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죽음들, 내겐 고스란히 빚입니다
        2011년 06월 07일 09: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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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퍼런 청년을 열사로 부르는 일이 나는 아직도 낯설다. ‘인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박종철이 대공분실에서 죽어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건 내가 거기 다녀온 지 몇 달 후였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내가 다녀온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었는지 내가 겪은 일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었는지 비로소 실감났다.

    그는 죽고, 그와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살아서 크레인에 오른 지 152일째. 선배의 이름을 불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시대. 죽음으로 역사가 된 청년의 이름을 우리는 6월 항쟁의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 부름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고 전국 곳곳에서 하루 저녁에도 수 백 개의 노동조합이 세워지고 어용노조가 민주노조로 바뀌었다.

       
      ▲필자

    불량 냈다고 따귀 맞고, 5분 지각했다고 하루 일당이 까이던, 손가락이 잘리고 다리가 부러져도, 심지어 사람이 죽어도 산재가 뭔지도 몰랐던 공순이 공돌이들이 노동자라는 본명을 쟁취했던 개명천지.

    이 크레인에서 보는 바로 맞은편에 그의 집이 있었다. 선배와의 약속을 목숨처럼 여겼던 한 청년이 죽었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이 크레인에선 조합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끼들과의 약속을 어겼던 한 노동자가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들이 고스란히 빚이 된 내가 다시 크레인에 올라 그의 집이 있던 자리를 내려다본다.

    역사는 아직도 이렇게 가혹하다. 인연이 빚이 되고 죄가 되는 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 몫의 밭을 갈 뿐이다. 그렇게 돌을 골라내고 바위를 들어내며 황무지를 갈다보면 꽃도 되고 감자도 열고 고구마도 캘 날이 오려니 하는 믿음으로.

    25년 전 한 청년이 쓰고자 했던 민주주의를 온 몸으로 써내려가는 우리조합원들에게 이 상이 위로가 되길 바라며 곳곳에서 싸우는 노동자, 청년학생들, 민중들의 하루하루가 박종철이 살고 싶었던 세상으로 이어지는 나날임을 되새기고자 한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2011년 6월 6일
    크레인고공농성 152일차 김진숙 올림

                                                      * * *

    ‘박종철인권상’은 지난 2003년에 제정된 이래 국가권력의 부당한 폭압에 맞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해 온 사람이나 단체, 소수자-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지키고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이나 단체를 선정하여 시상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 민주화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던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박종철 열사의 ‘의로운 죽음’을 기린다.

    아울러 ‘신의’와 ‘약속’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끊임없이 민중과 함께 하고자 했던 ‘박종철 정신’을 되새기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향상에 기여하고 앞장서는 분이나 단체를 격려하는 역할을 해 왔다. 올해 7회 ‘박종철인권상’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으로 선정됐다.

    ‘박종철인권상’ 심사위원회는 지난 3일 이렇게 밝혔다. ‘박종철인권상’ 심사위원장은 불교인권위원회 위원장 진관스님이다. 심사위원으로는 김거성(한국투명성기구 회장, 한국기독교장로회구민교회 목사), 박동호(신수동성당 주임신부, 천주교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정도스님(양산 전법회관 주지), 조국(서울대 법대교수),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교수) 등이 애썼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1960년 출생으로 지난 1981년 7월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직업훈련소 입소한 뒤 같은 해 10월 한진중공업 선대조립과에 입사했다. 이어 1986년 2월 노조 대의원에 당선된 뒤 같은 해 7월 어용노조를 폭로하는 유인물 배포로 해고된 뒤 아직까지 해고자 신세다. 현재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위원이다. 아울러 김 지도위원은 현재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85호 크레인에서 6일 현재 152일째 고공농성 중이다. / 편집국

    * 이 글은 금속노조 인터넷 기관지 ‘금속노동자'(http://www.ilabor.org)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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