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같은 내 친구들 얘기 시작합니다"
    2011년 06월 06일 11: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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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자는 70년대 한국노동운동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로 기록돼 있는 ‘동일방직’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이어 노동상담과 세입자 운동을 했으며 시집을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전태일 재단 소식지 <사람세상>에 자신의 친구이자 동지인 70년~80년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레디앙>에서는 그 동안에 연재됐던 이야기를 포함해 그의 연재 글을 함께 싣기로 했다. 첫 회에는 <레디앙> 독자를 위해 필자가 직접 쓴 자기 소개 글과 함께 "친구들의 이야기"를 쓰게 된 배경이 실렸다. <편집자 주>

                                                  * * *

정명자가 말하는 정명자

1975년 인천 동일방직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노동운동에 눈을 뜨다.
노조활동을 하면서 1970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몸을 불사른 평화시장 전태일 열사부터 시작하여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의 집단해고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들을 보고 들으면서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였다. 동시에 근로기준법, 노동의 역사 등을 공부하면서 당시 금서였던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철학에세이』 등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노동운동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다.

1978년 동일방직 노조 똥물사건을 겪으며 해고당하다.
1984년 경동산업(현재 키친아트)에서 노조를 결성하다.
1985년 시집 『동지여 가슴 맞대고』(풀빛 출판사)를 출간하다.

1986년 70년대 해직된 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든 한국노동자 복지협의회 인천지부에서 노동상담을 시작하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시기에 인천지역에서 노동조합 결성을 도왔다. 가을에 결혼하여 삼양동이라 불리는 미아동 산동네에 살면서 아이 둘을 낳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최대의 슬럼가 미아동 세입자대책위원회를 꾸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 확보 활동에 전념하였으며 가이주단지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2007년 12월부터 전태일재단 소식지 <사람세상>에 친구들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최근까지 지역의 취약계층 취업 상담을 하다가 지금은 평범한 중년 아줌마로 살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필자.

1970년대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암흑 같은 굴욕의 시대였다.

하루에 12~14시간 일해야 하는 장시간 노동과 입에 풀칠도 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저임금을 받으면서도 법적인 보호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로 살면서 민주노조 활동을 한다는 것은 당연한 법적 권리임에도 민주노조는 탄압을 받았다. 이에 대한 저항은 공권력에 의해서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불순세력의 배후조종을 받은 좌경, 빨갱이들의 난동이라고 조작되거나 은폐되었다.

나는 1975년 열여덟 살의 나이에 동일방직에서 실을 만드는 일을 하는 노동자였다. 동일방직 노동조합은 1972년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지부장이 탄생되어 현장노동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왕성한 활동을 하던 민주노동조합이었다.

나는 입사하자마자 ‘선진적’인 활동가들에게 찍혀(?) 산업선교회 소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소모임에서는 노동법, 시사 문제, 한문 등을 공부했고, 간간이 교양강좌를 통해 올바른 노동자의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배웠다. 

나는 이런 소모임에서 공부를 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서 경험하는 인간다운 삶이 얼마나 기쁘고,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알게 됐다. 당연히 노조활동에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조활동을 적극적으로 한다는 것은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는 일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노동자 현실 알려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인 70년대는, 지금도 크게 바뀐 게 없지만, 철저한 정경유착을 기반으로 민주노조를 토대를 깼다. 당시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부당노동행위는 은폐되었으며, 이에 항의하는 현장투쟁들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지만 재갈 물린 언론에는 이런 일이 단 한 줄도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가슴 아픈 노동자의 현실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실 그대로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가깝게는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가족들에게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특히 다섯 살배기 남동생 인효에게는 나중에 내가 죽더라도 누나가 겪은 현실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노동운동이 더욱 활발해지려면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들의 힘든 현실과 현장 활동들이 풍선처럼 부풀려지거나, 사실과 다르게 왜곡보도 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공정하게 알려져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운동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쓰기 공부를 한 적도 없고, 글을 잘 쓰지는 못했지만 가슴이 답답하거나 분통터지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나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나무 숲에서 외친 노인처럼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마음이 향하는 대로 글을 썼다. 글을 쓰고 나면 속에 있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다 털어놓은 듯 마음이 후련해지고 뿌듯해졌다.

   
  ▲맨 오른쪽이 필자. 

1978년 동일방직에서 해고 된 후 복직운동을 하면서 호소문과 유인물도 만들고 나중에는 전국에 뿔뿔이 흩어진 동료들과 함께 하기 위한 소식지 <동지회보>를 만들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쇄기술이 발달되지 않아서 ‘가리방'(등사지에 철필이라는 연필로 직접 원고를 썼다)을 긁어 등사기로 한 장 한 장 밀었다.

그 후 경동산업에서 노조 결성 후 다시 소식지 <인천교 소식>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노동자 신문을 편집했다. 결혼을 하고 삼양동 산동네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세입자 소식지를 만들었다. 열여덟 나이에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는 그 이후에도 이웃과 함께 했던 나의 모든 활동과 함께했다. 

친구들 이야기를 시작하며

나는 이렇게 3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민주화운동의 대열에서 이탈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이제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 세월 노동자로 살면서 터득한 삶의 방식으로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사람들은 절대 아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이 가난하고,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들풀처럼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들어가보면 마치 움직이는 근현대사를 보는 것처럼 파란만장하다. 나는 얼굴의 모양처럼 다양하고 굴곡진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태일 재단의 소식지에 친구들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였는데 이제 <레디앙>에 연재하게 되었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읽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평생을 좌우한 20대에 겪은 경험들을 나누며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용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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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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