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날라리가 되자
        2011년 06월 14일 10: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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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17대, 700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1박 2일 동안 이렇게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다니, 정말 대단한 거 아닌가요?”

    “맞아요.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수시로 30대가 넘는 버스에 수천 명의 조합원들을 동원해 집회를 하지만, 이렇게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거든요. 참가비도 없고, 밥값까지 주지만, 적당히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죠.”

       
      ▲"해고는 살인이다" 그래서 "왔노라, 놀았노라, 싸웠노라." 

    희망의 버스 1박 2일의 탄생

    6월 12일 밤, ‘희망의 버스’ 진행팀 30여명이 1박 2일 일정을 마치고 늦은 저녁을 대신해 맥주와 통닭을 먹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희망의 버스’는 송경동 시인과 이창근, 신유아 등이 모여 김진숙의 크레인 고공농성을 연대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골몰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였다. 처음에는 기차를 타고 가는 ‘희망의 열차’였다가 버스로 바뀌었다.

    투박했던 ‘희망의 버스’ 아이디어는 비정규직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면 누구나 모이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회의에서 논의되고, 열정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시간이 갈수록 풍성해졌다. 기륭전자, 용산, 쌍용차에 함께 했고, 김진숙을 사랑한 노동자, 문학가, 미술가, 음악가, 판화가들이 함께 하면서 ‘판’이 커졌다.

    송경동 시인이 ‘희망의 버스’를 타고 가자는 글을 언론에 기고하고, 실천하는 배우 김여진과 행동하는 언론인 홍세화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이 함께 가자고 제안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사람들은 인터넷 까페에 가입해 참가 신청을 했고, 버스는 3~4대에서 17대로 순식간에 늘어나게 됐다.

    책임자가 누구예요?…타협과 뒷거래는 없다

    6월 11일 전국에서 출발한 17대의 버스가 부산으로 향하자, 경찰은 민주노총 부산본부에게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물어왔다. 촛불 행진을 불허하고, 전원 연행하겠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인도를 통해 행진하는 건 어떠냐는 타협안도 들렸다.

    하지만 경찰과 타협할 권한을 가진 책임자는 아무도 없었다. 1천 명에 달하는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은 사전에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버스 안에서 받아본 프로그램 일정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참가자들을 위협하고, 전원 연행을 협박했지만, ‘희망의 버스’ 승객들은 예정대로 한진중공업까지 촛불을 들고 도로로 행진했다.

    경찰과 용역경비가 정문을 가로막았고, 경찰은 정문 담벼락에서 문화제를 할 것을 권유했다. 역시 타협안을 결정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무엇보다 참가자들은 김진숙 위원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모든 소중한 약속을 다 팽개치고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그녀를 먼 발치에서 쳐다보고 애태우다가 술이나 ‘퍼 먹고’ 돌아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용기있는 한 젊은이가 담벼락을 넘기 시작했고, 참가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모두 담장에 올랐다. 공장 안에서 사다리가 내려오자 너도 나도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금속노조 김형우 부위원장은 “사람들이 앞에서 넘어가기에 따라 넘어갔더니, 순식간에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장 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출입문에 컨테이너가 세워지고, 용역경비들에게 두들겨 맞아야 했던 한진중공업 조합원들도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이 담을 넘어 공장 안으로 들어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채길용 지회장도 “만약 공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있다가 떠났다면 조합원들에게 힘을 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주최 측’을 찾아 타협을 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김진숙을 사랑하는, 김진숙과 한진 조합원들에게 미안했던 사람들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담을 넘어 ‘주거침입’을 했고, 그녀에게 달려가 ‘사랑해요 김진숙’을 목이 터져라 불렀던 것이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어른들은 크레인에 올랐다.  

    날라리 외부세력의 힘

    “날라리 외부세력님, 혹시 한진중공업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요청드리면 공연해주실 수 있죠?”
    “물론이죠. 아무 때나 신나게 놀께요.”

    용역경비들이 한진중공업 출입을 봉쇄해 예정대로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진행팀의 한 노동자가 8호차 버스에 올라 부탁하자, ‘날라리 외부세력’들이 흔쾌히 수락한다. 아무 때나 불러주면 김진숙을 위해,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을 위해 이 한 몸 때워 놀겠다는 것이다.

    12일 새벽, 무사히 공장 안에서 집회가 열렸고,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피곤과 졸음이 몰려오던 순간, ‘몸뻬바지’를 입은 남녀 세력들이 무대로 뛰어올라왔다. 그리고 놀기 시작하더니, 온전히 날밤을 깐다.

    초청받은 공연, 예정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무대가 끝없이 펼쳐졌다.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만났던 가수 ‘조약골’은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는 것이 평화”라며 <평화>를 비롯해 세 곡을 열창했다.

    광주댁도 마이크를 잡고, 비정규직도 노래를 부르고, 신부님도 한 곡을 뽑는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축제의 무대는 멈출 줄 몰랐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함께 어울어진 마당이었다.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는 마당

    집회와 문화제 연사들도 ‘유명인’들이 아니었다.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권영길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참여했지만 아무도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민주노총 이수호 전 위원장, 전교조 위원장, 언론노조 위원장 등 ‘높으신’ 분들이 많이 참가했지만 마찬가지였다.

    ‘희망의 버스’ 1박 2일은 김진숙, 한진중공업 조합원, 비정규직, 아내와 아이들, 평범한 시민들이 주인공이었다. 서울의 한 대학생, 광주의 한 아주머니, 한진중공업의 젊은 조합원들이 스스로 손을 들고 마이크를 잡았다.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을 셋이나 둔 한진중공업 늙은 노동자는 무대에 올라 30분 동안 울분을 토하며 가슴 아픈 사연을 전했다. 그가 절규하고 눈물을 흘리자, 사람들이 다가가 그를 안아줬고, 김형우 부위원장은 스스로 연단에 올라 그를 위로했다.

    아침 10시. 85호 크레인 주변에 지친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판화를 찍고, 동료들과 사진을 찍고, 만화를 그린다. 모두 꼬박 밤을 새웠지만, 환한 얼굴로 사람들과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일정이 없으면 빨리 집에 가자고 재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활기를 잃고 관성화된 민주노총 집회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까지 모이는 민주노총의 집회는 계획된 일정에 따라, 경찰과 협의한 대로 진행된다. 경찰이 행진을 불허하면, 협의와 타협을 통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된다. 정치인을 비롯해 유명 인사들이 연설을 도맡는다.

    집회가 어떻게 시작되고 누가 연설하고, 어떻게 끝날지 다 안다. 그래서 참가자들도, 지도부들도, 경찰도 아무도 긴장하지 않는다. 재미가 없다. 그래서 조합원들은 빨리 집에 가자고 조른다. 참가비도, 식사도, 심지어 술도 제공하지만, 열기도, 열정도, 분노도 없다.

    노동자들의 집회는 이렇게 관성화되었다. 노동운동의 집회에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 바로 2008년 촛불집회였다. 촛불이 밝혀지기 하루 전날인 5월 1일 민주노총은 대규모 노동절 집회를 진행했지만 형식적이고 관성화된 집회였다. 바로 다음날 청계광장에서 켜진 촛불은 100일 동안 전국을 불태우면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2차 희망버스를 기약하며 1차 희망버스가 부산을 출발하고 있다.  

    평가 회의에서 2차 희망버스가 제안됐다. 한진중공업 문제가 노사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1박 2일을 만들자고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에서 평가와 함께 2차 계획을 만들기로 했다.

    2차 희망버스를 타자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연행됐다가 풀려나면서 트위터와 블로그에 2차 희망버스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경찰은 참가자를 모두 처벌하겠다고 협박하고 있고, 두 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노동자와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의 힘이 민주노총 조직 노동자들의 힘과 만나 더욱 멋진 촛불잔치를 만들어낼 2차 ‘희망의 버스’가 곧 출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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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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