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하지 말고 주장을 실천하라"
    2011년 06월 09일 10: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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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뒤가 안 맞는 남종석의 주장

남종석 동지의 글을 잘 읽어보았다. 김현우 동지의 글에 대한 비판은 김현우 동지가 할 몫이지만 간단히만 언급하겠다. 남종석 동지는 우리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상대방의 주장을 의도적으로 과장하고 있다. 우리가 언제 노동자 계급 내부의 분할에 따라 노동자 조직도 분할해야 한다고 주장했는가?

우리가 말한 것은 노동자 계급 내부의 구성이 변화했다면 그 변화한 현실에 조응하는 노동자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것이 기존의 노동자 조직의 내부 혁신으로 가능할 수도 있지만 기존의 조직 외부에서의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면 그 또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는 하나이니 내셔널센터도 하나라야 한다면 민주노총이 한국노총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단결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변화된 현실에 따라 제대로 우리 운동을 혁신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함에도 남종석 동지는 하나가 되자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런 논리라면 애초에 분당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분당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남종석 동지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물론 남종석 동지의 진의는 그런 것이 아니리라 믿는다. 들어가서 같이 혁신하면 되지, 왜 굳이 따로 해야만 그게 가능한가라는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문제 제기는 정당하다. 들어가서 전체를 혁신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들어가서 혁신을 하기 위해서라도, 혁신의 문제의식이 제대로 확산될 수 있게끔 하는 내부의 문제제기와 이를 보장하는 제도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남종석 동지도 최초의 글에서 ‘헤게모니 투쟁’을 말했던 것이 아닌가?

혁신의 문제의식 자체를 부정하고,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이나 민주당과의 전략적 연대 및 민주연립정부를 통해 자파의 조직 확대만을 꾀하는 민주노동당 주류의 패권을 제어하지 않고 어떻게 혁신이 가능하단 말인가?

자긴 논리 자기가 뒤엎은 남종석

즉 남종석 동지의 주장대로 ‘하나가 되어 혁신을 위한 내부 투쟁을 벌이자’는 논리라면 그를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당내 패권주의의 극복과 당의 민주적 운영을 보장하는 실질적 방안에 대한 고민이다.

그런데 남종석 동지는 처음에는 ‘헤게모니 투쟁’을 이야기하더니 가장 최근의 글에서는 ‘패권주의 자체가 잘못된 문제설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애초의 논리를 마지막엔 뒤엎어버린 것이다. 남종석 동지는 논쟁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이 어떻게 변했는지 차분히 검토하기 바란다. 그러면 스스로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게다가 패권주의 자체가 잘못된 문제 설정이고 공동의 투쟁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이야말로 하나마나한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걸 부정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우리가 말하는 건 그게 왜 하나의 당이라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공동의 투쟁전선은 같은 당이 아니라도 구축할 수 있다. 게다가 꼭 당만이 참가하는 것도 아니다. 정당운동만이 우리 운동의 전부가 아니며, 당이 아닌 다양한 대중조직이나 사회운동조직도 같이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왜 굳이 당은 하나라야 되는가? 이건 혹시 ‘일국일당주의’라는 스탈린주의의 오래된 고정관념에 따른 구좌파적인 병폐가 아닌지 부디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내가 논쟁할 부분은 아니지만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자 한다. 남종석 동지는 우리의 이론적인 빈곤을 비판한다면서 본인의 이론적인 빈곤을 더 심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와 착취율 증가를 혼동하고 있으며 (자본론 3권을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이런 식의 ‘먹물’ 짓은 안하고 싶지만, 남종석 동지가 ‘맑스주의’를 언급하면서 거기에 기대어 우리를 비아냥거린데 대한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해달라), 사회주의와 생태주의를 기계적으로 대립시킴으로써 포스터나 버켓 등 최근의 이론적 논의들에 전혀 무지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우리의 주장을 노동자가 가난하게 살면서 착취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 양 왜곡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되, 총고용을 늘리고 전체적인 노동분배율을 상승시킨다는 개념은 남종석 동지에겐 아예 없는 듯하다(노동분배율 상승이 바로 착취율 저하이다. 착취율은 사회적 평균 차원에서 적용되는 개념이지 노동자 개개인에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역시 자본론 1권을 다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2. 혁신은 내부에서만 해야 하는가 — 김세균 선생님께

평소 존경하는 김세균 선생님께서 필자의 주장에 대해 반론을 주셨다(이후 존칭은 생략하니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나는 김세균 선생의 진정성을 믿으며 그 분의 해명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김세균 선생의 언급이 아니라도, 민주노동당이나 범NL 계열의 동지들 중에서 현재의 민주노동당 주류의 패권과 우경화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법 있음은 이미 잘 알고 있다(다만 한가지 잘 생각해야 할 지점은, 패권에는 반대하지만 우경화에는 찬성하는 사람들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양측에 걸쳐서 많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앞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민주노동당 내에도 진지하게 혁신을 고민하는 동지들 또한 제법 있음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분들과 함께 우리 운동의 혁신을 제대로 이루어낼 수 있기를 필자 또한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항상 자신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김세균 선생은 반신자유주의를 위한 강력한 진보정당을 말씀하시지만, 그 정당이 명목만 반신자유주의를 내세울 뿐 실제로는 제3의 길과 비슷한 길을 걸어갈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민주노동당 주류의 패권에만 반대할 뿐 우경화에는 찬성하는 사람들이 양쪽 모두에 많다는 것과 부인할 수 없는 조직노동운동의 보수화 및 관료화 경향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그러니까 더더욱 들어가서 그것을 제어하기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들어가서 함께 하는 것보다 외부에서 제대로 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 않은가?

필자가 예전에 어떤 글에서 썼던 바대로, 내부에 들어가서 행하는 내부자의 문제 제기는 조직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내부의 노선 투쟁으로만 치부되기에 운동 내부나 외부에 제대로 그 문제의식이 전달되지 않는 수가 많다.

반면 운동의 대의에 동의하고 같이 해야 할 부분은 같이 연대하면서도 운동의 혁신과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진지하게 문제 제기하는 우호적인 외부자가 존재하는 것이 약간만 길게 보면 오히려 운동 내부적으로나 외부의 대중들에게도 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자부심 없이 어떻게 당 운동을 하나?

김세균 선생은 경험이 없으시겠지만, 민주노동당에 창당 초기부터 참여했던 필자의 입장에서 탈당 전에 가장 절망스러웠던 것은 내부의 노선투쟁에 에너지의 90%를 쏟음으로써 외부의 대중사업이나 운동 전반에 대한 고민들을 풀어나갈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통합하면 또 다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물론 그런 내부 투쟁 신경 안쓰고 열심히 대중사업하고 혁신을 위한 노력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이른바 ‘좌파의 무능’이나 ‘분파주의’에 대한 지적들이 본질적으로는 이런 문제의식이라 생각하며 그 문제의식 자체에는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런데 조금만 더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다수파들은 다수이기 때문에 자신의 노선을 관철시키면서도 대중사업이나 조직사업을 함께 해나갈 수 있다. 반면 소수파는 현실적으로는 둘 중 하나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내부 투쟁을 하자니 대중사업에서 ‘무능’해지고, 대중사업만 하자니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자신이 속한 당의 입장으로 나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내가 속한 당이 하나의 ‘전술적 외피’에 지나지 않는다면 후자처럼 행동할 수 있다. 어차피 실제 목적은 따로 있으므로, 당의 이름을 잠시 빌려 내가 생각하는 실제 목적을 관철시키는데 이용만 하면 되니까 대외적 입장 따윈 중요하지 않다(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예나 지금이나 민주노동당 내에 꽤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나는 당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외부에 자신의 당이 별도로 있지 않는 한, 현재 자신이 속한 당에 대한 자부심이 없이 어찌 당 운동을 할 수 있는가? 통합은 ‘생존’에는 보탬이 될 지 몰라도 ‘나의 당’에 대한 자부심을 치명적으로 훼손한다. 그리고 그럴 거라면 굳이 당 운동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운동의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이 진보정당운동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결국 이런 것이다. 들어가서 내부에서 투쟁하면서 우리 운동을 혁신해 나갈 것인지, 외부에서 같이 할 부분은 같이 하면서 운동의 혁신을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인지는 각자의 경험과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선택할 문제일 뿐이다.

이건 선악의 문제도 아니며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강요할 문제도 아니다. 서로가 진지하게 혁신을 고민한다면 내부와 외부에서의 노력은 언젠가는 만날 것이다. 그러니 서로를 존중하면서 각자의 갈 길을 가자.

3. 패권주의 극복을 진지하게 고민하길 – 다시 김세균 선생님께

다만 김세균 선생 등 통합진보정당에 들어가서 내부에서 혁신하자는 분들께 꼭 한 가지 부탁드릴 말씀이 있다. 이 앞의 글에서도 말했지만 그런 논리에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은 혁신을 방해하는 내부의 패권을 제어할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상대방의 패권주의 극복 의지를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또다른 많은 부분에선 별로 그럴 의지가 없음도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패권과 우경화를 제어하기 위해선 상대방 일부의 진정성을 믿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굳이 그런 길을 택했다면, 게다가 그것이 ‘절호의 기회’라고 믿는다면 자신의 뜻이 관철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진정성 여부에 관계없이, 당내 패권의 제어와 당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제대로 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고 관철시키는데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란다.

또한 김세균 선생도 말씀하셨듯이 제도적 장치의 강구조차도 그것만으로는 패권주의 극복이 불가능하다. 사실 패권주의 극복의 가장 좋은 방법은 정파의 패권에 휘둘리지 않고 상식적인 선에서 판단하는 당원들이 대거 참여하여 정파적이고 패권적인 결정에 반대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당 내의 통합파 동지들이건 민주노총이건 진보적 지식인이건 통합을 목놓아 외치는 모든 분들이 독자파를 설득하려 하지말고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실천하기를 바란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주장대로 10만 당원을 확보하고, 광범위한 진보적 지식인을 결집하고, 이들이 당 내에서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실제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주류의 패권을 제어한다면 그건 우리들 또한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비록 같은 정당이 아니라 할지라도 좋은 노동자 대중정당이 존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결국, 바다에서 만날 수 있을 것

다만 그 당이 아니라 그 당의 외부에서 새로운 혁신의 노력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억지로 같이 가자고 강요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내부에서의 노력만이 아니라 외부에서의 노력도 중요하다.

또한 현 민주노동당 주류의 패권이나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우경화 경향 등으로 인해 내부에서의 혁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조직노동자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여 당내의 패권이 충분히 제어되는 바람직한 경우조차도, 조직노동자 그 자체의 보수화와 대리주의 경향 등으로 인해 혁신이 역으로 지체될 수도 있다.

그러니 부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지는 않았으면 한다. 사실 현재의 진보신당은 냉정하게 말해 한 줌도 안되는 집단이다. 한 줌도 안되는 집단이 자신의 자부심을 지키며 멀고 험할지라도 새로운 혁신의 길을 가겠다는데 그걸 굳이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를 설득할 시간에 새로운 당원들을 확보하는 데 힘쓰기를 바란다.

   
  ▲필자.

오늘(6월 8일) 발표된 노회찬 동지의 글에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딱 하나는 진심으로 동의하는 것이 있다. ‘물이 흐르다 큰 바위를 만나면 둘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해진다’라는 언급이다.

지금의 이 모든 논쟁이나 혼란은 결국 우리 운동이 어려움에 처하고 혁신이 지체되면서 운동의 물길이 암초(큰 바위)에 부딪힘에 따라 발생한 것이다. 그러니 노회찬 동지의 말대로 둘로 나뉘어서 가면 되지 않는가?

물론 우리 입장에선 그 둘로 나뉜 물길 중 저쪽은 바다가 아니라 정체된 호수로 가는 물길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통합파 동지들 입장에선 우리가 가는 물길은 결국 지하로 흘러들 위험이 큰 물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지하로 흘러드는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안타까워 우리를 설득하려 하는 것이리라. 그 마음에 대해선 고맙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그러나 어느 물길을 택하건 바다를 잊지 않고 있다면, 호수에 머물렀다가도 다시 흘러내릴 수 있을 것이며 지하로 숨어들었다가도 결국에는 다시 강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바다에서 만날 것이다. 그러니 그 고마운 마음만을 기억한 채 이제 우리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인의 말에 따르고자 한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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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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