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 노동자 조직, 환경운동과 연대 "
        2011년 06월 01일 07: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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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작업장의 레이첼 카슨’ 토니 마조찌와 정의로운 전환

    핵발전소의 일자리는 대단히 위험한 일자리다. 일상적인 방사능 노출을 감수해야 하며, 또한 후쿠시마와 같은 불행한 사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이들은 고액의 연봉과 국가 경제를 이끌어간다는 자부심으로 그 위험을 기꺼히 감수하겠지만(아마도 한국수력원자력의 고액 연봉자들일게다), 점차 그 상대적인 수는 줄고 위험은 노동시장의 하층을 점하는 이들(앞서 언급한 쉰 초반의 배관공과 같은 이들이다)에게 노골적으로 강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인근의 주민들에게는 몇 푼의 지원금으로 위험 감수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아마도 핵발전소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벌어질 것이다. 포항과 광양의 대규모 제철소, 여수와 울산의 화학단지 등에서 위험의 불평등한 배분은 지속되고 있다. 물론 위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들은 쾌적한 사무실에 앉아 화면에 떠오르는 증권 시세를 관찰하는 자본가들이겠지만.

       
      

    우리는 계속 이런 위험한 일자리에 매달려 있어야만 하는가. 보다 안전하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일자리는 없는 것일까.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녹색일자리’ 운동이 그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주고 있다.

    1970년대 초반의 전세계적 차원에서 환경운동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후반에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 축소를 걱정한 미국의 노동운동이 환경운동과의 연대에 소극적인 태도로 변하자 ‘녹색일자리’ 운동이 제안되었다.

    환경도 보호하고 일자리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오염된 지역의 정화하고, 자연생태계를 보호하고,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 운영하는데 필요한 일자리를 만들어내자는 주장과 실천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1991년의 리우 환경 정상회의를 전후로 하여, 유럽과 호주 등에서 노동조합과 환경단체가 연대하여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2008년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국제노총과 UNEP(국제연합 환경계획), 그린피스 등이 다시 ‘녹색 뉴딜’ 등을 주장하면서 녹색일자리의 창출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환경도 살리고 일자리도 만들어 낸다는 ‘녹색일자리 창출’ 담론은 거의 모든 이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지만, ‘녹색일자리 전환’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녹색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누군가는 ‘승자’가 되겠지만 누군가는 ‘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누구도 꺼내기 싫어하는 담론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문제를 다룰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북미 노동조합에서 의해서 1980~90년대에 개발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전략을 주목할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의 탄생은 ’작업장의 레이첼 카슨‘이라고 불렸던 미국의 원로 노동운동가인 토미 마조찌(Tony Mazzochi)에 힘입은 바가 크다.

    레이첼 카슨이 지은 『침묵의 봄』을 읽은 후 마조찌는 저농도 농약에 의해서도 생태계가 파괴되고 더 이상 새가 울지 않는 ’침묵의 봄‘이 온다면 고농도 농약을 직접 다루는 노동자들은 과연 안전한 것일까 자문했다.

    그래서 그는 ’독성경제(즉, 화학산업)‘에 의존하는 노동자들이 비독성 경제에서 생계를 이어갈 방법을 고민했다. 즉 환경친화적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서 옮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 것이다. 이를 1990년대 캐나다의 노동조합이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명명하고 체계화하였던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 전략은 현재의 생산체계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지속가능한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며 시작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러한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하는 손실을 입게 된 노동자들에게 형평성있게 보상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다른 산업에서 일자리를 제공해줘야 하며, 고용 전환에 필요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그 시기 동안에 수입을 보전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새로운 산업은 녹색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산업이 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연구개발, 새로운 녹색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지역사회에 대한 지원, 이를 위한 공공투자 자금의 조성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로운 전환 전략은 국제 노동계에 의해서 폭넓게 수용되고 있으며, 국제 기후협약에도 관철시켰다. 2010년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된 기후변화 국제회의에서 정의로운 전환 전략이 반영되었다. 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들에서도 기후변화와 관련된 법률안에 정의로운 전환 원칙을 반영한 조항을 담고 있다.

    한국의 녹색일자리 : 녹색이기는 하지만 괜찮은 일자리인지는…

    한국의 녹색일자리의 수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부침은 있지만 환경규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으며, ‘삶의 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증가한 것이 소위 ‘녹색 경제’ 영역을 확장시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조사된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일자리 현황을 보더라도 녹색일자리의 수가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을 근거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신재생에너지 설비 제조업체들의 고용인원 수가 2004년 689명에서 2009년 9,151명으로 13.3배 증가하였으며 연평균 증가율은 62% 수준이었다. 그리고 2010년 고용인원수는 전년대비 28% 증가한 11,715명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사회적 경제 안에서 창출되는 녹색일자리도 아직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5개 회원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재활용 대안기업연합회의 일자리는 2006년 248명에서 2009년 650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창출되는 녹색일자리들이 과연 ‘괜찮은 일자리’인지, ‘정의로운 전환’ 전략이 실행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크다. 예를 들어 사회적 경제 내의 대표적인 녹색일자리라고 할 수 있는 주택 에너지 효율화 사업의 경우, 노동시장 내 취약계층의 일자리로 고정되면서 낮은 임금이 지속되고 있다. 괜찮은 일자리라고 하기 힘들다.

    한편 현대중공업의 경우를 보면 ‘정의로운 전환’ 전략의 필요성이 새삼 강조될 필요를 느낀다. 현대중공업의 조선사업본부를 중심으로 500여개의 일자리가 줄었지만, 최근 들어 시작된 태양광 에너지 부문에는 800개의 일자리가 생겼으며 군산의 풍력발전기 생산 공장에서도 1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군산의 풍력발전기 공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라고 알려져 있다.

    녹색산업의 노동자를 조직하고, 환경운동과 연대하자

    최근 후쿠시마 사태를 지켜보면서 한 노동운동가는 다음과 같이 반성하고 있다. “이미 사용 기간이 지난 원자력발전소를 연장해서 사용하는 것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신자유주의시대에 노조운동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필자.

    그는 일본과 한국의 무기력한 노동운동과 다르게 ‘반핵과 생태’라는 가치 지향을 명확히 하는 독일운동의 움직임을 소개하고 있다. 독일노총(DGB)은 지난 3월 26일 독일의 4대 대도시인 베를린, 함부르그, 뮌헨, 쾰른에서 약 25만 명이 참석한 대중 집회를 열면서 원전폐지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사실 독일 노동운동 내에서도 핵을 둘러싼 갈등이나 ‘회색경제’와 ‘녹색경제’ 사이의 대립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독일 노동운동은 새롭게 성장하는 재생에너지 산업을 비롯하여 녹색산업의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시민사회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회세력과 연대할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노동운동이 풍력산업의 비정규직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별된다.

    녹색산업의 노동자를 조직하고, 환경운동과 연대하자. 21세기 노동운동이 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끝)

    * 이 글은 노동건강연대에서 발행하는 <노동과 건강> 5월호에 기고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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