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 전략적 제휴로 생각하자"
        2011년 06월 14일 09: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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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히 내 소개로 시작해보겠다. 나는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진보신당 당원이다. 2008년 당이 갈라지기 전까지는 민주노동당 유럽위원회 소속으로 사무국장, 부위원장, 위원장을 했었다. 진보신당 유럽당원협의회가 구성된 후에는 위원장을 맡았고, 지금은 평당원이다.

    몸은 네덜란드에 있지만, 내 관심은 온통 한국에 가 있다. 고향 떠난 기러기의 마음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는 ‘감히’ 통합의 산고를 겪고 있는 두 당과 연석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에게 모두 살기 위한 해법을 제시해보겠다. 

    전략적 제휴로서의 정당 

    툭 까놓고 얘기하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새로운 진보대통합정당이 성공하기 위해서 당을 하나의 조인트 벤쳐(전략적 제휴)로 생각해주기 바란다. 부부로 치면 같은 집에 살되 침대는 따로, 그리고 조건이 되면 잠은 다른 방에서 따로 자는 걸로 하자는 거다.

    민주노동당 실험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화학적 결합이 어려운 자주파와 평등파 두 세력이 억지로 결합을 하려 했고, 그게 결국 불화로 나타난 것이다. 패권을 제어할 장치가 약했고, 정파가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눈가리고 아웅했다.

    그러기보다는 정파 간에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게 제도를 만들었어야 한다. 부부관계로 치면 애정이 없는데, 잠자리는 같이 해야 했고, 예금통장은 힘센 쪽에서 관리했기 때문에 힘 없는 쪽에서는 같이 살아봐야 희망이 없다고 보고 떠날 마음이 든 거다. 거기에 상대의 마음이 과거의 애인에게 있는 게 분명해 보이자 한 쪽이 떠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그건 오해다. 의처증인 것 같다’고 부인하며 집 떠난 진보신당을 탓한다. 진보신당은 결혼한 다음에도 과거의 애인을 잊지 못하고, 언젠가 차일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같이 사냐고 반박했다.

    지금 합의문의 3대 세습 관련 문장의 해석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쪽은 통일의 상대이므로 6.15선언 정신에 따라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내정에 간섭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거고, 다른 한쪽은 3대세습을 비판을 존중한다고 명문화했지 않냐고 응수한다.

    앞으로도 많은 고개를 넘어야 하고, 합친 후에도 부부싸움은 많이 있을 것이므로, 서로 넘지 않을 선을 분명히 그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 원했던 성과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애정은 없을지 몰라도 같이 얼굴 맞대고 한 집에서 살 관계는 되는 것이고, 서로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조심하면 될 일이다.

    진보신당은 파국을 향하가고 있다 

    그러나 발등의 불은 진보신당 내부 정리다. 진보신당 내부에는 연석회의 합의안에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으로 갈라서 서로 가시 돋힌 설전을 벌이고 있는데, 이젠 쿨하게 헤어지자는 말까지 나온다. 그나마 쿨하게 헤어지면 다행인데, 내 생각엔 어쩔 수 없이 서로 상처를 팍팍 주고 헤어질 것 같다.

    암튼, 두 그룹을 편의상 독자파와 통합파라고 부르자. 독자파 내에는 녹색사회당을 하자는 입장과 한국을 복지국가로 만들기 위해 야권단일정당을 하자는 입장, 그리고 새로운 노동자정당추진위(새노추) 등으로 또 나눤다.

    이 세력들이 타협점을 찾이 못하면 나는 둘다 힘들어질거라고 본다. 통합파는 합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바보가 된다. 새 진보대통합호에 정당으로 참여할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고, 만약 진보대통합이 무산되면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잘 돼야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내의 아주 작은 그룹이 되어 원하던 진보의 재구성을 할래도 밑천이 딸릴 것이다. 독자파는 다시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타령의 주인공이 될 것이고, 안티를 많이 만들게 될 것이다. 그 결과로 녹색사회당이 아니라 당을 지향하는 단체 정도 수준밖에는 안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지국가 단일정당 추진그룹은 문성근의 백만대란이나 ‘내가 꿈꾸는 나라’ 운동으로 흡수될 수도 있다. 새노추도 얼마나 세력이 될 지 알 수 없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물귀신이 되는 비극이 될 것이다. 물론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짧고, 그 시간은 너무 아깝다. 

    진보신당의 운명을 결정할 당 대회는 6월 26일에 있다. 많은 이들이 대의원의 2/3가 찬성해야 합의안이 승인되는 규약상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본다. 독자파의 전략은 대의원 1/3 이상을 확보하여 합의안을 부결시켜 당을 지키려하고, 만약 거기에 반발해서 통합파가 나가도 상관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한번 분당했는데 두 번 왜 못하랴? 

    그럼 나는 어떻게 하나? 

    나는 왔다 갔다 하고 있다. 통합파로 많이 쏠려 있지만, 독자파의 주장도 가끔은 솔깃하다. 그리고 둘 사이의 갈등을 보면 도를 넘는 비난에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6월 11일 전국위원회의 ‘놀랍고도 희한한’ 표결을 보고 탈당할 결심까지 하였으나, 동지들의 만류에 마음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당이 둘 셋으로 갈라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현명한 길은 유럽의 당원들과 함께 진로를 모색하는 것이리라. 얼마 전 같이 돌출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

    우리 유럽당원들 이미 지난 4월 유럽당협 총회에서 이에 대한 토론을 했고, 당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우리의 모임은 이어나가자는 데 공감대를 이룬 바 있다. 그러면 진보신당이 어떻게 나뉘든 우리는 하나의 정치적 모임으로 남게 되는 것이고, 녹색사회당을 창당하는 그룹이든, 진보대통합당으로 가는 그룹이든 함께 교류하게 될 것이고, 유럽당원들이 어느 당을 선택하건 그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통합-독자, 양자택일

    그 생각에 이르러 한 가지 좋은 수가 떠올랐다. 그건 내가 통합파가 만들려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과 독자파 중 한 그룹이 만들려는 녹색사회당, 둘 다 당원으로 가입하는 것이다. 당 가입이야 자유고, 두 그룹 모두 진보의 재구성을 내걸고 있으므로 하나를 선택하는 것보다 둘 다 선택하는 게 더 쉬운 결정이다.

    물론 당비가 두 배로 나가고 수고도 더 늘 수 있다. 하지만 해외 당원이 할 일은 한정되어 있어서 그리 부담이 되지도 않는다. 한국에 있는 진보신당 당원들 중에서도 두 입장에서 정리가 안되는 사람들은 통합당이든 독자적 정당이든 둘 다 가입하는 것이 어떨까?

    그렇게 되면 현실정치에선 특히 선거 때는 새로운 진보대통합당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서울 노원쪽에 사는 사람은 다음 총선에서 노회찬 후보 선거운동을 하면 된다. 고양 쪽에 사는 사람은 심상정 후보 선거운동을 하면 된다. 그리고 선거 말고 다른 이슈에선 녹색사회당 당원으로서 핵발전소 폐쇄를 위한 캠페인에 참여하거나, 새노추 회원으로서 비정규직 투쟁에 참여하면 된다.

    이 참에 생각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보면, 다가오는 당 대회에서 독자파와 통합파는 기발한 타협에 이를 수 있다. 독자파는 합의안을 승인해준다. 그리고 통합파는 녹색사회당이든, 복지국가 단일정당이든, 새노추든 활동을 보장해준다. 당원들은 두 조직에 양다리를 걸쳐도 되고, 하나만 해도 된다.

    진보대통합당은 진보적 대중정당이 될 것이고, 녹색사회당이나 새노추는 사회운동적 정당이 될 것이므로 서로 부딛칠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주말처럼 희망버스를 타고 김진숙 동지를 찾아갈 때는 고민 없이 가면 되고, 우연히도 두 당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행사가 있으면 둘 중에 맘에 드는 곳으로 가면 된다. 그건 자기의 기호로 결정될 것이고, 누구도 그걸 가지고 욕하지 못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당에 이런 일은 많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내가 아는 네덜란드사람은 80년대 신념상 반전평화 사회주의당에 당원으로 있었지만 그 당은 의석 얻기가 힘들어서 큰 노동당에도 동시 가입해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상과 현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 보다는 둘다 취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많이 있었다.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밀었던 노사모 회원들은 민주당 당원이 되었다가 개혁당 당원도 되었으며, 민주노동당에는 당원들 중에 인천연합, 경기동부, 울산, 광주전남연합 사람들이 있다. 엄연히 정치조직이며 전선체인 지역연합활동도 하면서 민주노동당 활동도 하는 것이다. 반자본주의적인 다함께는 자기 활동을 독자적으로 하면서도 민주노동당에 조직원들이 개인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편의적인 타협 술책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답하겠다. 민주노동당에서 나와 얼어죽을 각오를 하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다시 민주노동당과 합치자고 강요하는 것이 과연 필요할까?

    그들에게 필요한 건 ‘보다 녹색으로, 보다 적색으로’ 실천할 당이다. 이제 노회찬 심상정은 통합진보정당을 선택했다. 그 뿐만 아니라 탈당을 이끌었던, 믿었던 조승수 대표마저 통합쪽으로 기울어서 독자파는 더 힘들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자기의 길을 가도록 창당 기금을 기꺼이 내겠다.

    그렇다면 통합파는 어떤가? 그들은 대중들이 있는 곳으로 보다 낮게 가고, 더 쉽게 가려 하지만 그런 노력은 번번히 민주노동당의 높은 벽에 가로막혔다.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노총의 방침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성향상 우호적인 노동운동가들도 현장의 냉소분위기에 질려 겉으로 대놓고 지지하지 못하고, 남이 안 보는 곳에서나 ‘사실은 나도 당신들 편이예요’라고 속삭인다. 이런 답답한 처지에서 빠져나오려면 우선 통합부터 해야 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후보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진보단체에게조차 문전박대 당했던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와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의 경험은 다 알 것이다.

    맺으며 

    나는 동지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동업자는 자기를 위해서 상대를 돕는다. 그리고 자기 몫을 챙긴다. 그러나 동지는 다르다.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동지를 위해서 자기를 바친다. 노래에도 있듯이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는 맘이 동지를 대하는 자세다.

    요즘 진보진영 내에선 서로 동지라고 호칭은 해도 서로를 동업자로 여기고, 미래의 경쟁자로 의심하고 경계하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차라리 바보가 되자. 내가 손해보고도 웃는 게 바보다. 나는 나의 동지를 위해 기꺼이 바보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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