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과 한국, 자본도 노조도 너무 다르다"
        2011년 06월 01일 10: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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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중순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는 23일간 점거농성을 풀고 교섭에 임했지만, 돌아온 것은 대대적인 정직, 감봉은 물론, 핵심 활동가에 대한 해고였다. 한국의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분명하게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사용자는 대법원 재상고와 헌법소원은 물론, 노동자의 생존권 자체를 위협하는 살인적인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그런데 지구 반대쪽에 있는 독일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법파견은 거의 존재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합법적으로 얼마든지 더 활용할 수 있는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법제도적으로 간접고용을 사용하기가 더 쉬운 독일은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고, 한국의 경우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는 계속 버티고 있고 정부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 이제 독일의 파견노동 실태와 이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이며, 이러한 파견노동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파견법 개정 이후 급속도로 확산된 파견노동

    독일은 2004년 1월 1일에 파견법이 개악되었다. 이러한 탈규제화 조치로 인해 모든 부문(건설업 제외)에서 파견노동이 허용되었으며, 기간제한 또한 사라졌다. 또한 파견기간과 고용기간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던 ‘동시화 조항’조차 폐지되었다.

    한편 파견기간 동안 비교 가능한 정규직의 주요 노동조건(임금 포함)을 동등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동등대우원칙)가 보장되었지만, 동등대우원칙은 두 가지 예외 조건을 두고 있다. 실업자의 경우 파견취업 이후 6개월간 동일임금의 적용이 유예될 수 있으며, 단체협약으로 예외 규정을 둘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예외조항으로 인해 독일에서 파견노동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파견노동의 증가추세는 2004년 이후 매년 10% 이상 증가율을 보였고, 경제위기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2008년 6월 현재 전체 피고용인(사회보험가입자 기준)의 약 3%에 달하는 79만4천명에 이르게 되었다.

    한편 동등대우원칙에도 불구하고 파견노동자의 임금은 평균적으로 정규직 보다 약 29%가 낮으며, 특정 업종이나 직무의 경우 50%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독일 금속노조 집회에 참석한 젊은 조합원들. 

    점차 확산되는 파견법의 재개정 요구

    이러한 문제로 인해 독일노총을 비롯한 산별노조는 파견노동과 관련하여 재규제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 내용은 먼저 파견노동자가 원사업주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과 동시에, 임금과 주요 노동조건에 대한 동등대우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외는 매우 엄격한 규정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독일노총은 파견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조건에 대한 단체협약이 파견이 이루지지 않는 기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편 파견노동의 활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동등하게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현행 사업장평의회의 협의 및 공동결정권을 보다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원사업주의 사업장평의회는 해당 사업장에 적용되는 단체협약을 파견노동자가 적용받을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받아야 하며, 파견노동의 선발기준 및 허용 상한선을 노사가 공동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파견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파견기간에 한해서 파견업체에 고용되는 동시화규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편 독일노총과 진보적 연구자들은 독일의 파견법이 지닌 가장 큰 문제로 파견노동자가 동일노동-동일임금에 대한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기가 힘들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주변국(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과 마찬가지로 동등대우의 원칙이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프랑스와 같이 파견노동의 경우 동일노동-동일임금원칙 외에, 파견노동자의 안정적 소득보전을 위해 사용자가 임금총액의 10%에 해당하는 ‘비정규수당’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추가적 보상원칙은 오스트리아 또한 적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파견노동 문제의 심각성은 대부분의 유럽국가와 달리 아직도 법정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저임금 부문의 확산 창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일정 수준의 법정최저임금을 지불할 수 없는 파견업체의 경우 허가 자체를 취소하는 조치가 긴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 독일의 파견법은 지난 5년간 숨어있던 문제들이 폭발하면서 재개정논의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비정규노동 규제를 위한 독일 금속노조의 협약정책

    이러한 법개정 논의와 함께 독일노동조합은 2004년 파견법의 탈규제화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격차 확대 및 고용불안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파견노동을 비롯한 비정규직 규제를 위한 단체협약과 기업협정의 체결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독일노총은 약 1500개 파견업체를 아우르는 파견업체 사용자연합들(iGZ/BZA)과 파견부문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한편 금속노조(IG Metall)를 비롯한 산별노조가 파견노동을 비롯한 비정규노동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실천하고 있는 대응 방향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사업장 단위에서 실질적으로 적용하게 만드는 협약정책에 있다.

    이러한 협약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해당사업장에 파견노동자가 투입되는 경우 이들의 임금 및 노동조건이 정규직의 수준에 최대한 맞추도록 만드는 ‘개선협정(Besserungsvereinbarung)’이다. 금속노조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개선협정이 적용되는 사업장이 전체 금속 및 전자산업의 전체사업장 중 약 27%에 이른다.

    다른 한편 금속노조는 파견노동을 비롯한 비정규고용을 규제하기 위해서 차별금지, 업체선정 기준, 사유 및 기간제한, 규모제한, 정규직화방안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담고 있는 ‘특별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폭스바겐의 경우 사실상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차이가 없다. 생산부문에서 근무하는 파견노동자는 최소 시간당 14.52 유로의 임금을 받는다. 이 액수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주 40시간 기준으로 2323.2 유로이고, 이는 폭스바겐 정규직 월급등급 4~5사이에 위치한다.

    또한 폭스바겐은 파견노동자의 규모와 기간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파견노동자의 비율은 평균 2년간에 걸쳐 각 사업장의 총원의 5% 미만으로 제한하고 기간 또한 최대 36개월로 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단체협약을 통해 ‘상시적 인력이 필요할 시’ 해당 파견노동자의 개인적 문제가 없는 경우 우선하여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폭스바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임러벤츠의 2004년 특별협약은 비정규직의 허용선을 정규직 전체의 1.5%로 제한하는 동시에, 총수 또한 2500명으로 정하고 있다. 또한 파견업체는 금속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경우에만 노동자를 파견할 수 있다.

    그리고 파견노동자의 직접고용은 노사가 합의한 선발기준에 따라 이루어지며, 파견노동이 3년이 지난 경우 정규직전환에 대한 협의의무가 사용자에게 부여된다. 한편 오펠의 보쿰공장 또한 2004년 특별협정을 통해 파견노동자의 수를 정규직의 3% 이내로 제한하고 있으며, 파견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조건은 정규직의 피리미엄임금집단(Prämienlohngruppe)과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하였다.

    현실화되고 있는 파견노동자의 정규직화

    독일금속노조의 파견노동에 대한 대응정책은 대대적인 정규직화로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2월 24일 독일 볼프스부르크 알게마인 신문(WAZ)은 폭스바겐 노사대표가 올해 사업장 협정을 통해 파견노동자 22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하였다. 폭스바겐은 이미 지난해 10월 산하 볼프스부르크와 카셀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파견노동자 4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바 있다.

    이번 합의는 폭스바겐 노사가 2008년 말 발생한 세계금융위기로 인한 자동차산업의 충격이 진정되면서 시장정상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필요노동력을 정규직으로 충원해야 한다는 노사의 결단에 따른 것이다. 폭스바겐 노사는 2200명에 이르는 파견노동자의 정규직화 외에, 약 1250명에 이르는 견습생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향후 5년 동안 약 5000명에서 6000명에 이르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이에 필요한 인력은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하였다.

    한편 폭스바겐의 자회사인 아우디도 이미 2월에 약 200명의 파견노동자를 정규직화했으며, 메르체데스 벤츠는 약 4000명을 올해 국내에서 신규채용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한편 동독지역인 아이제나흐지역에 있는 6개 업체(Bosch, BMW, Opel, Multicar, Ejot, ZF)는 파견노동자의 1년 내 정규직화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하고 그전에 우선적으로 이들에게 정규직의 임금을 적용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이와 같이 파견노동자의 정규직화는 2008년 말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적 경제위기가 진정되면서 2010년 후반부터 제조업, 특히 자동차업체를 중심으로 노사간의 중요한 교섭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많은 업체들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파견노동자의 정규직화는 단지 사용자의 시혜가 아니라, 노동자의 고용연대전략이라는 노동조합의 목적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다른 우리의 현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차별 금지와 정규직 전환을 솔선수범하고 있는 독일 완성차업의 사용자와 달리, 현대차 자본은 파기환송심 결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온갖 작태를 지금도 부리고 있다. 2월 10일 서울고법 판결 이후 바로 대법원에 대한 재상고는 물론, 현대차 아산공장건에서 이미 기각된 헌법소원을 다시 추진하는 몰상식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차 사내하청의 불법파견문제는 현대차 사용자의 무책임한 태도와 무자비한 해고로 인해 해결의 실마리를 전혀 찾고 있지 못하다.

    금속노조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작년 12월 중순 23일간의 점거농성을 풀면서까지 현대차의 성실교섭과 정규직화방안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비정규직 조합원 약 60명의 해고, 700명의 징계와 함께, 무자비한 조합탈퇴 공작을 지금도 벌리고 있다. 이와 같이 현대차 사용자는 대화와 교섭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금속노조를 무시하고 탄압과 강요로 산업현장의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현대차는 산업기반의 부실과 고용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2010년 한국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주체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국내투자방안을 제시하고 ‘질 좋은 일자리’를 능동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특히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원청사용자로서 고용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야 할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이 가야 할 길

    또한 노동운동, 특히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운동은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 작년 말 현대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농성투쟁 때 잠시 유행했던 말 ‘아름다운 연대’는 단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차별철폐와 정규직화는 관심 밖이고 올해 더 많은 연말성과급을 따내고 조합원 자녀에게 우선채용권을 부여하는 것이 현장의 정서라고 인정한다면, 민주노조운동은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진 사회적 정당성을 잃고 ‘귀족노조’라는 사회적 지탄을 모면하기 힘들 것이 뻔하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 한다.

    기득권이라는 명분으로 반사회적인 활동을 공공연히 저지르는 노조운동은 존재가치가 없다. 노조운동의 위기시대, 진정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조합원의 실리주의가 아니라, 자판기노조로 전락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는 바로 금속노조운동의 정체성 혼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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