇게 본인이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는 식의 글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 자신들의 선택이 틀릴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되, 합의할 수 없는 가치판단의 영역에 대해서는 서로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당원 총투표가 파국 막고, 분란과 혼란 최소화?

    이기중님의 글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요즘 일부 당원들이 당원 총투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원 총투표를 주장하는 분들의 선의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꼭 좋은 의도가 좋을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원 총투표를 주장하는 분들은 △현재 당 대회가 당원들의 뜻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보신당의 분열을 막는다는 반대할 수 없는 명분을 들이대며 △정당법상 문제 소지(중앙당 관계자의 글 참조)가 있지만, 당원 총투표라는 편법으로 우회하여 실시하자고 합니다.

    저는 이 주장에 대해 △당원총투표로 결정해도 당의 분열을 막는다는 보장이 없으며(조금 미안한 예지만, 사회당은 당의 진로를 놓고 당원총투표 후 대거 탈당하고 분열했죠) △당원총투표는 당원들을 대상화하고, 극심한 분열과 혼란을 야기하여 남은 열정마저 모두 소진해 버릴 수 있고 △무엇보다 책임있는 당의 결정 절차를 무력화시켜 지난 전국위원회처럼 혼란스럽고 무책임한 상황을 만들 수 있고 △당원총투표를 준비하고 시행하는 시간 내내 오히려 당의 혼란을 지속시키고 증폭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당 대회에서 당의 합당과 해산 등을 결정하는 방식은 거의 모든 정당들이 채택하고 있는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또한 현재 당헌은 3년 전 진보신당을 창당하면서, 노회찬-심상정-조승수-정종권 등 현재 통합 주장을 하는 분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절차이자 당원들의 최고 약속입니다.

    그런데 당 대회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이 시점에서 당대회 지위와 고유 권한을 부정하고 당원 총투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아무리 의도를 좋게 봐 줘도 또 다른 의도를 가진 정략적인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제 각자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답을 써 낼 시간입니다

    지금 독자파, 통합파 ,복지파 각자의 입장이 정답이라고 할 객관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모두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고 이것은 결국 각자의 신념에 따라 실천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다시 판단하면 됩니다. 각자 잘되면 각자 계속 그길 가면 되고, 어느 한쪽이라도 잘 되면 그때 그쪽으로 다시 모이면 됩니다. 그때 반갑게 맞아주고 면박주지 맙시다.

    당 대의원 구성과 성향으로 볼때, 절대 안되는 통합을 노회찬-심상정-조승수-정종권 등의 명망가를 앞세워 너무 억지로 밀어부치고, 갖은 꼼수를 부리다보니 불필요한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이건 결코 서로에게 좋은게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당원 총투표도 그 연장선상으로 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조건부 통합이나 조건부 반대도 있을 수 있고, 복지파에 찬성하는 당원들도 있은데, 연석회의 합의문에 대한 찬반만 묻는다는 것은 실제 당원들의 의사를 심하게 왜곡하고 갈등만 키우게 됩니다.

    아주 길게는 수십 년, 조금 길게는 십여 년, 짧게는 3년, 아주 짧게는 1년 동안 우리는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실력이 모자라고 힘이 부족해 연석회의 합의안에 찬성과 반대라는 답 밖에 쓸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곧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립니다. 이제 맞든 틀리든 각자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답을 써서 냅시다. 남의 답이 틀렸느니 맞았으니, 시험시간을 연장해 달라니 하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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