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 낡은 질서 해체 계기 삼아야"
        2011년 06월 07일 08: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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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전국위원 H님께,

    조만간 개최되게 될 전국위원회를 앞두고 얼마나 고민이 많으시겠습니까? 저같은 일개 당원도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으니 이번 전국위원회를 주목하고 있는 당 내외의 시선이 여간 부담이 아니실 것 같습니다.

    최근에 <레디앙>을 보니 세칭 진보신당 통합파와 독자파라고 불리는 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나를 설득해 달라"고 얘기하고 있더군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동지’라는 호칭을 쓰는 이들간에 이견을 좁히고 서로 접근하려는 의지를 담은 말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논쟁을 하는 이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서로 다른 길을 가겠다고 애초에 작정을 해놓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작정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려는 이유도 그런 것입니다. 

    먼저 저도 이번 연석회의의 최종 ‘합의안’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걸 말씀드리려 합니다.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은 남한의 자주적인 진보적 대중정당이라면 얼마든지 표명할 수 있습니다. 6.15 정신을 들어 상대 체제를 인정한다는 것과 권력의 세습을 용인한다는 것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특히 진보정당에 들씌워진 친북의 낙인을 이번 기회에 씻어내고 국민의 정서에 부합하는 합리적 진보의 길을 선언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진보신당 3.27 당대회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이 담아내야 할 기준을 높게 설정한 것은 한편 민주노동당의 자주파적 입장에서 볼 때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북한 문제로 인한 진보정당운동의 ‘역사적 질곡’을 감안할 때 이번 기회에 털고 가는 것이 바람직 했다는 것입니다. 좀 더 과감하게 수용하지 못한 것이 내내 말밥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시 민주노동당 내 강경 자주파의 ‘협량한 정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협상 과정 전체는 ‘진보의 재구성’을 추진해 온 진보신당이 적극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민주노동당이 그것을 수용하거나 때로는 방어하는 구도로 진행되어 온 것으로 진보신당이 주도해 온 과정이었으며, 이른바 대북 문제에 대한 민노당 협상단의 소극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북의 핵무장이 ‘자위권’이라는 등의 시대 착오적인 얘기는 더이상 공공연히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고 봅니다. 패권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실력 이상으로 당권을 쥐고 전횡하는 것은 더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번 합의가 이런 수준에서 정리된 것은 민주노동당 내부의 모순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민주노동당의 당권파는 여전히 경기동부연합이니 광주전남연합과 같은 이른바 완고한 ‘자주파’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대중정치의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없습니다.

    합의 수준과 민주노동당 내부 모순

    강기갑 의원을 대표로 세우고, 이정희 의원을 대표로 내세워야만 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상황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햇볕 아래 곰팡이가 살 수 없듯, 대중 정치의 공간이 확장되는만큼 시대착오적인 패권정파의 영향력이라는 것도 급속히 위축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번 합의를 기반으로 남한의 진보적 대중정당이 수구보수와 다른 각도에서 북한의 권력 세습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한반도 리스크를 줄이고 평화체제를 여는 방법론을 토론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햇빛정책을 계승하고 더 발전시키는 대안을 만드는 것도 새로운 진보적 대중정당이 맡아야 할 임무입니다. 그를 통해 북한의 개혁 개방을 연착륙시키고 평화 통일의 파트너쉽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저는 조승수, 노회찬, 심상정과 같은 우리 당의 대중적 지도자들이 이 문제에 침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중적 진보정당의 지도력 경쟁에서 이들이 국민과 소통하는 현대적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며, 진보신당이 추구해 온 진보의 재구성이 결국 새로운 진보정당의 주류 노선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H님,

    저는 지금도 분당이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의 경쟁적 대안으로 정립되면서 민주노동당은 스스로 ‘대중적 진보정당’의 길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물론 패권정파의 존재나 그들의 시대착오적 이념이 잔존했다 하더라도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과정에서 그들은 민생 문제를 전면화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없었지요. 지난 3년은 그리 길지도 않았지만 짧지도 않은 시간입니다. 어떤 이는 이번 합의문이 ‘복당 선언문’이라고 하는데 설령 복당이라 하더라도 복당할 당은 지난 3년을 거치며 이미 다른 당으로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과정이 결국 분당 노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입증해 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이제 우리가 추진해 온 진보의 재구성을 통해 그것을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합의안 한계와 시대적 과제 논의돼야

    저는 ‘합의안’이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보의 재구성을 가로막는 낡은 정파질서를 해체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합의안의 수용 여부를 넘어 그것이 담고 있는 정신을 우리 시대의 눈높이에서 올바로 해석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토론이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은 합의안의 전면적 긍정이나 전면적 부정이 아닌, 합의안이 안고 있는 한계를 올바로 직시하는 한편 그것이 지시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들을 더 깊게 논의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한계에 봉착해 있는 상황에서 노동이 존중되는 복지국가의 건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국민대중에게 설득할 것인지? 후쿠시마의 핵재앙을 교훈삼아 탈핵과 생태 사회로의 전환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균형잡힌 시각에서 대북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한국 정치의 발전을 옥죄고 있는 보수 양당체제를 돌파하기 위해 진보적 대중정당의 2012년 전략은 어떻게 짜야 하는지? 등이 우리가 진취적으로 논의해야 할 주제들입니다.

    H님,

    최근 들어 사람들 관계도 점차 협소해지고,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고, 예전엔 스스럼없던 이들과의 관계도 지금은 어성버성해졌습니다. 어느 때보다 소통이 필요 할 때 소통의 단절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용기를 내야 하겠지요.

    저는 2010년 지방선거 전에 선거 공약을 위한 정책담당자 회의 뒷풀이 자리에서 ‘지방공동정부’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습니다. 제 얘기를 들은 분들 중 일부는 조심스럽게 이견을 제기하면서도 그런 문제의식을 가졌다는 이유로 저와 당을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그 분들도 진보정치가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했고, 저도 진보의 독자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독자성을 유지한다는 것과 외연을 확대한다는 것 사이엔 늘 긴장이 있기 마련입니다. 진보정치란 것이 늘 그 경계에서 그것을 확대해 나가려 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진보정당과 대중조직의 선순환

       
      ▲필자.

    저는 아직 진보정당은 노동자 대중운동의 성장과 떼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대중운동이라는 것이 지금 한계에 봉착해 있습니다.

    대중운동 스스로도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최근엔 대중운동의 위기에 돌파구를 만드는 정치의 능동적인 역할에 주목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보정치가 영향력의 정치를 보다 강화하면서 대중운동이 재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대중조직들이 대표성을 회복하게 되면 진보정당과 계급적 대중조직간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한 최선의 전략이 무엇인지? 진보정당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연합정치가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 지에 대해서도 앞으로 더 많은 토론을 기대합니다.

    언제나 믿음을 잃지 않겠습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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