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파 동지들, 나를 설득해달라"
        2011년 06월 04일 10: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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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증책임이라는 말이 있다. 소송법상의 개념이지만 상식에도 맞는 원리이기 때문에 꺼내들었다. 입증책임의 원리에 의하면 뭔가를 주장한 사람이 그 내용의 올바름을 증명하는 것이 상식에 맞다. 주장한 사람에게 입증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 입증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통합파이지 자주파가 아니다. 이걸 명확히 하고 시작해야겠다. 남종석 동지가 느닷없이 ‘독자파들이여 나를 좀 설득해달라’고 소리쳤다. 입증책임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입증책임의 떠넘김

    대표자연석회의 합의문이 나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합의문이 왜 필요했는지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 설명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상대방이 아직 납득하지 못했으면 좀 더 설득할 일이지 왜 납득하지 못하는지 거꾸로 자신에게 설득해 달라고 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마치 자신이 정당한데 상대방이 설득력이 없는 것처럼 교묘히 돌려친 화법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방법은 시사토론에 나온 각 정당의 토론자들이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자신을 부각시키는 토론 방법이지 동지를 설득시켜서 건설적인 결론에 도달하고자 하는 토론 자세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을 왜 추진했는가를 이야기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는 통합이 아니라 진보정당을 재구성하고자 했다는 점을 확인해야겠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정당을 함께 하고자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연석회의가 뭔가를 흥정하기 위한 교섭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타협과 절충을 통해서 반드시 합의를 해야할 의무는 없다. 맞으면 함께 가는 것이고, 안 맞으면 함께할 수 있는 선에서 연대하면 되는 것이다.

    남종석 동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요점으로 돌아가 보자. 그가 주장하는 바를 찾아보면 ‘통합이 민중운동 전체의 요구였고, 진보진영이 성장하기 위한 필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과 통합을 추구했다면 그것은 진보신당과 그들이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돼지꼬리로 돼지몸통 흔드는 격

    그런데 난 이게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첫째, 민중운동 전체의 요구라기보다는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데 실패한 것이 이미 입증된 민주노총의 일부 상층간부들의 요구가 주된 추동력이고,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 진정한 추동력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공동선대본을 꾸미면 되는데 굳이 정당통합이라는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

    선거는 전술상의 문제이고 정당의 창당은 전략적인 문제인데 이건 거꾸로 되어도 한참 거꾸로 되어서 돼지꼬리가 돼지를 흔드는 격이다.

    둘째, 진보진영의 성장보다는 불필요한 내부 갈등으로 오히려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릴 소지가 다분하다. 남종석 동지가 이야기했듯이 저들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도대체 공통점과 차이점의 기준을 어디에 둘지도 불분명해서 왜 국민참여당은 통합 대상에 끼워 주지 않았는지? 혹은 이번에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은 사회당은 배제하고 갈 것인지에 대해 혼란스럽기만 하다.

    자, 이렇게 반론을 펼치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달리 말하면 나도 그만한 판단 근거는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근시안적’이고 ‘비이성적’이며 ‘근원적인 문제의식 부족’ 혹은 ‘신경증적인 반응과 유아적인 절망감’ 등등이 전부는 아니고 말이다.

    북한에 관한 이야기 혹은 자주파에 관한 이야기는 길게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참 한가로운 소리하고 있구나 하는 소감과 함께 ‘이런 편견은 공포와 불안에서 비롯된 일종의 원한적 감정으로, 이성이 아니라 수동적 정념의 포로’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 치유도, 이성적 설득도 아직 안됐다

    그렇다. 아직 자주파로부터 받은 상처가 치유가 안 되었다. 그런데 왜 명분상으로도 아직 설득이 안 되었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가 안 되었는데 통합하자고 억지로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당이 쪼개질 것이 분명히 예견되는데도 말이다.

    조승수 대표나 노회찬 위원장에 대한 개인적인 비난에 대해서는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나도 그 분들이 하고 있는 일이 충정에서 우러난 상황 판단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오로지 또는 대부분 개인적인 탐욕이나 정치적 지반을 확대하기 위해서 추진했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

    그러나 한편 그분들이 지고지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며, 현실의 정치지형에서 세력관계에 따라 처신을 결정할 줄 아는 것이 정치지도자가 갖추어야할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점에 대하여 더 언급하는 것은 피차 소모적인 일이므로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남종석 동지가 구사하는 용어가 참 그렇다. ‘근시안적’이고 ‘비이성적’이며 ‘근원적인 문제의식 부족’ 혹은 ‘신경증적인 반응과 유아적인 절망감’ 등등… 상대방에 대해서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결국 나의 요점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이러하니까 설득하는데 실패했다는 거다.

    다시 한 번 부탁한다. 진보신당의 창당을 없었던 일로 되돌려서 민주노동당과 합당해야 할 이유를 입증해 보시라.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감동적으로 설득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지역의 투쟁현장에서 항상 부대끼며 잘 연대해오던 사람에게 되풀이해서 ‘당신과 하나의 당을 같이 못하겠소’라고 자꾸 선언해야 하는 이 상황이 곤혼스러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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