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현실을 추수하자는 얘기 아닌가?
        2011년 06월 04일 09: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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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욱한 글에 답을 해주셔서 감사하다. 억지로 자리에 불러낸 것 같아 몸둘 바를 모르겠다. 물론 불과 한 차례 주고받았을 뿐인데도 이야기가 헛도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그래서 좀 더 쟁점을 모아보고자 한다.

    ‘창조적 오독’은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실수인가

    남종석 부위원장은 지난 글에 대해 ‘여러 문제 중 새로운 진보정당에 있어 북한 문제가 특히 중요하다’고 정리한 후, 그런 입장이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라는 정당 운동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북한 문제에 대한 입장 여부가 노동자 정치 세력화에 도움이 된다’는 창조적 입장에 대하여 평했다. 나도 놀랐다. 내 주장이 이렇게 읽힐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놀랐고, 다분히 느껴지는 의도성에 대해 다음으로 놀랐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남종석 부위원장이 여러 가지 중 한 가지로 ‘북한 문제’를 언급했을 때 우리에게 북한 문제는 그렇게 여러가지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1)라고 반박한 것이고, 이는 북핵의 자위적 사용, 가다피의 정세적 규정 등 몇 가지 구체적인 사고 실험을 통해서 여러가지 예외로 확장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제시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합의문은 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과정이 아니냐고 지적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어렵게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한 것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목적이었는데, 과연 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지금의 흐름이 이에 부합되는 것이냐고 물은 것(2)이다. 즉, 내 입장에서는 통합은 ‘무엇’을 하기 위한 수단인데, 지금의 당위론적 통합론은 과거 진보정당 운동의 맥락에서 비춰봤을 때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2가지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2)에 대한 전제로 (1)을 놓으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북한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내가 이런 말을 했다면, 정말로 ‘창조적’ 정세 해석을 한 셈인데 나도 놀라울 수 밖에 없다. 이는 단순 오독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웬만하면 글을 맥락 속에 놓아 주길 당부 드린다. 세상은 테제 형식이 아니라 산문체로 쓰여지니 말이다.

    질문에 답한다

    북한 문제에 대해 남종석 부위원장은 말한다. “나는 그 합의 수준이 남북한 상호 존중과 평화공존, 한반도 비핵화와 무기감축 및 체제경쟁 지양, 남북한 교류 확대를 통한 상호 신뢰 형성"이면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물은 것이다. ‘상호 존중’의 구체적인 내용이 뭐냐고 말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의미하는 것이 뭐냐고 말이다.

    나는 북한 권력 체계의 세습 문제를 ‘상호 존중’의 범위에 넣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남종석 부위원장이 생각하는 상호 존중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가 되겠지만, 나는 ‘인위적인 체제 전환을 강요하지 않기’로 이해한다. 그래서 코소보 전쟁 당시 밀로세비치에 대한 국제적 규탄은 옳지만 이를 군사적 개입을 통해 해결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도 그렇다. 북한의 주장대로 주한미군의 문제로 인해, 남북한 국사력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핀다. 내 입장에서는 그 방식이 꼭 무장 강화를 통한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북한의 선제적 핵무기 개발이 남한의 방위적 핵무기 개발을 촉발할 수 있다고 믿기에, 핵무기 폐기를 주장하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주장이라고 믿는다.

    남종석 부위원장에게는 금박으로 쓰여진 아름다운 구절이면 이해가 되겠지만, 현실은 그것보다는 구체적이다. 그래서 그 합의 수준의 구체적인 형태가 ‘예측 가능’해야 유의미한 합의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권력 세습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 표명인지, 아니면 그에 대한 반대하는 국민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인지는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사회운동적 정당에 대해서 보자. 남종석 부위원장은 내가 잘못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남종석 부위원장이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운동과 정당은 운동체로서의 논리가 다르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사회운동 경향의 백화점식 다원화가 사회운동적 정당이라고 말할 수 없다(남종섭 부위원장은 전선적 형식으로 활동하는 정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차라리 가치의 다원화가 아니라, 조직 대상의 주체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당을 매개로 하는 ‘대리자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서, 민중 스스로가 각각의 문제에 있어 자기 몫을 조직하고 이를 정당 구조를 통해 입법화해내는 이 과정이 ‘사회운동적 정당’의 비전으로 적합하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적 정당이라고 했을 때, 정당은 단순히 사회운동로부터 수혈받거나 혹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마땅히 상호 대립하는 가치의 어물쩡한 결합으로는 더더욱 안된다. 정당은 사회적 의제를 발굴하고 이를 가공하여 정책화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피드백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은 기본적으로 갈등을 전제로 한다.

    정당은 단순히 사회단체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대리자가 아니다. 그러면 정당은 관료화되고, 그런 다양한 이익들이 조정은 ‘힘’에 의해서 관철된다. 당내 권력구조의 비합리성이 제도적 합리성을 압도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중의 뜻과 의사가 중요하다면, 그들에게 더 많은 마이크를 주어야지, 자신의 활동을 위한 알리바이용으로만 동원해서야 되겠는가.

    그러니까 통합 정당은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

    이제 마지막 질문에 답하겠다. 남종섭 부위원장은 “진보신당이 독자적으로 남는 것이 남한 진보 진영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이유를 제시해보라."고 주문했다. 여기서 소위 통합파들이 당내 독자파로 분류되는 집단에 대한 편견이 확인된다.

    나는 앞선 글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신당 연대회의’의 가치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진보정당의 재구성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다.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2012년 중대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지금 한계가 있는 통합보다 진보신당이 독자적으로 남는 것이 남한 진보진영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인가."

    많은 통합파들이 자신들은 매우 구체적인 맥락에 서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에 반대하는 사람은 골방 서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나 역시 2011년이라는 구체적인 정세에 살고 있으며, 2012년에 대한 전망을 고민하고 있다. 통합파들이 말하는 골방 좌파는, 역으로 현실에서 멀어진 추상적 통합파에 비해 결코 많진 않을 것이다.

    나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하겠다. “지금과 같이 세력 중심의 통합이라면, 2012년 총선에는 의미가 있겠지만, 향후 지속적인 남한 진보 진영에 해악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무익한 것이 낫다.”라고 말이다. 과도한가. 그렇지 않다.

    지금과 같이 세력 중심의 판짜기는 궁극적으로 2012년 연합정부 구성으로 미끄러질 개연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그 이전에 현행 대통령 권력 구조에 대한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내가 몇 번 본 분들이 국가 고위직에 ‘연합정부’라는 이름으로 앉아 있다가 1~2년 만에 정세에 떠밀려 나올 것이라 본다.

    남종석 부위원장은 발끈하겠지만, 역으로 나는 이런 구상도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제도 안을 넘나들면서 당의 자산을 확장시킬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내가 우려를 하는 것은, 그런 자산이 ‘개인’이 아니라 ‘당’의 자산으로 머물 수 있는 튼튼한 그릇의 문제다. 정말, 현재 추진되는 통합 진보정당이 깨진 조각 이어 붙인 누더기 그릇이 아니라 방금 화덕에서 나온 ‘새로운 그릇’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

    만약 남종석 부위원장이 단순히 현실 정치세력의 짝짓기 놀이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 어떤 ‘새로움’을 줄 수 있는지를 말해야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논쟁이 아니다. 답을 안하면 섭섭하겠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통합파 일반의 태도라고 생각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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