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친구의 마지노선은 국철 닿는 대학, 왜?
        2011년 06월 15일 0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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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적으로 보면 나랑 동년배들 중에 30%가 전문대로 진학했다. 그리고 40%가 4년제 대학로 진학했다. 서울 변두리에 사는 내 동네 친구들은 반에서 중간을 밑돌았기 때문에 대부분 전문대를 가거나, 대학에 가지 못한 30%가 되었다.

    통학하는 방식이 말해주는 것들

    그러다가 수능 필요 없이 모집하는 전문대에 재수해서 들어가기도 하고, 대학에 가지 못한 30%는 그냥 알바를 하다가 군대를 갔다. 아니, 정확히는 여기저기 ‘쓸 만한 직장’을 구하려고 알아보기는 했는데, 부모의 봉제 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했던 녀석 하나를 빼면 모두 그런 직장을 구하지는 못했다. 나머지는 어쨌거나 대학을 다녔다. 그 학교들 중에는 모두 다 알 수 있는 학교들이 있지만, 동시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학교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나 같이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전날 마신 술을 깨면서 엄마의 잔소리에 일어나서 통학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지하철을 타고 국철로 갈아타는 학교에 가기 위해서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게 다반사였다. 또 몇몇은 5시에 일어나서 6시 30분에 다니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 청량리나 강남역, 혹은 상봉터미널 앞으로 나가곤 했다.

    그런데 대부분은 국철로 탈 수 있는 학교까지만 다녔다. 셔틀버스를 타고 갈 학교는 너무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달 십 몇 만 원 정도 차비를 내야 하는데, 그 자체도 굉장히 부담이 되는 것이었고, 자취는 아예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농촌에서 상경시켜 서울의 살인적인 물가와 월세를 감당하면서 대학을 보내는 부모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동시에 그 돈 못 내서 동네에서 빌빌대면서 지내고 있을 녀석들은 도대체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가 궁금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2000년대 초반에 등록금은 보통 250만 원 정도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다행히 그 때만 해도 집에서 짜낼 돈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용돈까지 받지는 못했다. 동네 친구들은 밤에는 호프집에서 일하곤 했다. 그래도 서로 힘들다는 말은 별로 하지 않았다. 알바하는 호프집에서 보았던 예쁜 여자와 어떻게 잘 해볼까 혹은 전화번호를 땄네 안 땄네가 화두였다.

    소개팅 부탁도 안 하게 된 친구들

    과외를 하던 나는 그냥 별말 없이 맥주를 축이고 소개팅해서 만난 여자 이야기나 열심히 할 따름이었다. 친구들은 20대 초반에는 괜찮은 여자가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소개시켜 주려고 생각을 하다가도 곧 단념하기 일쑤였다.

    외모와 성격만 놓고 보면 소개시켜줄 수 있는 여자가 떠올랐지만, 20~21살 즈음에 소개팅에 대해서 운을 띄웠다가 “어느 학교 다니는데?”하는 질문에 너무 ‘솔직하게’ 대답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이 지나자 동네 친구들은 내게 소개팅해달라고 조르지 않기 시작했다. 재미있게 말했다가 사뭇 진지해지면 괜히 불편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해.”라는 말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다. 학벌은 이미 결혼정보회사가 개입하지 않아도 그 이전부터 대체로 연애에 있어서도 정확하게 교환할 수 있는 자본이었다.

       
      ▲반값 등록금 투쟁에 나선 학생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로 비추어보면 등록금 그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몰랐다. 등록금이 없으면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대출금 이자가 아무리 높아도 어쨌거나 당장 등록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등록금이 비싼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의 대출자 비율은 가장 낮은 편이다. 예컨대 가장 비싼 학비를 내야하는 연세대학교의 대출자 비율은 9%. 서울의 대출자 비율 평균은 25%다. => 관련기사)

    다른 문제가 더 복잡했다. 학교가 멀 때 기숙사가 별로 없었고, 기숙사가 없어서 방을 구하려면 전월세는 너무나 비쌌고 여기에는 아무런 공적인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한 번에 보증금을 마련해주는 건 등록금보다 훨씬 더 벅찬 일이었다. 게다가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그 자체가 아득한 것이었다.

    살림 차려달라는 것과 비슷한 얘기

    이건 부모에게 살림을 차려달라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 돈을 댈 수 있으면 등록금이 아득했고, 등록금을 메우면 그 돈이 아득했다(대출자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들은 두세 군데 대학을 제외하면 모두 지방에 있는 학교다).

    어쩌면 학벌이 좋은 학교에는 돈 때문에 절절 매지 않은 학생이 다니거나, 알바로 그 돈을 다 메울 수 있을 만큼 많은 과외자리의 확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아니면 그 사이에 껴서 학벌이 좋은 학교에서 엉성한 위치를 점하고 학점 관리도 안 되고, 알바를 여러 개 뛰다가 점차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는 경우도 많이 존재한다. 돈이 문제가 되면 어쨌거나 뭔가는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이는 좀 더 나은 사정일 수도 있다. 성적이 마지노선 이하로 떨어질 경우 부담은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 소재 대학에서 뽑는 학생들의 인원을 다 계산해 봐도 20%를 넘지 않는다. 수도권 대학까지 다 포함하더라도 절대 다수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수도권까지 포함한 대학들을 가르는 것은 학생들의 거주지가 아니라 성적이다. 달리 말하면 거주비의 문제와 생활비의 문제는 이를 충당할 수 있는 소수를 제외하면 등록금 문제보다 더 크게 작용된다는 것이다.

    2009년 권영길 의원실의 자료처럼 학벌은 정확하게 부모이 자산과 소득 수준에 비례하는데, 부모의 자산과 소득 수준이 높지 않으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들어가는 게 어렵게 되고, 이래저래 해서 등록금 외의 방값과 생활비가 엄청나게 많이 든다. 그리고 알바를 구할 여건도 서울보다 훨씬 더 열악하기 마련이다.

    돈 없어서 대출 받고, 그러한 대출은 학벌이 그리 좋게 평가되지 않는 지방대들에 집중되고, 자신의 거주지 연고와 상관 없이 성적순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시스템에서 등록금이 지금의 핵심 쟁점이 될 수는 없다.

    반값, 도움은 되나 핵심이 아니다

    분명 지금 이슈로 떠오른 ‘반값 등록금’이 성사되는 건 이모저모로 분명 긍정적인 일이 될 것이다. 등록금이 반값으로 떨어지는 것만으로 굉장한 가계 지출에 여유를 주게 될 것이고, 살림살이를 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핵심 쟁점은 아니다. 오히려 따져 물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 ‘원하는 곳’과 상관없이 20대를 위치시키는 입시 시스템이고, 그렇게 위치를 부여하면서도 자신의 삶 자체는 알아서 책임지라며 생계 유지의 공적 책임을 지지 않는 메커니즘 그 자체다. 젊은 세대의 ‘방살이’에 대해서 공적인 문제 제기는 등록금 문제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겨우 겨우 대학생활의 ‘생존’에 성공한다 한들 대학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노동시장의 신자유주의 논리’에 대한 비판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대학에서 ‘여유로이’ 여행하고, 공연, 여러 가지 문화상품을 소비하고 동시에 적절한 시간에 적절하게 ‘자기계발’의 수행을 누릴 수 있는 것과 누리지 못하는 것의 차이로 등장하는 것들의 사회경제적 맥락에 대한 비판이 있어야만 한다.

    심지어 ‘연애’조차 자신의 ‘여유’와 관련되어 있다. 바쁜 일상에서 연애를 사치로 여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에 대한 ‘문화논리’의 비판도 동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실제로 엄연하게 ‘스펙’으로 등장했고 그것들이 자신의 소득수준과 삶의 방식을 결정짓는 이 국면에서 김슷캇의 주장(“등록금 철폐, 사학 국유화 외치자!”)처럼 교육의 ‘공공성’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으면 ‘반값 등록금’ 투쟁은 한나라당이 요새 프레임을 던지는 ‘등록금 인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될 것이다. 이미 대학은 80% 이상이 수행하는 ‘의무교육’과 다름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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