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향유는 시민의 보편적 권리다"
        2011년 06월 05일 09: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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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올해 2월, 시나리오 작가 고(故)최고은 씨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다. 예술인들의 열악한 현실, 복지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며 일명 ‘최고은법’까지 나왔지만 배고픈 예술인들의 이야기는 금방 사그라졌다.

    그럼에도 한켠에는 미술전 앞에서 긴 줄을 서고, 뮤지컬, 오페라 등을 보기 위해 값비싼 표를 예매하며 문화갈증을 해소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 이 속에서 다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문화를 둘러싼 다양한 현상들은 어떻게 설명 가능한가? 한국 사회에서 문화, 예술, 예술가들의 위치는 어디인가? 그들과 문화를 누리는 시민들을 위해 정부, 공공기관, 활동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문화는 정치다』(장 미셸 지앙 지음, 목수정 옮김, 동녘, 14000원)의 저자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문화정치’라는 개념 속에서 찾도록 도와준다. 파리 8대학에서 프랑스의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문화 관련 일에 종사해온 그는 프랑스인들이 어떠한 문화생활을 하며, 프랑스 정권은 어떤 정책을 펼쳐왔는지 이 한 권에 담았다.

    플랑스인들의 문화생활과 프랑스 정권의 문화정책

    이 책을 읽고 나면 문화와 정치라는 생소한 결합이 한국 사회도 충분히 가능하며,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또한 문화정책에 관한 자료가 척박한 한국에서 문화정책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에게 중요한 사례를 제공할 것이다.

    영화, 음악, 오페라, 축제, 전시회 등 각종 문화행사들이 거리에 즐비하다. 문화 관련 종사자들은 늘어나고 있으며, 예술 작품이 수익성 높은 상품으로 팔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문화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가 강조하듯이 문화정치를 문화정체성, 문화현상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문화정치는 국가의 문화정책과 문화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어떻게 칸 영화제, 망통 축제, 아비뇽 축제 등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축제의 발원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저자는 그 근원을 제1제정의 문화정책에서부터 찾는다. 프랑스는 문화를 정치 과제로 여기고 시행해왔다는 것이다. 

    제1제정부터 제4공화국 동안 중요한 기틀을 세운 문화 정책들을 소개하며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보여준다. 진정한 문화 권력의 기초를 확립한 프랑수아 1세, 궁정을 예술가들의 거주지로 만들고 국가 문화기구까지 만들었던 루이 14세 등 왕을 중심으로 진행된 정책들을 비롯해 1959년 문화 부처의 탄생, 국립민중극장 대표였던 장 빌라르가 지금 세계적인 축제가 된 아비뇽 페스티벌을 창설했던 과정 등 중요한 문화 사건들을 서술한다.

    또한 앙드레 말로와 자크 뒤아멜의 정책을 비교하며 정치가들이 문화라는 정치에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재현했는지도 보여준다. 문화에도 정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내재되어 있기에 문화를 통한 정치 구현은 충분히 가능하다. 문화는 바로 정치다!

    경제와 문화가 잘 어우러진 정책

    모든 것이 자본에 흡수 통합되는 시대, 문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 경제대통령의 정권 아래에서 돈이 되지 않는 문화는 소외되고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된다. 각종 예술상, 예술 지원도 모두 돈과 결부되어 있고, 심지어 ‘문화센터’에서도 재테크 강의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경제와 문화가 잘 어우러진 정책이란 무엇인가?

    이런 점에서 저자가 미테랑 정권의 문화정책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테랑은 프랑스에서 가장 문화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1981년 최고 권력에 오른 이후 프랑스의 문화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문화개발국이 창설됐고, 조형미술 창작진흥기금, 방송산업 지원 기금이 생겼으며 저작권법이 탄생하기도 했다. 미테랑 정권에서는 문화라는 이름이 부흥기를 맞이했고, 시민들에게 문화강국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이르렀다.

    문화에 대한 책임이 공공기관, 정부에 있다는 문제의식이 문화를 공유하게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각종 문화정책들은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정부의 문화 지원과, 가정에서의 문화 부문 지출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문화는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다.

    또한 서울 중심의 문화, 자본 중심의 문화가 지방과 순수예술을 소외시키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음반과 영상이 책의 자리를 밀어내고 있고, 혼자 즐기는 개인화된 문화, 아파트 문화가 늘어나고 있다. 저자가 문화정치는 예술가의 보편적인 권리 보호와 예술 작품의 원활한 배급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문화적인 계급차를 줄이는 것에 더 많은 부분을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의 시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 * *

    저자 – 장 미셸 지앙

    파리 8대학 교수. 이 대학에서 유럽연구소/ 예술과 문화에 관한 훈련 및 자원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프랑스 디종대학에서 <문화적 혁신과 국가>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프랑스 문화부, 유네스코 및 유럽의회에서 문화정책 전문가로 활동했다. 또한 프랑스 문화 전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으며 월간《유럽문화》를 창립했고, 라이도 프랑스, 프랑스 컬쳐의 프로듀서를 역임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 이외에도《연극과 직업》,《문화 경영과 공학》 등을 썼으며 지금도《르몽드》,《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문화정책과 관련된 글을 발표하고 있다.

    역자 : 목수정

    1990년대 중반부터 문화 공간에서 일하다가,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8대학에서 공부하며 미테랑 정권 하에서 이뤄진 문화공공성에 대한 논문을 썼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민주노동당 문화담당 정책연구원으로 일했고, 예술인 복지정책, 영화 다양성 정책 등을 주장하며 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데 힘썼다.

    또한《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야성의 사랑학》,《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공저),《리얼 진보》(공저) 등 문화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을 쓰기도 했다. 지금은 프랑스에 거주하며 한국 문화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한국의 문화정책을 다룬 책《이제는 문화대통령이다》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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