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파 동지들, 나를 설득해달라"
        2011년 06월 02일 11: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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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산의 난산

    연석회의가 합의에 이르렀다. 긴박하게 흐른 시간의 양만큼 난산의 난산을 거듭한 끝에 결국 합의에 도달했다. 가장 큰 쟁점은 역시나 북한체제에 대한 태도였다.

    북한 문제에 대한 결정 사안은, 남북한 평화공존을 위한 질서를 구축하되, 북한의 3대 세습체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있음을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패권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분파주의도 함께 극복한다는 것을 명시하되, 패권주의가 작동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다. 둘 모두 진보신당 3.27 당대회의 논의에서 일보 후퇴한 협상이다.

    그러나 나는 당대회 합의에서 일정 부분 후퇴하여 타협점을 찾고자 한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협상이란 상호 타협할 여지를 두되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협상 대표들의 자율성도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왜 통합을 추진했는가를 되짚어 봄으로써 이 협상의 의미를 성찰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2. 우리는 왜 통합을 추진했나?

    협상이 끝난 후 진보신당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는 난리다. 조승수 대표와 노회찬 새진추 위원장 사퇴 요구에서부터 탈당하겠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당원들의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부대표 3인도 연석회의의 합의에 대해 반대 성명을 발표한 상황이다.

    분노의 당사자들은 북한체제에 대한 반대, 비판은 고사하고 “반대하는 입장도 있음을 존중한다.”는 애매한 문구에 특히 분노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의 그 민주노동당 자주파들의 요구에 지도부가 노골적으로 굴복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이와 같은 굴복은 대표들 개인의 정치적 출세를 위한 사전 작업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이들의 불만은 얼마나 이성적이고 성찰적인가? 민노당과 민중운동 진영의 여러 단체들이 결합된 협상을 진행할 때, 진보신당이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자주파들이 수용하는 조건으로 통합을 추진하려는 발상 자체가 틀렸었다. 3.27 당대회 결정이 그대로 수용되는 조건으로 협상을 하려는 태도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주파들에게 일종의 신앙고백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너희들의 생각이 잘못 되었으니 일단 이것부터 인정하시요.’라는 전제를 단 협상이었다는 말이다. 이는 자주파들의 마지노선이라 생각하는 ‘그들의 양심’을 거부하고 그들의 가치관을 배제할 경우에만 우리와 통합할 수 있다는 논리다. 나는 이런 통합논의는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통합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변경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사태는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자주파들의 이념이나 노선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많은 동지들이 그들의 이념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통합을 추진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민중운동 전체의 요구였고, 진보진영이 성장하기 위한 필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과 통합을 추구했다면 그것은 진보신당과 그들이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한계의 극복, 신자유주의적 금융 세계화 반대,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 구축, 생태/여성/복지에서의 급진적 구조개혁, 사회운동의 독자적 성장 등 이런 한국 사회의 구조적 이행 요구에 있어서 민주노동당과 공통점이 더 많고, 이를 토대로 대중운동을 공동으로 조직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보다 급진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이 연석회의를 통한 통합을 추진한 이유이다.

    나는 이번 연석회의 합의 과정에 참여한 당 대표들이, 그리고 이들을 외부에서 압박한 대중운동 지도부들이 단지 개인적인 탐욕이나 정치적 지반을 확대하기 위해서 그 과정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요구에 보다 충실하기 위해 합의 과정에 참여했다고 확신한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대해 반대하는 대부분의 당원들은, 무엇을 위해 통합에 동참했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부족한 채, 오로지 북한 문제나 패권주의 문제에 관하여 이번 합의가 당대회 결정이 그대로 관철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번 협상은 무효라고 주장할 뿐이다. 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문제의식인가?

    결국 이번 협상안을 보고 절망을 느낀 이들은, 왜 통합 협상이 진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의식은 부족한 채, 자신들의 요구에 자주파가 굴복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를 기준으로 협상 결과를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3. 자주파는 북한체제를 숭배하는가?

    북한체제를 비판한다는 문구가 명시적으로 들어가지 않는 합의문, 혹은 3대 세습에 대한 반대가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이면 그들은 모두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인가?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는 집단은 북한추종세력이라고 단정 짓는 진보신당의 당원들을 보면 정말 한숨이 나온다. 물론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수령의 유훈을 따르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주파들은 그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북한체제를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시작된다고 강력하게 믿고 있다.

    특히 미국에 의해 북한이 봉쇄됨으로써 나타나는 북한의 현실적 곤란이 지속되고, 남한과 미군의 압도적 우위에 기초한 남북한 군비경쟁이 언제나 전쟁 위협으로 나타날 수 있는 상태에서, 북한체제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있다.

    나는 이런 정세인식이 결코 허황된 것만은 아님을 인정한다. 현실적으로 한반도는 중동 다음으로 국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더욱이 미국 헤게모니의 붕괴 과정에서 비롯되는 자본주의의 체제 위기가 국지전으로 전환될 때 한반도는 전쟁 발생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 상호존중에 기초한 교류는 평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자주파들이 반북에 대해 민감해 하는 이유는 바로 한반도 전체의 평화와도 관련된다는 말이다.

    자주파 동지들의 주장을 우리가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더라도 이들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정세인식에서 올바른 주장은 우리도 마땅히 수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진보신당 평당원들이 갖고 있는 자주파에 대한 편견은, 거의 외상적 증후군에 가까우리만치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대표적인 게 앞에서 밝혔듯이 자주파가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 거부하는 것을 그들이 3대 세습을 지지하는 것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진보신당의 평당원들은, 과거 민주노동당 당내 경쟁에서 밀린 이후, 혹은 실제 자주파와 같이 활동한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이야기만 듣고, 온갖 신화에 휩싸여 그들에 대한 편견을 스스로 확대재생산 하고 있다. 이런 편견은 공포와 불안에서 비롯된 일종의 원한적 감정으로, 이성이 아니라 수동적 정념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내가 안타까운 것은 이런 평당원들의 혼란을 부추기는 당내 독자파들의 활동이다. 당내의 주도적인 이론가나 의견그룹들이, 평당원들의 불안과 공포, 수동적 정념을 선동하고 부추김으로써 세력을 얻으려는 것은, 그들이 과연 정말 좌파의 책임 있는 정치 세력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 이론가나 의견그룹이야 말로 수동적 정념의 포로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4. 동지들에게

    나는 협상이 ‘진보의 대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분노하는 당원 동지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가장 먼저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 과연 무엇인가를 먼저 되짚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

    왜 우리는 진보정당운동을 하는가? 나는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사회운동의 강화라고 간단하게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운동정당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우리의 선명한 정체성인가 사회운동들의 연대인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맞서기 위한 우리의 투쟁에 무엇이 더 좋은 방향인가?

    이런 전략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 북한 3대 세습 비판 문구가 들어갔는가 들어가지 않았는가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번 합의에 대해 분노하는 당원동지들이, 위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통합보다 독자파로의 길이 앞의 과제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설득한다면 나는 기꺼이 동지들의 견해를 따를 용의가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주파에 대한 신경증적인 반응과 유아적인 절망감으로 독자파의 대의를 정당화한다면 그것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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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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