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연 싣고, 희망 싣고, 가서 싸웠다"
        2011년 06월 13일 11: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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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1일 오후 6시 서울시청 재능교육 농성장.
    일찍 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집회를 하고 있다. 유명자 지부장의 목소리는 씩씩했고, 함께 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밝다. 그런데 사람들의 얼굴이 낯설다. 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들 뒤로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등장했다. 홍세화 선생님의 느릿한 목소리가 반갑다. 흰 한복을 차려입은 백기완 선생님의 얼굴도 보인다.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57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위원을 만나러 ‘희망의 버스’를 타기 위한 승객들이 수다스럽게 버스를 기다린다. ‘깔깔모자’를 쓴 진행팀들이 행사안내지, 수건, 물품들을 챙기느라 바쁘다.

       
      ▲부산에 도착한 ‘희망의 버스’ 승객들.(사진=금속노조 부산양산 지부) 

    희망 버스가 ‘희망’을 싣고

    드디어 ‘희망 버스’가 들어온다. 서울에서 11대, 평택, 수원, 전주, 광주, 순천 등 전국에서 17대가 오늘 부산 영도다리를 넘어 한진중공업으로 향한다. 지엠대우 비정규직 황호인이 보인다. ‘1박 2일’을 함께 할 친구가 생겼다.

    저녁 7시 정각 버스가 부산을 향해 출발했다. 45개의 좌석 중에서 42명이 8호차에 탔다. 이 중 40명이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까페에 가입해 온라인으로 참가비 3만원을 냈다. 나를 포함해 딱 두 명이 버스에서 현금을 낸다.

    버스에서의 프로그램은 소개하기, 비정규직 영상 상영 그리고 ‘알아서 놀기’다. 스무 명 남짓한 젊은이들이 버스 뒷자리를 장악했다. 그 유명한 ‘날라리 외부세력’이다. 벌써 기타 줄을 조율하고 있고, 북을 두드리며 놀 준비를 한다.

    『노동자 역사 이야기』의 박준성 선생님과 제자들, 『작은책』의 글쓰기 모임 회원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자, 주부 그리고 인터넷을 보고 무작정 온 사람들…. 버스에 타게 된 사연이 때론 뭉클하고 때론 재밌고 생기발랄하다.

    “평범한 직장인인데 쪽수라도 채우고 싶어서 왔습니다.”
    “김진숙님이 힘들 것 같아서 왔어요. 저 같은 사람이 함께 가서 놀아주면 덜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트위터로 얘기하고 있고, 어제 밤 너무 많이 울었어요. 제가 가서 같이 흥을 돋우고 오려고요.”

    “영화에서는 착한 사람이 악당 이기는데”

    트위터로 김진숙의 팬이 된 영화작가는 영화에서 항상 착한 사람이 악당을 이기는데, 착한 김진숙이 악당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희망의 버스’를 탔다. “저는 영화에서 항상 착한 사람이 악당을 이기도록 만들었는데, 트위터를 보면서 도저히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직업이 전문 MC인 청년은 친구 아버님 환갑잔치 사회를 선배에게 넘기고 부랴부랴 탑승했고, 오명화씨는 김진숙 위원과 연대하는 부산의 친구들이 차비까지 내줘서 버스에 올랐다. 한 사진작가는 돌을 앞둔 아기와 아내를 집에 두고 이곳에 왔다.

    무엇보다 ‘날라리 외부세력’ 회원들이 인상적이었다. 스스로를 김여진과 김진숙의 ‘빠돌이’라고 불렀다. "차분하고 침착한 분위기가 적응 안된다."는 이들은 김진숙의 트위터를 보고 울었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희망의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날라리들은 놀러 갑니다. 심각한 곳도 일단 놀면서 분위기를 살리고, 놀면서 진숙 누님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그녀를 지켜주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놀아봅시다.”(고인석)

    버스는 날라리 공연의 예행 연습장

    날라리 외부세력은 ‘희망의 버스’ 승객들을 그냥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게 만들었다. ‘희망의 버스’는 ‘달리는 노래방’이 됐다.

    밤 12시 30분. 버스는 새 영도다리(부산대교)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온 사람만 700명이었고, 현대차 울산 비정규직지회, 대우조선 비정규직 등 부산 인근에서 온 노동자들을 포함해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렸다.

    경찰은 사람들을 인도로 밀어붙였지만,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차도로 흘러나왔다. ‘촛불 구호’가 도로를 메웠다.

    “정리해고 중단하라!”, “이명박은 물러가라!”

       
      ▲참가자들은 담장을 넘어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희망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200여명의 부산 시민들과 합세하면서 한진중공업 정문은 북새통이 됐다. 경찰과 용역경비들은 한진중공업 정문을 에워싸고, 참가자들의 진입을 막았다. 그러나 한 젊은이가 동문쪽으로 달려가더니 담장 위로 올라갔다.

    “이곳으로 올라오세요. 빨리요.”

    담장 넘어 공장으로 들어가다

    담벼락은 웬만한 사람들도 발을 디뎌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높이도 낮았다.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공장 담장으로 올라갔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사다리를 건네줬다. 사다리가 설치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공장으로 넘어왔다.

    인근에 있던 경찰이 달려와 사다리를 빼았았고, 사다리를 놓고 치열한 ‘쟁탈전’이 시작됐다. 그러나 사다리 없이도 참가자들은 쉽게 담장을 넘었고, 순식간에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공장 안에서 정문을 지키던 용역경비들은 수백명이 정문으로 몰려오자 당황했다. 그들은 쓰고 있던 안전모를 집어던졌고, 정문 옥상으로 올라가더니 소화기를 뿌렸다. 참가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한진중공업 조합원들까지 가세해 정문을 압박했다.

    급기야 용역경비들은 소화기를 던졌고, 소화기와 안전모에 맞은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하지만 놀란 용역경비들은 정문 담장을 뛰어내려 정문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고, 수십명이 뒤엉켜 서로 넘어졌다. 뒤늦게 온 경찰이 용역경비들과 노동자들을 분리시켰다.

       
      ▲백기완 선생이 연설을 하는 모습.

    정문 위로 올라오신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의 청천벽력같은 호통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추상같은 불호령은 한진중공업 영도공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김진숙을 만나다

    정문 결의대회를 마친 1천명의 참가자들은 김진숙 위원이 기다리는 85호 크레인으로 향했다. 85호 크레인의 위와 아래, 그리고 주변은 이내 울음바다가 됐다. 김진숙이 흔드는 손길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고, 김진숙의 목소리에 울었다. 김진숙의 트위터를 보고, 인터넷에 올라온 사연을 보고, 몰래 눈물 훔쳤던 이들이 마침내 김진숙을 만났다.

    김진숙을 보러 온 사람들이 크레인 아래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15만 볼트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88일 싸우고 무사히 내려온 대우조선 비정규직 해고자 강병재, 2005~2006년 크레인 점거농성과 130m 양재동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을 해 오랜 감옥살이를 했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박정훈과 조합원들, 2008년 94일 단식농성과 1895일 투쟁으로 마침내 정규직화를 쟁취한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과 조합원들이 손을 흔든다.

       
      ▲김진숙을 응원하는 참가자들. 

    지난 해 11월 25일간의 공장 점거파업을 벌인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금속노조 김형우 부위원장, 민주노총 정의헌 수석부위원장, GM대우 비정규직, 포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김진숙을 큰 목소리로 불렀다.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으로 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박창수 열사의 아버님을 비롯해 많은 어르신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김진숙을 만나러, 김진숙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왔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국회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도 보였다.

    새벽 2시가 넘었다. 밤을 하얗게 새우는 문화제가 시작됐다. 밤새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날라리 외부세력’이 나섰다. 김진숙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김진숙을 즐겁에 해주기 위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신나는 공연’이 시작됐다.

       
      ▲’날나리 외부세력’의 신나는 공연에 모두 함께 춤을 추고 있다. 

    폭발적인 공연에 참가자들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더니 하나 둘씩 일어서 춤추기 시작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자와 가족들이 어우러져 거대한 춤판이 만들어졌다. 금속노조 김형우 부위원장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김진숙은 흐뭇한 모습으로 내려다보았다.

    진숙아(진숙아) 진숙아(진숙아)
    내가 내가 못잊을 사람아
    진숙아(진숙아) 진숙아(진숙아)
    내가 정말 사랑한 자옥아
    내 어깨 위엔 날개가 없어
    널 찾아 못간다 내 진숙아 진숙아
    짜라짜라짠짠 짜라짜라짠짠 짜라짜라짜라짠
    짜라짜라짠짠 짜라짜라짜라짠

    박상철의 ‘자옥아’는 ‘진숙아’가 되었다. 한진중공업 영도공장의 새벽이 밝아왔다. 

    국회의원과의 만남

    아침 7시. ‘희망의 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이 사람들을 급하게 찾는다.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면담을 요청했다.

       
      ▲현장에 함께 한 국회의원들.(사진=금속노조 부산양산 지부) 

    정동영 최고위원이 경찰의 험악한 분위기를 전했다. 한진중공업에서 고용한 용역경비들 24명이 크게 다쳤고, 공장 담벼락을 넘어 들어간 것은 주거침입이기 때문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소고발하겠다는 것이었다.

    영도경찰서장, 부산경찰청장, 조현오 경찰청장과 나눈 얘기를 전해줬다.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기 때문에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책임자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용역경비가 던진 소화기와 안전모에 맞아 우리 조합원들이 많이 다쳤고, 용역경비들은 뛰어가면서 자신들끼리 뒤엉켜 넘어진 것이고, 우리가 폭력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얘기했다. 그러자 정동영 최고위원은 그런 사실을 경찰들에게 분명하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 배우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 등 6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공장에 날아들었다. 밤을 꼬박 새워 쉬고 있는 참가자들이 분노했다. 긴급 회의가 열렸다.

    경찰의 연행 방침이 확인된 이상, ‘희망버스’ 전체 참가자들이 연행자 석방과 무사 귀가를 요구하며 공장에 남아 싸우기로 결정했다. 급한 개인사정으로 인해 공장을 나가야 하는 참가자들도 연행을 각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끝난 후 진행된 연행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더불어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금속노조 지부와 대책회의를 하고 있는데 연행자들이 석방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신분증을 제시해 신원이 확인되어야 내보내줄 수 있다는 경찰의 제안을 거부했다. 조건 없이 참가자들을 귀가시킬 것을 약속하지 않으면 계속 남아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결정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연대의 상징으로 부활한 85호 크레인

    공장 곳곳에서는 희망이 그려지고 있었다. 파견미술가들이 대형 현수막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참가자들의 손도장이 찍혔고, ‘희망의 버스’ 승객들이 제작한 걸개그림이 85호 크레인 곳곳에 걸렸다. 크레인은 투쟁과 연대의 상징으로 부활했다.

       
      ▲공장 안에 들어온 ‘희망의 버스’ 승객들. 

    이윤엽 판화가의 판화 찍기, 이동수 화가의 캐리커쳐 그리기, ‘희망의 꽃 페이스페인팅’에 길게 줄이 늘어섰다. 사진 작가들은 현장사진관을 열어 참가자들의 해맑은 얼굴을 담았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판화와 그림, 사진이 공장 곳곳에서 만들어졌다.

    김여진이 연행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트위터가 발칵 뒤집혔다. 곳곳에서 한진중공업으로 달려가자는 제안들이 쏟아졌고, 인터넷은 분노로 들끓었다. 김여진 연행이 실시간 검색어 2위로 올라서고, 곳곳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돌아가는 승객들을 향해 박수를 쳐주는 한진 노동자들(왼쪽)과 현장에서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화가들. 

    김여진 연행 실시간 검색어 2위

    결국 경찰이 무사귀가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가족대책위가 차려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집회가 열렸다. 가족대책위 아이들의 ‘아빠 힘내세요’ 공연은 지친 조합원을 밝게 웃게 했고, 한 아내의 편지 낭독으로 집회장은 다시 눈물바다로 변했다. 그렇게 순간 순간 울다가 웃었다.

    김진숙 위원의 마지막 연설이 공장에 울려퍼졌다. 김진숙은 한진중공업 조합원들과 ‘희망의 버스’를 만나게 해 준 오작교였다. 그는 편지에서 약속한 대로, 제발로 걸어서 크레인을 내려오기 위해 오늘부터 다시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희망의 버스’는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공장을 떠나는 발거음은 무거웠다. 조합원들, 가족들과 맞잡은 손은 쉬 떨어지지 않았고, 또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17대의 희망 버스는 부산을 출발해 전국으로 달려갔다. 김진숙의 희망을 전국으로 알리기 위해서. (사진=금속노조 부산양산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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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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