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우리 당원에게 자주파를 설명하나?
        2011년 06월 02일 03: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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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종석 부위원장의 글에서 나는,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 왜 진보신당 당원인 내가 우리 당의 직선 간부에게 자주파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하는가. 이질적이지만, 앞선 글에서 내가 비판하고자 했던 통합파의 ‘침묵’을 설명할 수 있는 한 축이라 생각해 간략한 반론을 펼치겠다.

    전반적으로 합의문의 북한 권력 세습 문제에 대한 내용을 둘러싼 논란에, 통합파의 입장에서 이를 옹호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여기서의 핵심은 진보신당 당원들, 특히 독자파 혹은 일부 당원들이 느끼는 자주파에 대한 경계심을 “편견"으로 칭하면서 이런 증상이 “외상적 증후군에 가까우리만치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진보신당 당원들의 자주파에 대한 비판은 “일종의 원한적 감정으로, 이성이 아니라 수동적 정념의 포로”로서의 태도에 불과한 것이 된다. 나아가 그들이 바라는 것은 미국이라는 패권이 배타적으로 작동하는 동북아 평화 질서와 관련된 것으로, 자주파의 대북관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설득을 해달라고 했나? 설득을 원하면 내용에 대한 평가를 해야지 진단을 해서는 안된다. 외상적 증후군이라고, 원한적 감정이라고, 수동적 정념의 포로라고 칭한 상대에게 설득을 원한다는 태도가 합당한가. 논쟁을 원한다면, 논란의 대상으로 삼고 싶은 내용을 말해야 한다.

    통합은 수단이었나 목적이었나

    남종석 부위원장에게 정당에 대해 묻고 싶다. 나는 흔해 빠진 정치학 개론 수준의 최근 논란에서 빠져나와, 우리는 왜 남종섭 부위원장이 말한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사회운동의 강화”를 위한 방법으로 정당운동을 택했는가라는 질문으로 구체화하고자 한다.

    적어도 국민승리21과 민주노동당 창당발기인으로 시작한 나의 정당 운동이 ‘권력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그것을 수단으로 하고 있다. 수권 정당이라는 주장은 그런 정당 운동의 초기에 가졌던 ‘노동자 정치 세력화’와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정치 조직’의 한 수단으로 채택된 슬로건이다.

    현실은 개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이 현실에서 추출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말한, 혹은 우리의 밖에서 움직이는 무엇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그것을 어떻게 시작했는지의 좌표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의 연장선에서 보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진보신당 창당의 목적은 ‘진보정당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목적으로 바뀐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통합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유의미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논쟁은 지금과 같이 합의된 통합의 내용이 새로운 진보정당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방식인지를 두고 벌어져야 한다.

    물론 지난 대의원대회의 ‘진보정당 통합 추진’이라는 결정 사항을 존중하고,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목적의 유력한 수단으로서 통합이 유의미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통합 자체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목적일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자.

    그런 전제에서, 현재까지 나온 합의문이 지난 대의원대회의 통합 방침에 충족하지 못한 것은 남종석 부위원장도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열거된 방침 중 유독 북한 권력세습과 북핵 문제에 대한 내용만 미흡할 뿐 다른 방침은 수용되었다면 그것은 협상과정에서의 융통성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으로 나갈 뿐이다.

    솔직히 이 점에서 실망스러운데, 지난 당 대회에서의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여러 방침 내용 중 어떤 내용이 결정적이었는지 알만한 분이 이렇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열거된 방침은 2차원의 종이에서는 등가로 나열된 문장이지만, 3차원의 살아있는 결정 과정에서는 등고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울퉁불퉁한 것이었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입장은 10가지 중 하나가 아니라, 10가지 중 특히 중요한 것의 위상을 지닌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왜 북한에 대한 관점이 쟁점인가

    따라서 남종석 부위원장이 ‘북한에 대한 쟁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반박한 것과 동시에 간과되고 있는 것이 발생한다. 그것은, 남한의 진보정당에게 북한이라는 대상은, 그리고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구조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관계로 풀어보면, 북한문제를 매개로 하는 진보정당과 남한 정권간의 관계(1), 진보정당과 남한 민중과의 관계(2), 진보정당과 북한 정권의 관계(3), 진보정당과 북한 민중과의 관계(4), 그리고 진보정당과 동북아 체제 혹은 세계 체제의 관계(5)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남종석 부위원장의 태도는 (5)의 입장에서 (3)의 관점을 옹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합의문의 내용은 (2)의 관점에 따른 것 뿐이다. 공백은 합의문이 실제로 지칭하는 관계와 남종섭 부위원장이 해명하는 관계 간 불일치에서 발생한다.

    내가 이해하는 정당의 정치적 입장은, 앞서의 5가지 관계에서 동일하고 일관된 입장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기초한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북한 정권에 대한 입장만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표방하는 가치가 내외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일치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해보자. 정부가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는 남한 내 미군의 전략 핵과 관련하여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아니 전략 핵이 없다면, 인접국가의 핵무장에 대응하는 자위권으로서 남한의 핵무장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중동 국가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민주화 투쟁을 보자. 카다피가 중동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 패권의 관계에서 존중받아야 하는 대상인가, 아니면 보편적인 인권과 상식적인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비판받아야 하는가. 이 문제는 이렇게 확장된다. 한계에 직면한 기업에 대해 ‘다수를 살린다는 조건’으로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어렵더라도 ‘모두가 함께 생존하는 방안’을 찾으라고 요구할 것인가.

    물론 내가 엄격한 최대주의적 주장을 전적으로 옹호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북한 체제에 대한 입장은 몇몇 조건에 의거한 예외로 두기엔 너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정당 조직의 예외가 다른 가치들에 대한 수많은 예외로 확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에 옳지만 민감하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던 입장이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만 해도 그렇다. 진보정당으로서 뉴타운 개발에 반대를 함에도 그것을 원하는 주민들의 요구와 절충하지 않았던가. 그러다 보니, 사실상 뉴타운 찬성 세력으로, 그나마 좋게 본다면 뉴타운 방조 세력으로 개발 연대의 언저리에 머물지 않았던가.

    내가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뉴타운 반대’라는 원칙만 이야기하자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원칙과 현실의 절충이 아니라, 원칙을 현실화할 수 있는 고민과 실천을 말하는 것이다(내가 도로 사회당이라는 주장에 대해 전반적으로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지금 말하는 이 부분과 관련해서 만은 사회당 식의 정치 운동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주파에 대한 이해 정도만 우리 당원들에게 보여 달라

    솔직히 이번 합의안은 실망스럽다. 따라서 이는 절차에 따라서 당론을 모아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통합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상, 우리는 당내에 통합이 아닌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과제를 이행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도 용인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논쟁을 한다면, 이미 잉크가 말라버린 합의안의 문구가 아니라, ‘통합’까지 포함한 실효성있는 대안에 대해 생각과 전략을 두고 논의되어야 한다.

    나는 지난 3년간의 진보신당 운동이 실망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낙관한다는 점에서 독자파가 맞다. 하지만, 진보신당이 연대회의로 출범했고, 그것은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정당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위해서 ‘진보신당’이라는 정당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수단이 목적을 끌고가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탁한다. 최소한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소위 자주파의 진실을 이해하는 이해력만큼 만 당내 당원들에게 보여주면 안되는 건가. 정말 우리가 서로서로에게 과거의 정치적 반대 세력만큼도 신뢰할 수 없는 사이가 된 건가. 아니라고 믿는다. 논쟁은 이런 믿음을 딛고 시작되어야 한다. 답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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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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