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자유주의적 진보대통합인가?
        2011년 06월 10일 07: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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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어드리 맥클로스키에 따르면, 정치경제학조차 “일종의 설득이라고 할 수 있는 수사학의 한 종류”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정치에서 수사가 난무하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진보정치에서 수사가 설득을 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다른 문제다. 핵심을 비틀어 진실을 모호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진보적인 태도가 아니다. 게다가 그 수사가 진보대통합과 관련된 문제라면 그것은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국민참여당의 과거를 묻지 말라?

    최근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대표의 국민참여당과 관련된 발언은 우려의 수준을 넘고 있다. 이정희 대표는 6월 7일 비교섭단체 국회연설에서 두 가지 기준을 언급하며 진보대통합의 확대(?)를 강조했다. 두 가지 필요충분 조건은 ‘6.15 공동선언에 동의하는 것’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국회 연설임을 감안해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모호하다.

    오히려 강조점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겠다.”에 찍혀 있다. 누가 보아도 국민참여당을 향한 메시지가 분명하다. 국민참여당의 과거 신자유주의 행적에 대해 “묻지 말자.”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진보대통합 과정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말은 “묻지마 통합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묻지마 통합을 밀어붙이는 일부 세력조차 공개적으로는 묻지마 통합은 안된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국민참여당을 놓고 묻지마 통합이냐 아니냐하는 삼류적인 수사들이 오고 갈 상황이 되기 직전이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의 김창현 위원장조차 “과거를 묻지 말자.”는 이정희 대표의 발언에 대해 “당 내부가 시끄러워질 것이고 혼란스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국진보연대 박석운 공동대표도 "당 일각(당권파)의 희망사항"이라며 분란만 일으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이정희 대표와 민주노동당의 당권파의 보폭은 더 빨라지고 넓어지고 있다. 당권파 일각에서 “국가보안법으로 탄압을 받았던 사람에게 정치적, 조직적 반성문을 요구하는 것”에 비유하는 발언도 등장할 정도다.

    하지만 국민참여당은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반성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다. 노무현 정권과 자신들이 추진했던 한미FTA는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에 맞서 싸웠던 우리 모두가 조직적 성찰을 해야 할 판이다.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대표의 싱크로율

    5월 26일 연석회의에서 합의가 무산되자 민주노동당의 당권파는 공개적인 결렬 선언을 준비한 바 있다. 당내 비주류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었지만 이런 시도는 국민참여당과 통합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서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이정희 대표는 국민참여당 통합에 대해 (열어놓고)연석회의에 논의를 해보자는 의미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삼일 동안에 벌어진 사건들을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국회연설과 유시민 대표의 당 진로 토론문이 같은 날 올라온 것은 우연이라고 치자. 그렇더라도 양쪽의 내용들이 놀라울 정도로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과거를 묻지 말자는 대목에 대해 국민참여당은 대변인을 통해 즉각적으로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연석회의에 참여한 대표자들은 국민참여당이 부속문서에 명기된 20대 과제를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이백만 대변인은 이 역시 동의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이정희 대표가 국회연설에서 진성당원제에 입각한 정당 민주주의를 여러 줄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또한 국민참여당도 당원 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정당이라는 공통점도 강조한다. 유시민 대표의 토론문의 서두를 옮겨보자. 싱크로율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써야 하는 모양이다.

    “특정지역을 넘어 전국적 기반을 만드는 정당, 깨어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보장하고 깨끗한 당비와 정당 활동 자금을 마련하는 정당,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당원들이 정책노선 결정과 공직 후보자 선출 등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정당”

    <한겨레>를 통해 이미 보도된 것과 같이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대표가 공동으로 책을 출간하고 출판기념회를 할 예정이다. 민주당 인사들도 참여가 예상되는 이 드라마틱한 그림은 통합논의 테이블보다 훨씬 파괴력이 클 것이다.

    언론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기사를 써제끼면 국민들에게 통합은 기정사실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조직적 성찰? 그런 비판은 대의를 거스르는 아집 세력으로 지탄받을 것이 자명하다. 이 우회로 기획은 좌파인 내가 봐도 감탄(?)스럽다

    여전히 문제는 연립정부 노선이다

    합의문과 관련하여 많은 의견들이 나왔지만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6월 1일 합의문에서 계속문제가 되는 부분은 3대 세습에 대한 것이다. 조승수 대표는 합의문과 관련하여 “3대 세습이 잘못됐다는 표현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정희 대표는 조승수 대표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합의문의 잉크가 말랐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도장을 찍은 당사자들이 해석투쟁에 돌입한 셈이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당원들은 (해석이 다른)각 당의 대표들을 믿고 찬성할지 반대할지를 판단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3대 세습 문제를 놓고 해석이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북의 권력 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의 주어는 새로운 진보정당이 아니다. 이 문장의 주어는 ‘진보신당’이다. 이정희 대표에게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정희 대표는 국회연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3대 세습과 관련한) 다양한 소수의견이 있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민주노동당 당권파들이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민참여당에 대해 ‘묻지마 마이웨이’를 하는 근본배경은 연립정부 노선에 있다. 이정희 대표는 지난 해 “한미FTA, 노동유연성 문제가 합의되지 않는다고 선거연합을 추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진보대통합이 진보적 집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든 말든)정권을 교체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2011년판 민주대연합의 환원에 불과하다.

    진보대연합과 민주대연합의 차이를 간단히 말하자면 “노선에 입각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과 “오로지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가치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그동안의 정치활동과 평가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6월 1일 합의문에서 이미 그런 가치는 상당히 모호해져버렸다. 그런데 국민참여당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그 모호한 가치마저 화석화된 문구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정희 대표와 당권파의 드라이브는 연일 강공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진보신당에게 합의문을 빨리 부결하라고 부채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민참여당은 진보대통합의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에서 모든 원인은 하나 이상의 결과를 낳는다. 국민참여당이 논의의 대상이 되는 순간 진보대통합 합의문보다 훨씬 지저분한 수사가 난무하게 될 것이다. 진보정당 안에 자유주의 경향이 존재하는 것과 자유주의 정당과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선거연합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당을 같이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유주의자들과 통합에 대해 답변해야

    가치를 기준으로 통합하자는 진보대통합의 약속이 오로지 총선과 대선만을 고려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통합으로 변질되고 있다. 진보대통합은 인물 중심의 파티가 아니다. 상품성 있는 인물을 놓고 초청하는 파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신자유주의에 동의하는 소수의견이 있다는 견해”를 존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보대통합의 핵심은 진보의 힘을 하나로 모으자는 것이다. 자유주의 정당과 함께 가자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국민참여당과의 합의가 “몇 퍼센트면 미흡하지만 동의해야 하는 것인가.” 필자에게는 수사가 난무하는 합의문을 수치로 환산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되묻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3당을 제외하고 연석회의에 참가한 대표자들은 이 문제에 답변해야 한다. 자유주의 정당을 논의 대상에 포함해야 하는지, 이정희 대표의 주장이 진보대통합에 정신에 부합하는지 답변해야 한다. 그리고 이 요청은 진보신당의 소위 통합파에게도 마찬가지다. 언제나처럼 문제는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그 목적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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