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원 총투표를 제안합니다"
        2011년 06월 11일 01: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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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 문제의식의 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강상구 동지가 먼저 시작해 주었다. 그래도 마음이 급하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한 둘이 아닌데도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 글을 쓴다. 메모를 해 둔 USB메모리를 집에 두고 출근해서 기억을 더듬어 써야 하니 마음이 더 급하다. 

    양쪽 다 강적이다. 어느 게 옳은지…

    통합을 주장하든 독자를 주장하든 두 개의 입장 모두 논리적 일관성이 있어서 여간해서는 상대방을 설득하기 힘들다는 점부터 인정해야겠다. 그러니 일반 당원들의 혼란은 말도 못할 것이다. 아니 불안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럼 당 깨지는 거야?" 이게 일반 당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인 것 같다.

    나도 한 쪽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본다면 세 개의 흐름으로 볼 수 있지만, 일단 통합과 독자라는 구도에서 보자면 독자의 입장에 서 있다. 어쨌거나 양 쪽 다 강적이다. 나도 내 입장에 대해 확고한 판단 근거를 갖고 있지만, 상대의 입장에 서보면 생각이 흔들리기도 한다. 솔직히 혹시 내가 잘 못 판단한 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좀 더 솔직히 자신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고민의 밑바닥에 자리한 문제의식의 올바름에 대해서 숙고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자신의 올바름을 입증하기 위해서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은 문제의 근원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남종석 동지의 글은 심히 유감스럽다. 내용은 차치하고 빈정거리는 투가 몸에 밴 것 같다. 통합을 주장하는 사람이 이런 문체를 구사한다는 게 놀랍다.

    또 한편으로는 더 이상의 토론을 거부하고 쿨하게 헤어지자고 주장하는 것 역시 문제의 해결은 안중에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쯤 되면 지키려고 하는 것이 자신의 판단력인지 아니면 우리가 진보신당을 통해서 구현하려고 하는 이러저러한 가치인지 헷갈린다.

    양자 모두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다. 그렇다. 우리는 예언가가 아니며, 현실을 바꾸려고 개입하는 사람이다. 또 현실은 항상 우리가 예측한 것과 달리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그 누구도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확신을 하기는 힘들다. 

    절차적 정당성에 승복하자 

    절차는 그래서 필요하다. 절차에 따른다는 것은 일단 내 판단의 올바름 여부를 유보하는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내 판단의 올바름 여부에 대해서 한 숨 고르는 일이다. 이게 성숙한 인간의 자세라 할 것이다.

    패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논리가 아직 다수를 설득시키지 못한 것일 뿐이므로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고, 승자는 차후에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문제의식에 유념하게 만들 수 있다.

    이미 되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너무 나아갔다고 느꼈을 때, 그래서 기존에 자신이 주장해놓은 것을 번복하기 힘들게 되었을 때 우리는 절차에 대고 핑계를 댈 수 있다. 절차적 정당성에 따랐을 때 생기는 또 다른 장점이다.

    절차에 따른 승복 여부는 탈락한 사람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설득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언젠가 역사학자 한 분으로부터 우리나라의 과거시험은 인재를 등용하는 절차가 아니라 탈락하는 사람을 합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절차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맞다. 절차라는 것이 그런 효과가 있다. 그런 면에서 당원 총투표가 매력적이다. 당 대의원대회는 결과가 거의 예상된다. 이미 3.27 당 대회에서 대의원들의 성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원 총투표라면 좀 더 합리적 설득력과 구속력을 가질 수 있다. 모든 당원이 참가해서 결정한 것을 함부로 거부하기는 힘들다. 절차적 정당성에 불복한 사람의 말로가 어찌될지는 지난 몇 번의 대선이 증명한다.

    오늘날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해야 하는 일 중에는 서구에서는 보수주의자들조차 상식으로 알고 있는 일반민주주의의 내용에 속하는 것을 이 땅의 문화 속에 심는 일도 있다. 자유주의도 그 중 하나일 것이고, 민주적 절차에 승복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진보주의자들이 정착시켜야 할 일반민주주의의 내용 중 하나다. 상식을 가진 정당문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진보주의자들이 해야할 역사적 임무 중 하나다. 

    일반 당원과 후배들에게 역할을 주자. 

    당원들에게 역할을 주자. 이제껏 아래로부터의 당 건설을 이야기했지만 일반 당원의 역할이 거의 없었다. 당원들에게 결정권을 주자. 최선을 다해 정치지형과 논쟁점을 만들어 놓고 그 결정은 당원들이 투표로써 결정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게 진정한 정치다. 6.2 지방선거 이후 지난 1년 서로들 최선을 다했다. 이쯤에서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다. 자신의 판단력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은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와 당내 정치를 포기하는 일이다.

    우리가 가는 모든 길은 역사상 처음 가는 길이다. 우리 역사상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려는 세력이 10년 이상 합법적이고 대중적으로 자신의 토대를 기반으로 서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신중하자. 답을 모르겠으면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자. 섣부른 확신으로 진보정치의 싹을 자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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