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퍼 당원이 3개 정파에 질문한다"
        2011년 06월 13일 08: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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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페이퍼 당원으로, 지금 당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통합 논의들에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하룻밤 자고 일어날 때 마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여러 정치 세력들의 실시간 입장 표명들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내년 총선 및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삽질’에서 비롯된 민심이반 흐름에 편승하려는 각 정파들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러나 소위 진보대통합 이라는 것은 1~2년 앞만 보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합의된 원칙과 목적에 부합하도록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

    사실 당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는 평당원 입장에서 이런 글을 쓰기가 참 쑥스럽다. 그렇지만 나는 당에 대한 충정어린 마음에 각 ‘정파’ 동지들에게 몇 가지 비판과 질문을 하겠다. 혹시 사실 관계가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라.

    1. 복지파 동지들에게

    복지파 동지들의 기획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건설에 동의하는 모든 정치세력을 하나로 모아 단일정당을 이루어, 소선거구제하에서 의회와 행정부 권력을 쟁취해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할 정치세력은 한나라당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 물적 기반을 정통 부르주아지에 두고 있는데, 보편적 복지국가는 부르주아지가 노동자에게 이익을 나누어주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거대 부르주아 집단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손쉽게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르주아지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복지파는 민주당을 비롯한 자유주의 정치 엘리트들과의 스킨십을 늘려가고 있는 것 같다. 즉 부르주아 세력과 의회 내에서 투쟁해 복지를 얻어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 정치엘리트들은 증세를 재원으로 한 보편적 복지국가의 건설에 동의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입으로는 복지를 외치면서 증세에 대한 언급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4대강만 안 파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물론 4대강은 공사는 지금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한나라당의 삽질에서 비롯된 이 찬스를 ‘복지’라는 레토릭으로 돌파하려는 속내만이 보이는지라 오히려 불쾌하다. 사회국가 및 보편적 복지국가가 현실화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입장에서, 가장 얄미운 집단은 자유주의 정치엘리트들이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은 왜 룰을 바꾸자는 주장은 하지 못하는가? 지금 민주당이 당장 급한 것은 대통령 자리이다. 대선에서 박근혜만 이길 수 있다면 상당히 큰 폭의 양보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허한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외치는 것보다, 대선에서 우리 측 스타 정치인을 출마시키지 않는 대신(그래도 좌파 후보는 출마해야 한다) 총선 승리 후 제도 개선을 양보하도록 민주당과 야합하는 것이 차후의 복지국가 건설 과정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이에 대한 당내 합의가 있어야겠지만…

    2. 민노당 합당파 동지들에게

    어떤 식으로 해석하더라도, 내가 보기엔 북한과 관련된 합의안 조항은 당 대회 및 전국위원회 안을 위배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당장 최근 이정희씨가 조승수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는가? 마음대로 왜곡하지 말라고.

    합당파 동지들의 주장처럼 비록 합의안이 당 대회 결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더라도, 동지들이 민노당과 합당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제가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것이더라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제가 보기엔 그렇다는 것이고, 이 의견에 동의하는 분들도 제법 많으실 것 같다.

    본인은 민주노동당 시절을 직접 안에서 겪어보진 못했지만, 합당파 동지들은 당시에 당내 노선투쟁을 위해 에너지를 얼마나 소모했는지 스스로 더 잘 아실 것이다. 최소한 당시 제가 보기엔 그랬다. 현 민노당 주류는 통일운동을 최우선 노선으로 두고 있는 걸로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통일의 상대가 될 북한 정권에 대한 자그마한 비판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다(최대한 선의를 가지고 해석했다).

    통일운동 물론 중요하다. 남북의 궁극적 목표는 현재의 양쪽 사회의 모순을 지양하는 통일국가이고, 그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을 나는 폄하하고 싶지 않다(비록 그 분들의 이런 태도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지만). 그러나 현 상황에서 더 중요한 것은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이고, 우리 나름대로 남한 사회의 모순을 하나씩 극복해 가는 것일 테다.

    왜 대선 공약이 코리아연방국이어야 하며, 한반도 북부에서 일어난 모험적 핵실험에 대해 한마디 비판도 할 수 없어야 하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표방하는 국가에서 수령의 손자라는 이유로 차기 국가지도자로 지명되는 기막힌 현실을 지적할 수 없는가?

    이를 인정하면 내일 당장 미제가 주석궁에 폭격을 퍼붓는다고 하던가? 북한 정권이 비민주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여 그들을 대화 및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면 안 되는 것인가? 왜 같은 당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상식적인 질문을 하기 위해 노선투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분들은 그들 나름의 신념으로 통일운동 열심히 하시고, 우리는 우리의 신념으로 진보정치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서로 선의를 가지고 지역에서 함께 일하고, 상시적 선거연합캠프를 구성해 상호 합의하에 적절히 지역을 나누어서 후보를 출마시킬 수는 없는지(어차피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낼 역량도 없는데)… 이혼이라는 표현을 혹자는 자주 쓰던데, 감정의 골이 채 옅어지기도 전에 무턱대고 재혼하는 것보다는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다보면 훗날 다시 함께할 수도 있지 않을까?

    국참당과 뭔가를 함께하려는 이정희씨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동지들에게 질문하지 않겠다. 동지들이나 저나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정’은 진보정치의 소멸 혹은 후퇴를 결과적으로 가지고 올 것이라는 공포를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또 이정희씨로 대표되는 민노당 주류의 움직임이 합당파 동지들의 책임도 아니므로 그에 대해 비판하고 질문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3. 독자파 동지들에게

    소위 독자파로 분류되는 이론가들로부터 녹색사회당 기획 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온통 합당 및 연합에 대한 이야기로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내주신 독자파 동지들께 매우 감사하다. 하지만 자칫하면 정치세력으로서 소멸할지도 모르는 2012년이라는 광풍을 어떻게 지나갈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낙관적으로 보시는 것 같아 약간 우려스럽기도 하다.

    이미 당이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내년 총선에서 어떤 정치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대중에게 정치적 대안으로 다가가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만약에 내년 총선에서 아무도 당선시키지 못하고, 국가보조금마저 받지 못하는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면 우리 당은 불안정 노동자를 조직해야만 한다는 시대정신을 무엇을 기반으로 수행할 것인가?

    또 우리의 대의에 동의하는 대중들을 어떤 대중적 아이콘을 이용해 입당시킬 것인가? 20년 이상간 노동운동에 헌신함으로서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와 같은 대중정치인을 이리도 쉽게 포기할 것인가? 이에 대한 전망이 독자파 동지들에게는 부족한 것 같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사과드린다.

    특히 선거 국면에서 독자파 분들로부터 다른 정치세력과 선거연합을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알레르기를 느낀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목적이 있고 이념적으로 선명하다면 선거 국면에서 다른 세력들과 전술적으로 야합하는 것이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길인가?

    자유주의 정권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고, 그들을 공식적으로 지지하지만 않는다면 상황에 따라 전술적으로 조정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허망하게 그들과 정책적 유사점을 찾으려는 시도보다는 오히려 선거제도 개선만을 매개로 선거연합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제도 개선을 위해서 선거연대를 하되, 그들이 정권을 잡으면 정책적인 측면에서 꾸준히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실리도 얻고 선명성도 알릴 좋은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한다. 몇몇 전략적 지역구가 아닌 다수 지역구에서는 출마 및 완주만 고집하기보다는 차근차근 지역의회 및 지방자치단체를 장악하는 것으로 지역정치를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다.

    마지막으로 대선 국면에 관한 것인데, 이미 광범위한 반MB 바람이 불고 있는 만큼, 우리 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또 우리는 아직 집권할 준비도 안 되어 있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당의 자산인 몇 안 되는 대중정치인을 선거 국면에 소모시키기보다는, 우리의 지향을 선명히 알릴 수 있는 젊고 신선한 새로운 정치인을 발굴할 계기로 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할 뿐인데, 관악구 구의원 선거에서 이기중 동지는 엄청난 활약을 펼친 끝에 각종 포탈사이트에서 ‘진보신당 이기중’, ‘이기중 솔로’ 등의 주옥같은 연관검색어를 만들어냈다. 대선이라고 해서 이런 시도를 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가?(그렇다고 이기중 동지를 대선 후보로 내자는 주장은 아니다)

    각 입장에 해당되는 여러 동지들의 답변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혼란스러운 시기에 서로에 대한 예의를 잃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최근 강상구 동지가 쓴 글에도 언급되어 있듯 진보신당원 일만육천 명 같은 사람들을 전국 어디에서 다시 만나겠는가? 끝까지 서로에 대해 상처를 주는 언행은 삼갔으면 하는 부탁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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