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된 '포용정책' 필요할 때다"
        2011년 06월 15일 03: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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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화염과 적개심으로 가득찬 남북관계 속에서 6·15공동선언 11주년을 맞는다. 2000년 남북 정상이 적대와 대결을 종식하고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로 약속한 뒤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노력하기를 8년, 남북관계에서는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자신의 절대적 기준을 내세우며 그에 미치지 못하면 변화가 아니라고 우기는 이 말고는 휴전선에서 총격전이 사라지고 서해상에서 남북교전을 방지하기 위한 신호체계가 작동하며, 남북간 도로가 뚫리고 개성공단에서 수만명의 북한 근로자가 대한민국 제품을 생산하게 된 현상에 대해 변화가 아니라고 강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6·15에서 10·4선언으로 이어지던 시절, 우리는 포용정책의 일관된 추진을 통해 동족상잔의 전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공동번영의 남북관계 구축의 가능성을 보았다.

    ‘평화관리자’에서 ‘분쟁당사자’로의 위상 추락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3년 4개월이 지난 오늘 최악의 남북관계 속에서 국민은 전쟁을 걱정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일상화된 안보 불안 속에서 국민의 ‘삶의 질’은 형편없이 퇴락했으며 남북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 증진과 공동번영의 꿈은 퇴색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국제사회에서 평화관리자로 부상했던 대한민국은 지금 없다. 대신 남북 대결로 발생한 군사적 긴장을 일방적인 한미동맹 강화로 풀려 함으로써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북한과 앙갚음 게임(tit-for-tat)이나 하는 ‘분쟁당사자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동북아에 길게 드리워졌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한반도 정세의 비극적 변화는 근본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6·15공동선언의 계승을 거부하고 포용정책을 부정하며 대북 대결정책을 펴면서 발생했다. 그 결과 6·15를 거부한 이명박 정부의 지난 통치 기간은 역설적으로 6·15 정신에 기초하지 않고는 한반도 문제가 한치도 진전할 수 없음을 입증한 시기였다.

    6·15의 의미는 남북관계를 적대에서 화해협력으로 바꾸기로 하고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전기였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6·15는 남북관계를 넘어서 포괄적인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라는 과업을 정면으로 시도한 사건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미국·일본과의 대화를 권유했으며, 이어서 두 나라 지도자들을 상대로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도록 설득했다.

    획기적 사건으로서의 6·15공동선언

    그 결과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적대관계 해소를 지향하는 ‘공동코뮈니케'(2000.10)가 발표되었으며 일본과 북한 사이에도 ‘평양선언'(2002.9)이 발표되었다. 비록 미국 내 정세변화와 2차 북핵위기 발생으로 이러한 움직임들에 제동이 걸렸으나, 이때 6·15공동선언이 닦아놓은 길은 앞으로도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를 향한 험난한 여정에서 소중한 유도로(誘導路)가 될 것이다.

    6·15를 계기로 본격화된 남북대화에서 확보한 대북 영향력은 한국 정부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에 중요한 역할을 맡을 원천이 되었다. 예컨대 6·15공동선언을 계승한 참여정부는 북한과의 상시적 대화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미·중과의 조율을 추동함으로써 6자회담에서 촉진자가 될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정부가 9·19공동성명(2005.9)을 도출하는 데 주도적이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6·15공동선언은 그동안 강대국 정치에 밀려 당위적으로만 자신들이 문제해결의 주체였던 남북한이 한반도 분단해소 과정에 실질적인 주체로 나선 사건이었다. 가장 민감한 통일의 방법에 대해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한 공동선언 제2항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한반도 위기 이겨낼 ‘6·15 정신’의 부활

    남과 북이 사실상 점진적이며 단계적인 연합제 통일방안에 합의한 이 조항은 타율적으로 강요된 분단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방향을 자율적으로 합의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6·15에서 확인된 분단해소를 향한 남북의 독자적 노력은 2007년의 10·4선언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을 위해 남북이 공동노력하고 그 일환으로 종전선언을 추진하자는 데까지 발전했다.

    이렇듯 6·15는 우리에게 현단계의 남북관계 진전을 넘어서 한반도 냉전구조해체의 계기를 제공하고 통일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이 모든 과정에 남과 북이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참여하고 대립체가 아닌 공동협력체를 추구한다는 명제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 결과 6·15가 지향했던 한반도의 모습은 남북간 공존과 평화번영, 통일이었다. 그렇기에 남북관계 악화와 북핵위기 심화, 심상치 않은 북?중관계 강화 등으로 기로에 선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길은 6·15의 부활밖에 없다.

    한반도에서 다시 6·15의 정신을 되살리고 6·15선언의 내용을 구현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가장 빠른 경로는 이명박정부가 대북정책을 전면 수정하여 6·15의 계승과 포용정책의 수용을 결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부질없는 바람임을 경험과 직관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결론은 2013년에 6·15선언과 10·4선언을 계승할 수 있는 정권이 들어서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평화개혁진영이 진력해야 한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2013년을 내다보며 새로운 한반도 구상을

    무엇보다 2013년을 염두에 둔 평화개혁진영의 한반도 구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 기본은 6·15와 10·4선언을 계승하고 포용정책을 이어가는 것일 터이나 그동안 달라진 한반도 상황을 고려하고 포용정책 추진 과정에서 부족했던 점들을 가려내 보완하는 한단계 진화한 대북정책이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과거 민주정부 10년간의 포용정책에 대해 당시의 대내외적 조건과 국가역량 한계 등을 고려치 않고 새로운 포용정책이 필요하다면서 그 앞에 O, XX, △△△ 등의 접두사를 붙인 무분별한 작명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 대신에 우리가 변화된 정세에 새롭게 대응해야 할 것이나 당시 제대로 관심을 쏟지 못했던 요소, 혹은 새롭게 제기되는 관심을 포괄하는 포용정책이어야 한다. 예컨대, 대북관계에서 시민참여의 제도적 확대나 남북연합을 향한 구체적 실천의 프로그램 개발, 그리고 환경·생태를 고려한 남북협력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단순히 남북관계의 개선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분단체제를 온전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친일 기회주의세력에서 번식해나와 분단을 향유하며 기득권을 형성한 집단과 대결하고 수구적 반공반북 담론을 일소함으로써 ‘다름’이 공존하며 발전하는 건강한 사회문화적 풍토를 조성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결국 지금은 6·15와 10·4선언을 낳고 9·19공동성명 도출의 기반이 된 기존의 포용정책의 토대 위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백낙청이 제창한 ‘포용정책 2.0′(링크) 같은―모색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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