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합의문, 3-2항을 말한다"
        2011년 06월 06일 07: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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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치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연석회의’의 (사회당이 서명하지 않은) 최종합의문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진보신당 내의 ‘독자파’는 연석회의 최종합의문 3-2항을 특히 문제 삼는다. 3-2항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진보정치대통합으로 설립될 새로운 진보정당’은 남과 북 어느 정부의 정책이든 한반도 평화와 자주적 평화통일에 기여하는 정책 및 민주주의와 인권, 생태 등 각 분야의 진보적 가치를 신장시키는 정책은 지지 지원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자주적 평화통일에 반하는 정책은 비판하는 정당이다. 새로운 진보정당은 6.15 정신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의 권력 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 

    진보 양당, 50%씩 양보

    그런데 6.15공동선언 내용에는 막상 “통일문제를 …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표현은 있어도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표현은 없다. 오히려 1992년 2월 19일 평양에서 개최된 제 6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채택한 남북 기본합의서 제 1장 1조에 “상대방체제의 인정· 존중”이라는 내용이, 2조에 “내부문제 불간섭”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합의문에 들어있는 “6.15정신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6.15공동선언에 그런 표현이 직접 들어있지는 않지만, 선언의 정신이 상대방 체제의 상호 인정에 기초해 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최종합의문 3항에서는 "북한 당국을 한반도 평화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상대방으로 인정하되, 남과 북 정부 모두에 대해 자주적 태도를 견지하는 정당임을 분명히 하며’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합의대로 북한을 한반도 평화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상대방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 점은 북이 남을 한반도 평화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상대방으로 삼기 위해서는 북한 역시 남한체제를 인정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실제로 상대방 체제의 상호인정은 상대방을 대화와 화해의 동반자로 삼기 위한 불가피한 전제에 속한다.

    이와는 달리, 남과 북이 상대방 체제의 상호인정에 합의하지 않는 한 남한의 입장에서는 북한은 ‘흡수통일’의 대상이 되고,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한은 ‘적화통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또 그러한 한 남북화해가 아니라 남북대결이 불가피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자파 문제제기는 정당하지만…

    이 점에서 독자파가 가장 불만을 가질만한 부분은 “"북의 권력 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표현해야 할 부분이 ”(그런)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고 표현되어 있는 부분일 것이다. 네가 보기엔, 독자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문제제기는 정당하다. 

    그런데 이 표현은 사실은 그런 표현을 넣는 것이 북 체제의 인정과 상치되므로 넣어서는 안 된다는 민주노동당의 주장과, 북의 권력승계 방식에 비판적 입장을 밝히는 것이 북 체제의 인정과는 무관하므로 그런 표현을 넣어야 한다는 진보신당 간의 최종적인 타협의 산물이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입장에서는 진보대통합을 위해 그 문제에 대해 엄청나게 양보한 반면, 진보신당 지도부 역시 통합을 위해 자신의 애초의 입장에서 한발 양보한 것이다. 다시 말해, 진보대통합이라는 대의를 위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이 문제에서 서로 50%, 50% 씩 양보한 것이다. 

    이런 상호 양보가 잘못된 것일까? 내가 보기엔, 마지막까지 가장 첨예하게 부딪친 이 문제에 대해 상호 양보한 것은, 물론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봉합시킨 것이긴 하지만, 자신의 정파적 입장을 타 정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진보세력 전체의 이익에 합치시키기 위해 내린 참으로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한 상호 양보가 없었다면, 연석회의 행한 다른 모든 합의들은 의미를 잃었을 것이고, 통합진보정당의 건설은 물건너 간 것이 되고, 양 당은 물론 진보세력 전체가 입을 피해는 참으로 큰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 결과는 통합을 위해 논의를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더 못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모순, 파괴력이 아니라 생산력으로

    그런데 앞으로 예를 들어 통합진보정당이 건설된 이후 3대세습 문제가 다시 본격적으로 제기될 경우 통합진보정당 내에서 이 문제는 어떻게 처리될까? 

    아마도 당내에서는 두 입장이 제기될 것이다. 구민주노동당계는 그런 비판적 입장을 존중은 하지만,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비판적 입장의 표명을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것이고, 구진보신당계는 그런 비판적 견해를 존종하기로 약속했고,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진보적 가치를 신장시키는 정책을 지원 지지하기로 합의한 데다가 그 문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의 표명이 북 체제를 인정하는 것과는 기본적으로 무관하므로 비판적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필자.

    이 과정에서 통합진보신당의 대외적인 최종적 입장은 당 주요기구에서의 논의 결과 및 당원의 여론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어떤 수위의 입장이 공식적으로 표명되든, 문제는 무엇이 ‘남북한의 화해-협력 관계의 증진’과 ‘남북 모두에서의 일반민주주의의 신장’이라는 상호 모순적인 측면을 지닌 두 시대적 과제를 가장 잘 조화시키는 입장인가일 것이다.

    더욱 중요하게는 당내 민주주의의 확보를 통해 충분한 의견 교환을 행하는 일과, 상대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일 것이다. 이 점이 확보된다면, 그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가 무엇이 두렵겠는가?

    진정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열린 자세로 서로 의견을 나누고 남의 주장에 귀기울이는 참다운 당내 민주주의를 어떻게 확고하게 뿌리내리게 할 것인가이다. 고민의 지점을 이전시키자! 의견의 차이를 두렵게 여기지 말자! 의견의 차이를 분열과 대립의 씨앗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지적-정치적 발전의 원동력으로 만들자! 모순은 그 모순이 항상적으로 생겼다가 해결되는 원환구조가 창출되면 파괴력이 아니라 생산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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