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우글대는 보수적 노동 현장
학원, 그 이상한 곳에 대한 짧은 고찰
    2011년 06월 06일 02: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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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단편소설 「코리언 스탠더즈」에는 말끝마다 과장된 “~했습니꾸아?”를 연발하는 희화화된 모습의 운동권 출신 학원강사가 등장한다. 또 김애란의 단편소설 「자오선을 지나갈 때」에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의 표현대로 “먹물들의 막장”인 학원에 몰린 방황하는 신참 학원강사가 나온다. 현실에선 아마도 이 둘이 원장과 강사로 만나고 있지 않을까? 쑥스럽게 시강(시범강의)을 나누고 약빠르게 급여와 시수를 셈하며…

   
  ▲일러스트레이션 / 장보연

사교육 사업장은 그 노동의 성격이나 의미가 가장 ‘보수’에 어울리면서도 또 ‘진보’들이 가장 많이 포진한, ‘이상한 곳’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대학 졸업 후 특별한 직업 없이 꾸준히 사교육에 발 담그고 살고 있다. 

물론 요즘 젊은 진보(?)들뿐만 아니라 과거 광장과 거리를 종횡무진 날뛰던 386들이 대거 원장 혹은 대표이사로 자리하고 계신 곳이 또 학원이다. 물론 사교육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노동이 전제하고 있는 것이 ‘진보’와는 정반대의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근무환경 매우 열악한 ‘수상한 곳’

한편 사교육 사업장은 소수의 대형학원을 제외하고는 근무환경이 매우 열악한, ‘수상한 곳’으로도 악명 높다. 1년에 네 차례 있는 시험기간에는 주말무급 보충수업을 약 한 달간(1년이면 네 달) 감내해야 하고, 임금체불이 다반사로 일어나며, 퇴직 시 실업급여가 적용되지 않고, 퇴직금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강의 외에 청소나 전화상담 등의 잡무까지 병행해야 하는 곳이 그곳이다. 과외의 경우는 알선업체의 수수료 부당착취가 도를 넘어선 상태다. 진보들이 (활약이 아니라) 고발해야 할 업소가 바로 사교육 사업장이란 소리다.

하지만 사교육 사업장의 첫 번째 특징(진보 집결소)은 그 특유의 도덕적 부끄러움 때문에 현실적 부당함인 두 번째 특징(열악한 고용 및 근무환경)을 지우게 한다. 그 결과는, 오늘날 기형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사교육사업의 규모만큼이나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강사에 대한 임금체불 및 권리침해 사례(‘학원강사 모여라’ 카페http://cafe.daum.net/educationpark의 페이 미지급학원공개 게시판 참조)이다.

지난 달 26일, 사교육노동으로 밥벌어먹고 살고 있는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뭉쳤다. 청년유니온 차원의 공식모임은 아니었고 필자와 다른 조합원의 공동제안으로 이루어진 격의 없는 자리였다. 이 자리는 겉으로 사교육노동자들의 친목모임 성격을 가장하면서도 속으로는 사교육노동자들의 처우 개선(두 번째 특징)을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었는데… 하지만 정작 모임에선 사교육노동의 두 번째 특징뿐 아니라 첫 번째 특징(진보 집결소)과 관련한 토론이 끊이질 않았다.

이곳 ‘진보, 야!’ 코너에서 댓글로 상당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어떤 조합원은 “사교육산업은 사회적으로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잉여 산업이고, 학벌사회와 서열문화를 고착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종사자들 역시 다른 더 열악한 일자리를 구하는 대신 이 일을 선택한 것이기에, 우리가 사교육노동 처우개선 문제를 들고 일어서는 것은 유니온이 지향하는 정치적 성격에 비추어볼 때 맞지 않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학원강사 조합원들의 논쟁

하지만 이곳 ‘진보, 야!’ 코너의 필진으로 활동하며 역시 많은 글을 썼던 어떤 조합원은 “그렇게 따질 경우, 3차 서비스산업 자체가 사회공공적 가치 창출과는 무관한 잉여 노동이 되며,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노동은 자본가의 배를 불리는 일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역시 맞는 말이다.

‘필진 논객’의 위의 말에 ‘댓글 논객’은 바로 자신의 오류를 시인했다. 분명 “아무런 기능직 기술을 갖추지 못한 인문계 졸업자로서 다른 일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는 어떤 조합원의 항변 역시 맞는 것이었고, 사교육이 학벌사회를 낳았는지 학벌사회가 사교육을 낳았는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럼에도 위 논쟁에서 개인적으로는 필진논객 조합원의 말에 이성적으로 수긍이 가면서도 정서적으로 여전히 댓글논객 조합원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게 됐는데… 이는 결벽증일까 혹은 이데올로기의 영향일까.

물론 위의 사교육노동의 성격에 대한 논쟁 외에 과외알선업체의 수수료 부당취득 문제와 학원강사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 등에 대한 문제가 집중 토론되었고, 학원강사의 근무조건과 관련해 일정 시간 이상의 연속강의를 금지시키는 운동에 대한 이야기 등 처우개선 차원의 논의들도 오갔다. 다만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한 대응을 청년유니온 차원에서 해도 되는가에 대해서는 사교육노동자가 차지한 사회적 포지션 때문에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자리는 끝났다.

인문계 대학 졸업 여성의 90%가 사교육 일에 종사한 경험이 있다는 어느 비공식 통계가 가리키는 것처럼 사교육시장은 청년실업자를 빨아들이는 고마운 곳이면서 동시에 청년실업자를 양산하는 전제 위에서 움직이는 고약한 곳이다. 또 예비청년실업자를 상대로 장사를 하다 학원강사 직업으로 청년실업의 상태를 해소시켜준 후 다시 청년실업의 현실로 협박해 열악한 고용조건을 감수하게 하는 교활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만일 사교육노동에 대한 처우개선 문제를 놓고 싸움을 벌여야 한다면, 이 싸움은 어떤 형태로 진행돼야 할까. 우리의 사교육 밥그릇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형태? 아니면 장기적으로 우리의 사교육 밥그릇을 자발적으로 몰수하는 형태?

   
  ▲필자.

후자의 형태로 간다면 대다수의 학원강사들로부터 연대는커녕 소외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경우, 운동 주체들에게 역시, 결국 자신의 노동을 그저 거쳐 가는 정도의 일로 인식하게 하는 자기배신을 지시한다. 따라서 이런 악수는 절대, 절대로 안 된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과 같이 비대화되고 계급화한 한국의 사교육시장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이 모든 혼란을 덮어두고 일단, 일단은 그냥 열악한 근로조건과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놓인 사교육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당사자 차원의 노력을 할 생각이다.

중간고사 기간 무급으로 10시간째 보충수업 연강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나도 모르게 교단에 주저앉은 경험이 있기에. 동료강사가 학원 내의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이유로 해고되는 걸 보고 내가 해고되는 것 같은 서러움과 내가 해고시키는 것 같은 죄책감을 동시에 맛봤었기에.

그런데, 꿈같은 얘기겠지만 386출신 원장들과의 연대는 정말 불가능한 걸까?

                                                    * * *

* 이번 주부터 청년유니온 조합원인 조영훈씨가 ‘진보, 야!’ 필진에 합류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학원 강사와 다양한 글쓰기 등을 통해 생계 유지와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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