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진보정당 통합에 동의하는가?"
    By
        2011년 06월 16일 09:37 오전

    Print Friendly

    이 글은 6월 11일 전국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작성했다. 투고를 하려고 했지만, 포기했다. 이유는 이 글에서 언급하는 독자파 동지들(노진추 및 복지국가정치연대) 중 많은 분들이 가지고 있는 헌신성과 열정을 존중하고, 인간적으로도 매우 좋아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을 바꾸고 하드디스크에서 삭제까지 고려했던 이 글을 다시 올리는 것은 이번 전국위원회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이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통합진보정당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념과 가치실현을 위해 세력을 모으는 시도를 마지막으로 해보라는 것이다. 낡은 NL 대 PD의 문법을 뛰어넘는 운동실험에 마지막으로 동참해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이 권력 획득 가능한 대중정당이 되었을 때, 도저히 함께 못하겠다고 판단되면 각자 세력을 규합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정당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해보라는 것이다.

    글의 성격상 부득이하게 독자파 동지들을 비판하게 되어서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본인은 ‘녹색좌파정당’을 염원하고 있다. 하지만, ‘도로민노당’, 혹은 ‘복당’이라는 지적에 일부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1% 이념형 등대정당을 계속 하고 싶지도 않다.

    피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어떤 경로가 이익이 되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현재의 진보정당 통합에 동의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지금 부여하지 않으며 판단유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내가 맡은 의정활동에 전념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보정당 연석회의 합의문에 잉크도 채 마르기도 전에, 부대표 3인이 공개적 비판을 표명하고, 진보신당의 대표급들을 사퇴시키자는 독설이 게시판에서 난무하고, 독자파든 통합파든 세력 규합에 혈안이 되어 서로를 물고뜯는 현실에서 결국 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늑대인간이 될 때가 왔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제 중립성을 포기하고 늑대인간이 되어서 보름달이 뜨면 울부짖기라도 해야 될 때가 오고야 만 것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진보판 시대극’의 조연배우라도 되기를 자처한 이유는, 목숨만큼 소중했던 오늘의 동지들이 이제는 다른 계곡에 올라가 보름달을 보며 울부짖는 늑대인간의 비극이 이번 진보신당 대의원대회를 통해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비극 앞에서 한 번은 울부짖고 가야겠다는 늑대인간의 회한으로 이 글을 쓴다.

    1. 개인적 소회- 모든 것을 거부했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에 적극적인 ‘진보대합창’에 정치 부분의 인사로 제안자 서명에 동의를 요청하는 연락을 여러 분들로부터 받았다.

    단호히 거절했다. 이유는, 현재 정당 지지율 2%를 넘지 못하고, 실질 당원수가 1만 5천명 정도로 추정되는 진보신당을 노진추 그룹, 복지국가 단일정당 그룹, 진보 대합창 그룹, 녹색사회당파 등으로 쪼개어 놓고, 세력과시 놀음에 일개 지역의 구의원이 어느 한 곳에 명단에 이름 올리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연역법적으로 이름 먼저 올리고 당 대의원 만나서 설득하는 식의 활동이 비겁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진보대합창’ 명단 서명에 거절했다. 무엇보다도 당내 문제에 대해서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고 의정활동에 전념하는 것이 본인에게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가치판단의 동의 여부를 떠나 서명하지 않았다.

    나는 복지국가 정치포럼에 작년에 가입했다. 가입의 이유는,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분이 있기 때문에 월회비 1만원 정도 내는 것에 대하여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고, 복지국가 정치포럼에서 기획되어 나오는 구체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의견들-보건의료 분야에서부터 복지사회의 대한 포괄적 전망까지-을 충분히 배우고 경청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원임에도 불구하고(물론 고작 1만원 내고 활동에 결합하지는 않고 있다) 복지국가 단일정당 노선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제대로 된 진보정당 하나 만드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하고 있는 분들에게 ‘복지국가’라는 호명으로 진보정당 운동을 해체시킬 수도 있으며 양당체제로 수렴되는 것에 포획될수도 있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복지국가의 핵심적 내용인 사회보험제도 정책은 사회주의자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던 독일 비스마르크 정부에서부터 최초 실현되었다. 그리고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영국식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한 베버리지는 노동당이 아니라 자유당으로 출마한 사람이었다.

    소위 복지국가는 좌파의 기획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대공황으로 촉발된 파시즘과 2차 대전을 발생시킨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보편적 복지국가 단일정당운동’은 결코 좌파적 기획이 아니다.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 박근혜도 복지를 말하지 않는가)

    정확하게 말해서 복지국가 단일정당의 가치는 좋으나,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설정 경로에 대해서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진보신당 내부의 강경 독자파들의 내용에 동의를 하고 있는가? 그렇지도 않으며 그들의 이념지향적 등대정당 운동이 내가 추구하는 대중적 진보정당 노선과 대립되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2. 먼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에 대하여 말하겠다. 그리고, 요즘 논쟁이 된 민노당과 참여당의 통합 흐름으로 인해 국민참여당도 추가해서 언급하겠다.

    외부적 요인은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측근들의 부패, 반서민, 반노동자 정책, 반환경적 토건정책으로 인한 국정운영의 실패가 소위 반MB 정서의 이미지로 경제적 중산층에까지 강력히 확산되면서 민주당의 정권장악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정권획득 가능성의 프레임을 구성해보니-정치행동학에서 의미하는 권력획득을 위한 동맹노선-기존의 전라도 몰표+충청도 표심 자극+중산층의 표로는 승리할 수 없으며, 야권 단일화를 통해 일정도의 지분을 양보하는 것을 전제로 포괄적 진보성향의 유권자표(대략 10%?)를 모으면 승리한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러한 결론을 통해 민주당 내 진보개혁 모임이 시민사회와 진보세력에게 함께 할 것을 요청하면서 좌클릭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핵심적 요구사항은 진보정당들이 서로간의 줄긋기를 버리고 포괄적 진보와 포괄적 중도를 요구하는 국민의 뜻에 동참하라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선거연대를 통하여 한나라당과의 1대1 맞짱뜨기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다.

    내부적 요인은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그리고 국민참여당조차도 진보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성숙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에 답변할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민주노총과 전농을 기반으로 한 고리타분한 노동자, 농민 정당으로의 이미지, 즉 핍박받는 민중의 시름 깊은 얼굴의 이미지(일정도 이정희 대표를 통해 세련됨과 참신함을 기획하였지만 한계는 분명하다)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면서 5% 지지율 프레임에 갇혀 유의미한 성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진보신당은 노회찬, 심상정이라는 스타 정치인과 대표인 조승수 의원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파벌 간의 잡음과 무능력으로 인해 카리스마스적 정치인을 성장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주적 관계로 만들어 버리는 정치적 아마추어리즘과 난쟁이 정당의 어리석음을 반증하는 상황에 빠져있다.

    진보신당의 일부는 왜 진보 ‘정당’ 운동을 하는지에 대한 인식 결여와 가치에 대한 과대한 확신이 교차 편집되어서, 마치 유효기간이 지난 ‘젖소의 텅빈 우유병’을 잡고 마셔야 될지 말지를 고민하는 독신주의자의 난센스를 표현하는 모노드라마 부조리극의 주연이 된 것도 모르고 있다.

    국민참여당은 유시민 대표가 특유의 지적/대중적 판타지를 만족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도정치(‘애도의 정치성’은 매우 중요한 분석 분야이다. 세익스피어의 햄릿과 리어왕에서부터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케무샤’까지 애도는 역사적으로 권력의 창출과 유지를 위해 반복되는 서사구조이다)를 활용하여 충성도가 매우 높은 지지자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유시민의 잦은 말 바꾸기와 과도한 자기확신과 보궐선거의 연이은 패배로 인해 신뢰성이 부족한 지도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한계를 노출함으로써 진보정당에 합류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물론 그들 내부에서도 유시민 대표의 지지 여부를 떠나 진정성을 가지고 통합진보정당을 원하는 당원들, 정치적 이해득실 관계로 인해 진보정당을 원하는 당원, 노무현 정신을 버리고 진보정당에 들어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독자파 등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의 이러한 내부적 한계로 인하여 자유주의 세력을 포함한 포괄적 진보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어느 진영도 답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로 인해 자신들의 권력획득과 유지를 위해서라도 타 정당과의 합당을 모색해야 하는 딜레마에 모두가 빠져 있다.

    이러한 각 당의 딜레마의 해소와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일부 세력들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일단계 합당, 이후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통해 노동계와 시민사회세력 및 진보적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어서, 대중적으로 확고하게 10% 이상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세력은 향후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추진해서 연립정부에 참여하여 진보의 기획을 실천적 행위로 기획하려는 야심 또한 가지고 있다.

    3. 심리정치학의 극단을 보이고 있는 진보신당 내부의 통합논쟁

    현재 진보신당의 진로와 관련하여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관찰해 보면, 내부 정치적 행위의 갈등에서 표현되는 정치성이 심리적으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에 다분히 심리정치학적으로 보인다.

    심리정치학적으로 보인다는 논의는 토마스 홉스의 근대 정치철학에 대하여 논쟁을 했던 존 그레이와 같은 자유주의 학파에서부터 에리히 프롬과 같은 프랑크프루트 학파 등 다양한 학자들이 근대정치철학에 대하여 논쟁하는 부분이므로 특이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전제 하에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심리정치학적’이라는 주장에서, ‘심리적’이라는 것은 과거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한 진보신당 당원들 다수가 과거 민주노동당 활동과정 속에서 겪었던 트라우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진보신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원들의 다수는 자주파들의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의 지역 내에서 다양한 패권주의적 활동 방식과 종북주의 활동이 진보정당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는데도, 자주파들이 이에 대하여 끝까지 모호함과 자기합리화로 일관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 때문에 받은 트라우마의 흔적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당원들 역시 진보신당과의 분당 과정에서 분당파가 민주노동당을 공격했던 각종 비판에 대하여 이성적 해석이 아닌 정서적 반감의 골이 깊고, 이들 역시 심리적인 마음의 상처를 진보신당 당원들 못지않게 간직하고 있다)

    앞에서 열거한 이러한 심리적 상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진보가 나아가야 될 ‘정치적’ 상황이 요구되면서, 통합을 어떻게, 어떤 경로로, 그리고 어떤 세력과 함께 핵심적으로 나아가야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치적 판단 앞에서, 진보신당은 내전에 가까운 논쟁을 벌이면서 다양한 견해와 조직이 확산되어 되돌리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나는 이상한 조합으로 양 극단에서 현재의 통합파와 지도부를 비판하는 두 세력, ‘강경 독자파’와 ‘복지국가 단일정당파’를 비판하고자 한다.

    1) 강경 독자파

    민주노동당과 합당을 반대하는 강경 독자파들인 이분들의 열정과 신념윤리에 지지를 보내지만, 냉혹한 현실주의적 정치운동, 특히 대중적 정당운동에 대한 이해가 사뭇 나와 다른 것 같다. 다분히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으며, 때문에 현실의 냉철한 대응에는 아마추어적이다.

    이들은 알린스키의 말처럼 때로는 타협을 미덕으로 고민해야 하는 정치적 행위를 고대 스콜라철학자들처럼 ‘선악기준’으로 판단하는 사고에 집착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사회운동적 대중정당’은 하버마스의 표현대로 ‘수행 모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회주의자의 의지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자본주의체제 유지에 봉사하는 사민주의적 복지 테제를 요구하는 모순의 충돌, 자본주의의 파국이 임박했기에 대중적 봉기를 주장하자는 혁명적 대기론자의 모습도 아니면서도, 비정규직 운동에 모든 열정을 모아서 이들이 결국 자신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낭만성이 ‘수행모순’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파 내부에는 이상주의적,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짊어진 근본주의자와 계파 유지에 매몰된 가부장 족장들과 무인도의 로빈스 크루소적(?) 삶을 정당에서 이념화하고 싶은 이상한 자연주의자들이 트라이앵글을 형성하여, 맑스 베버의 지적처럼 ‘정치는 악마와도 타협하고 거래해서라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야 되는 현실’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연합형태의 대중적 진보정당운동에 중요성을 두고 있지 않다.

    나는 강경 독자파들이 생각하는 ‘가치를 기반으로 한 등대정당’이 한국사회에서 유의미성은 있겠지만, 진보의 정권획득에 대한 권력의지를 결여하고 있다는 충고를 귀담아 들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2) 복지국가 단일정당파

    ‘복지국가 정치연대’는 민주당 진보개혁 모임 내의 우상호, 임종석, 안희정 등 구 전대협 세대들이 민주당에서 진보블럭을 형성하면서 보편적 복지국가 노선에 진정성을 가지고 동의하고 있으며, 때문에 기존 민주당의 동교동파로 대변되었던 구시대적 운동과 결별하는 수순을 진행할 것이라는 가능성의 전제 하에, 민주당의 개혁세력도 포괄하는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구성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금의 반MB 정서로 대변되는 외부적 요인의 존재로 인해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호남+진보’를 동맹관계로 구축하고 보편적 복지노선을 채택할 때 민주당이 정권획득을 할 수 있다는 현실적 정치지형도 속에서, 과연 민주당의 진보(?)도 포괄하자는 ‘복지국가  단일정당’론이 진보정당에게 어떤 이익이 될지, 원흉이 될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입장 유보이다.

    나는 역사적 결론과 그 진행형으로 표상화된 사회양극화, 비정규직 확산과 금융주도형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의 탄생이, MB 이전의 자유주의 세력인 민주당의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극단화되었다는 것을 ‘가치의 성찰’이라는 전제로 비판하고 싶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양당체제의 시스템에서 보편적 복지국가 정당 건설이 현실 가능한가라는 의문이다. 그리고, 결론을 성급하게 시장 중심 보수정당 대 보편적 복지국가 정당으로 하는 양당체제를 만들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과도한 예단 역시 현실정치의 역학구도를 고려해 볼 때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보파가 다수가 되는 민주당을 가설 전제로 한 복지국가 단일정당은 현실주의의 패턴에서도 합당하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정당운동의 현실에서는 ‘기브 앤 테이크’가 여야 정당뿐만 아니라 당내 계파 간에서도 타협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며, 아무리 노동을 전제로 한 복지를 주장하더라도, 세력관계의 역학구도와 중산층의 표심 때문에, 노동이 실종되는 복지, 즉 보수도 중도도 실행할 수 있는 복지논리에 포획될 수도 있다.

    때문에, ‘복지국가 단일정당’ 역시 현재 한국사회의 정치지형도에서는 ‘노동을 바탕으로 한 진보’를 주장하는 진보진영이 손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며, 이것을 이들 역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4. 통합진보정당의 필요성에 대하여

    나는 앞으로의 통합진보정당이 보수와 진보가 무엇이 다른지를 대중들을 현실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 능력을 갖춘 정당, 1백만 명의 당원을 확보할 수 있는 꿈을 꾸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 내부에서는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 녹색생태주의자들이 자신의 주의주장을 가지고 백가쟁명식의 논쟁을 하면서 서로에게 ‘생계란을 던지는 신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 속에서 포괄적 의미의 진보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향후 다양한 진보의 가치가 국가권력의 운영자로 인정받을 때가 되면, 민족주의정당,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 등으로 분화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민족주의가 진보인가?라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겠다) 그 시점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은 역설적이지만 서로의 견해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

    최근 수많은 동지들과 전화통화를 했다. 최종합의문은 북한 3대 세습이 빠졌고 완전히 후퇴된 안이라는 것, 사회당이 왜 빠졌는지에 대하여 성찰해야 된다는 주장을 말하면서 동의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많은 동지들과 통화했다.

    이 정도의 합의문이면 아름다운 문학작품(?)이라고 말하는 모 씨의 조롱은 이제 각자 알아서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자는 말이었다. 너무나도 잔인하게 들렸다. 왜냐하면 이 잔인한 모씨에게 너무 정이 들어서다. 한둘이 아니다.

    창당 당시 새로운 진보정당의 꿈을 꾸었던 당원동지들이, 온갖 애환을 달래가면서 노동과 생태에 관련된 각종 투쟁에 헌신했던 당원동지들이, 진보의 재구성이 우리 힘으로 역부족이라는 현실로 인해, 통합진보정당을 요구하는 소위 합의문 쪼가리 해석 때문에 갈라져야 하는가? 마치 구약성서 해석을 놓고 교파가 갈라져 전쟁을 벌이는 중세시대의 수도사의 운명을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당이 재현해야 하는가?

    어제 그 생각을 하면서 부산의 남수영당협 위원장과 소주 한 잔 하면서 지독한 상실감에 빠졌다. 유대인 화학자 프레모 레비는 대다수가 죽었던 아이슈비츠의 지옥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지만, 6백만 명이 학살당했던 자신의 동포 유대인들이 과거의 역사를 망각하고 팔레스타인을 도륙하는 현실에 절망하고 자살을 하고 만다.

    그의 저서 『이것이 인생인가?』를 떠올리며, 진보정당 운동을 이렇게 허망하게 종결하는 우리의 역사도 결국 ‘이것이 인생인가?’라고 자조하면서 씁쓸하게 생의 마감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가?

    그래서, 대의원 대회를 앞두고 진보신당 동지들에게 부탁하고자 한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만들자고 우리는 풍찬노숙의 길을 스스로 자처했다. 한국에서는 진보정당이 불가능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때, 무상급식·무상의료가 비현실적이라고 운동권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될 때, 이것을 기획했고 결국 현실화시켜서 누구나 가져보고 싶은 혹은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일구어내었던 최초의 입안자들이 있는 정당이 지금의 진보신당이다.

    그렇게 능력을 갖춘 우리가 대한민국의 권력지형도를 바꿀 야심을 버리고 신념윤리에만 기반한 등대정당으로 고립화되려는 욕구를 왜 가지는지를 현실의 나는 동의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현실적 세력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진보의 가치를 탈색시킬 수 있는 그 위험한 행위를 과감하게 추진할려는 복지국가 단일정당 주장론자들에게도 동의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냉혹하며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한국사회에서 유의미한 진보세력의 존립을 스스로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이전부터 확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동맹운동과 정당운동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식 ‘무지개동맹’이 되었든, 브라질 노동자당의 정파등록제적 방식이 되었든, 어떤 방식이건 간에, 반한나라당 정서가 강화되면서 보수의 입지가 점차적으로 줄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규모를 가지고 실력을 갖춘 진보정당을 염원하는 대중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도저히 심리정치적으로 이해할 수 없더라도, 최종합의문의 내용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통합 진보정당 내에서 실험이라도 해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이후에 보다 많은 세력을 결집해서 다른 독자정당을 만들어 주기를 부탁드린다.

    대한민국의 권력지형도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는 권력 창출을 위해 심리적 트라우마가 아무리 크더라도 이것을 넘어설 용기를 가지고 통합 진보정당의 길에 함께 하기를 나는 바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고통과 좌절, 인간적 고뇌와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본인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당운동을 하는 근본적인 두 가지 목표, 권력 창출과 진보의 가치실현은 현재의 진보신당의 실력과 규모로는 불가능하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호감을 받을 수 있는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최종합의문에서 언급된 진보정당 간의 합의가 단순한 과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간의 재결합으로 끝나지 않고, 향후 진보적 성향의 국민들이 믿고 함께 이 길을 갈 수 있는 대중적으로 열린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기를 나는 희망한다.

    진보신당 내의 소위 독자파들은 온건 사민주의자 슈뢰드 정부의 좌파 사회주의자 오스카 라퐁텐(전 재무부장관)이 사민당 정권 속에서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라는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버티다가, 세력을 규합해서 민사당과 함께 독일좌파당을 탄생시킨 실천경로를 고민해 보기를 부탁드린다.

    사민당의 우경화에 이미 회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때를 기다리고 세력을 모아 독일 좌파당을 형성하고, 또한 현재의 좌파당을 독일에서 유의미한 정당조직으로 만들어내는 그의 실력은 결코 이상적 가치만을 학수고대했던 강단 좌파나, 운동을 거리의 항쟁만으로 사고했던 68세대의 낭만적 정서를 거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때문에 진보신당의 독자 존립을 염원하는 독자파 당원들은, 수많은 세월이 걸리더라도 유의미한 진보정당에서 좌파적 실천을 해주고, 자신들의 신념윤리와 배치되는 것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가 되었을 때에는 함께 할려는 세력을 최대한 많이 규합해서 제대로 된 좌파정당을 조직하기를 부탁드린다.

    지금 일부가 주장하는 노동자 중심 계급정당과 녹색사회당은 이념가치형 정당으로서는 유의미성을 가질 수 있지만, 현재의 정치지형에서는 권력 획득을 목표로 하는 진보정당운동으로는 유의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아무리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과 녹색을 중심에 두고 실천하는 정당이 되더라도, 그리고 우리의 희망대로 소선구제 내에서의 게리멘더링 체제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되더라도, 현실의 정치지형도에서는 존립가능성이 희박하다.

       
      ▲필자.

    외부에서 순수한 마이너 가치정당도 필요하겠지만, 통합 진보정당 내부에서 식중독에 걸릴 각오를 하고 현실의 진흙탕에서 우리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는 것도 필요하다.

    브라질 노동자당이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소수파 진보정당이었지만, 성향이 다른 다양한 정파들을 규합하고, 포르투 알레그레와 같은 현실적 정치활동을 통해 단련되면서, 국민들에게 국정운영에 대한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그들은 정권을 장악했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도 언젠가는 분명히 실현 가능할 것이다. 우리만의 가치논쟁 리그를 벗어나 보다 대중적 진보정당 노선을 추구하면서도, 당 내부의 이합집산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상투쟁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구시대적 NL 대 PD 구도를 극복할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이 길에 함께 갈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간곡히 부탁드린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