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년 여름, 3일 동안의 여행
        2011년 06월 15일 11: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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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금 이례적으로 노동시간임에도 집에 앉아 있으면서 저희 동네 치과와 약속한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연히 치통의 기습(?)을 받아, 거의 책읽기가 불편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플 때에 저로서 최고의 진통제는 글쓰기입니다.

    글쓰기 치료법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을 글로 정리해 놓으면 왠지 아픔이 조금 물러갑니다. ‘작문요법’이라고나 할까요? 오늘의 주제는, 제가 사춘기 때부터 고심해온 주제인지라, 아무래도 거의 20여년 간의 고민을 정리해 놓으면 이 무서운 치통이 조금 덜어질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올리고 치과에 가려 합니다.

    저는 지금도 1991년 여름에 열차를 타고 흑해안 휴양지에서 레닌그라드로 돌아가는 3일을 아주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게 쏘련의 마지막 여름이었다는 사실, 이 후로는 저희와 같은 일선 지식일꾼들이 흑해안 휴양지에 대한 꿈을 완전히 버려야 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불과 1년 후에 가스총을 휴대하지 않고 집을 떠나기가 무서운 준(準)내전적 상황들이 도래할 사실 – 이 모든 사실들을 저는 그 때에 알 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열차여행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는, 가스총 없이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마지막 쏘련식 여행이라서는 아닙니다. 흑해 북안을 떠났을 때에 어떤 이름 모를 우크라이나의 철도역에서 우연히 신문가판대에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운좋게 사서, 레닌그라드 도착까지 그 책을 열독해 거의 외울 정도가 됐습니다. 지금도 그 여행을 ‘프롬과의 만남’으로 기억합니다.

    신문 가판대에는 황색신문과 에로잡지 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늘날 러시아를 염두에 둔다면 20여년 전의 쏘련에서 신문가판대에서 사르트르나 일본 단가집, 도덕경의 러역, 아니면 프롬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은 거의 믿어지지 않는데, 엄연히 사실이었습니다.

    페레스트로이카 시절인지라, 냉전기간에 외국사상에 접근 제한 당해왔던 인민들은, 그 때에 ‘외국 진보 사상’이나 ‘외국 고전’에 대한 매우 뜨거운 열기를 보였습니다. 참, 프롬의 이 책은 기쁘게도 번안 식의 국역본도 있는데 국내에서 얼마나 읽혀지는지 저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좌우간, 그 때에 불편한 열차 침대에서 그 책을 읽고 얻은 깨달음을, 그 후로 20년 동안 잊을 수 없었습니다.

    에리히 프롬, 인본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

    인본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인 프롬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소유욕’의 정반대로 정의했습니다. ‘소유욕’이라는 것은 자아 본위적인, 자아 지향적인, 그리고 본질적으로 타자에 대해 배타적인 욕망입니다. 효도를 함으로써 효자/효녀 소리 듣고 싶은 욕망, 자식에의 ‘투자’를 함으로서 노후에 자식으로부터 ‘모심’을 받고 싶어하는 욕망, ‘나의 여자/남자’가 오로지 ‘나’에게만 속하기를 바라는 욕망 – 이는 이 사회에서 ‘사랑’으로 오해 받는 각종 소유욕의 종류들입니다.

    그 중에서는 아마도 가장 독신(瀆神)적인 것은, 불전(佛錢) 헌납이나 교회 출석, 수천배(數千拜) 올리기 등등을 통해서 ‘나’나(나의 연속으로 인식되어지는) 부모/친지를 위해 천당/서방정토에서 ‘한 자리’를 마련하려는 욕망입니다.

    정말이지, 부처님/하나님 사랑의 이름으로 신과의 ‘자아 본위의’ 거래를 시도하는 사람보다 차라리 살인의 악업을 지어 지옥에 갈 각오로 억압자를 상대로 수류탄을 투척하는 정의의 테러리스트가 천당/서방정토에 가는 게 더 순리일 것 같습니다. 그는 악업을 짓는다 해도, 적어도 자기자신을 위한 악업이 아니고 타자의 공통적인 업(業)을 향상시키기 위한, 자기 희생적인 악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타자의 입장에 서서 타자에 대한 자신의 배타적인 욕망을 버리고, 타자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타자의 욕망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의 흔적이 없을수록 사랑의 순도가 높아지게 돼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은 바로 그럴 것입니다. 신이 우리에게 "나를 모시라", "나에게 예배하라"라고 욕망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타자와의 관계망 속에서 남의 행복을 건설해주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도 행복해지기를 신은 그저 바랄 뿐입니다.

    내 아이는 19세에 ‘방생’시킬 생각

    인간의 사랑은 신의 사랑만큼 ‘무아적'(無我的)이지 못하지만, 일단 이 방향으로 계속 시도하는 것은 우리 존재의 진짜 의미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제 장자 유리군(君)을, 그 녀석이 19세(노르웨이에서의 성인 연령)가 되는 그 순간 바로 ‘방생'(?)하려고 합니다. 본인이 이제 클 만큼 컸으니까 알아서 살아라 하고, 그 인생에 대한 일체 간섭을 절대 안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가 제게 지원이나 상담 등을 요청하면 이를 적절한 한도 내에서 받아들일 용의는 있지만, 그와의 관계를 기본적으로 서로 동등한 타인 사이의 관계 형태로 건설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그에 대한 소유 욕망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고, 또 그래야 그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노후에 자식으로부터 ‘부양’이나 ‘효도’를 받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남에게 글 등으로 도움 주지 못하고 도리어 남의 도움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태가 되기 전에 제발 저를 황천으로 보내달라고 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의 방법으로 자식과의 관계를 설정하자면 부자 양쪽이 내면적으로 좀 강해야 하는데, 일단 아동의 자립심을 키우는 것은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교육의 목적이지요.

    남녀 사랑 같으면, 독점욕이라는 독약이 제일 퍼지기 쉬운 영역입니다. 더군다나 이 미쳐버린 세상의 가장 악질적인 억압장치 중의 하나인 배타적인 일부일처제가 이와 같은 독점욕을 법제화까지 시키니 더더욱도 소유욕을 사랑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제게 (프롬의 정의에 맞는) 진정한 남녀 사랑의 모범은 로서아 혁명시인 마야코브스키와 문학연구자/혁명가 요십 브릭의 부인 릴랴 브릭의 사랑입니다.

    1915년, 부인 릴랴가 청년 시인 마야코브스키와의 사랑에 빠졌을 때에 그 남편 요십 브릭은 그저 기뻐했을 뿐이고, 마야코브스키를 초청해 셋이서 하나의 호구를 이루어 같이 살게 됐습니다. 요십 브릭과 마야코브스키는, 질투를 느끼기는커녕 아주 절친한 친구가 된 것이죠.

    남녀 사랑의 모범

    1923년 이후에 마야코브스키와 릴랴가 더이상 육체적 관계를 거의 갖지 않았지만, 역시 아주 가까운 동무로 지냈으며, 거기에다가 릴랴가 마야코브스키와 새롭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또 다른 여러 여성들과 가까운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십 브릭과 릴랴 브릭, 그리고 마야코브스키 사이에 각종의 ‘시련’은 있어도, 한 가지 절대 없었던 것은 질투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소유’라는 게 없어지게끔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혁명가들이라서 그런 것인이었던가요?

    꼭 혁명가만이 진정한 (비소유적인) 사랑을 할 줄 아는 게 아니지만, 대체로 공산주의적 혁명과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동질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란 사유와 이윤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고, 진정한 사랑은 소유욕과 독점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공산주의자만이 진짜 사랑을 할 줄 아는 게 아니지만, 공산주의자라면 적어도 자신의 소유욕에 대한 ‘거리 두기’, 상대화, 궁극적으로 소멸 작업을 해야 할 듯합니다.

    아아, 오랫동안 생각해온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니 치통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좌우간, 약속시간에 맞추어서 이제 치과에 다녀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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