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는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
        2011년 05월 31일 01: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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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시대는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질 것이다

    앞으로 역사가가 어떻게 기록하게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는 한 시대를 가르는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 생각한다. 즉, 현대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쿠시마 사고로 비극적으로 새롭게 열린 시대는 며칠 전 독일과 스위스의 원전 포기 정책으로 그 모습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을 내놓은 이래 숨가쁘게 달려온 원자핵을 쪼개거나 융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군사적으로, 또는 ‘평화적’으로 이용하여 왔던 100여년의 시대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핵폭탄이 사용되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과 핵발전소가 폭발해버린 체르노빌의 비극도 있지만, 후쿠시마는 두 가지 점에서 차원을 달리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후쿠시마 사고는 단기적으로 안정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단지의 운영자인 동경전력이 밝혔듯이, 후쿠시마 제1원전에 위치한 1호기부터 4호기의 핵발전소(심지어는 5, 6호기에 저장된 사용후 핵연료까지)의 압력용기 내의 핵연료가 냉각되기까지 6개월에서 9개월까지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최대한 낙관적으로 생각할 경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대기, 바다, 지하수 등으로 배출된 방사능 물질량은 최악은 사고라고 했던 체르노빌 때의 배출량을 넘어섰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상당히 긴 기간 동안(최소 6개월 이상) 방사능 물질은 계속 방출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든 1달 안에 방사능 물질 방출을 중단시켰던 체르노빌과 다른 것이다.

    이제 적어도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는 ‘방사능 물질과 함께 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지속적으로 핵에너지 이용의 정당성에 대해서 회의하도록 할 것이다.

    둘째, 지구화된 시대의 핵발전소 폭발 사고는 말그대로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시민들에게 충격을 안겨다 주었으며, 우려와 행동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런 충격과 우려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로 방출된 방사능 물질이 편서풍을 타고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만은 국한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던 후쿠시마 핵사고에 대한 언론 보도일 것이다.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장면이 직접 시청자들의 눈에 각인되었고, 거의 매시간, 매일 단위로 핵사고 피해의 참상, 핵사고 수습의 어려움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수십 년 혹은 수 년 이후에야 단편적으로만 알 수 있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리고 체르노빌의 경우와 너무도 다르다. 핵발전소의 안전을 장담하는 국내 전문가의 인터뷰 도중, 그를 조롱하듯 갑작스럽게 보도된 폭발 장면은 쉽게 잊어지지 않을 일이다.

       
      

    위험은 사회적 하층 계급에 축적된다

    이제는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자주 언급되고 있는 책이 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발생했던 1986년에 출판된,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가 그것이다. 『위험사회』는 근대적 위험의 인식과 관리가 과학기술 전문가(기관)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는 점점 더 논란에 휩싸인다는 점을 지적하는 등, 여러 대목에서 주목할만한 통찰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런 통찰들은 이번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에서도 그 타당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여러 내용이 있다. 그 중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것 하나를 강조해볼 수 있다.

    “위험 분배의 역사는 부와 마찬가지로 위험이 계급유형에 밀착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만 그 방향은 서로 반대다. 즉 부는 상층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 그런 만큼 위험은 계급사회를 폐지하고 않고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위험사회』, 75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 직후, 최악의 상황 속에 사고를 수습하도록 남겨진 ‘50인의 결사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남았는지, 아니면 그들의 의사에 반해서 남겨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언론은 그들이 하루 일당 10만원 수준에 불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고 보도하였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를 한 줄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일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는 것은 꼭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도쿄전력이 민영화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면, 어떻게 일이 돌아갔을 것인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비용 절감 노력은 ‘핵심인력’을 제외하고 아웃소싱 되었을 것이고, 대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을 것이다. 물론 핵발전소가 폭발한 상황에서 그 ‘핵심인력’이란 폭발 현장에서 방사능 피폭을 감수하고 작업해야 할 인력이겠지만.

    한국의 핵산업과 노동자

    잠깐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최근 <시사인>(2011년 4월 23일자)에서 한국의 핵발전소의 비정규직 고용 현황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이 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핵발전소 운영 기업인 (주)한국수력원자력은 공기업으로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소위 ‘공기업 선진화’등의 정부 정책으로 인해서 점차 인력이 줄고 있다.

    핵발전소 20기가 가동되던 2010년에 한수원 현장 인력은 3247명이었지만, 21기가 가동되는 2011년에는 오히려 3141명으로 줄어들었다. 줄어든 인력(과 추가로 필요한 인력)은 대부분 비정규직과 외주 하청으로 채워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일은 주로 정비와 지원 업무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데, 이런 업무에는 방사능 오염이 이루어진 발전소 내 구역의 배관을 점검하고 교체하는 일도 포함될 것이다.

    2006년 건설노조의 파업이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포스코 협력업체의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임금의 36%에 불과한 임금과 3000명에게 주어진 10개도 안되는 화장실 등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며, 포스코 본사의 점거도 불사하고 있었다. 그에 동조적인 한 인터넷 신문은 파업에 참여하고 있던 쉰 초반의 배관공의 삶을 전하고 있었다. 그는 핵발전소 내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씨가 말랐어요. 고리 원전에서 일하다가. 사람이 평생 동안 쬘 수 있는 방사능이 정해져 있다대요. 검사 해보니까 난 이미 다 찬 거야. 그래서 이제 원전 일은 하고 싶어도 못 해요."(김하영, 『프레시안』 2011. 3. 22).

    핵발전소 내의 방사능 작업 종사자의 방사선량 한도치는 연간 50mSv(시버트)로 일반인의 기준 1mSv의 50배나 높은 수치이다. 이 쉰 초반의 배관공은 그 기준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그래서 먹고 살기에 바쁜 그는 허락만 된다면, 50mSv이든 뭐든 언제라도 핵발전소 안으로 일하러 갈 듯한 태도다.

    그나마 모종의 안전관리 지침이 작동이 되어서, 그의 방사능 노출량이 기록되고 있으며, 한도치를 넘어선 그가 더 이상 방사능에 노출되지 않도록 작업이 금지되었다는 점은 다행으로 여겨진다. 그래도 그의 삶은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하지만 생각해보면, 전국에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핵발전소 내에서 일하면서 방사능에 노출되었는지, 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사능 노출에 의한 그들의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그것을 체계적으로 모니터하고 관리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한도치를 넘어서기 때문에 그의 작업 참여를 중단시키고, 그 이후로는 팽개쳐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핵발전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상황에 잘 알고 있는 노동운동가는 “지금 핵산업 노동자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고 전하고 있다. 따라 잡을 모범이라고 생각했던 일본에서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발생하고 방사능 유출에 속수무책인 상황을 접하면서 망연자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한국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바로 자신들의 후쿠시마의 ‘50인의 결사대’가 되어야 할 판이지 않은가? 그들이 패닉 상태에 빠진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로 피폭된 노동자들, 어디로 간 것일까

    일본의 상황을 매일 같이 모니터하는 한국의 한 반핵운동가는 ‘에너지 활동가 메일링리스트’를 통해서 우리에게 후쿠시마 사고로 피폭된 노동자를 잊지 말라고 환기시키고 있다. ‘단순명쾌’라는 필명의 그는 도쿄전력이 매일 같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고 수습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고하고 있지만, 여기에 피폭된 노동자에 대한 소식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가 정리한 피폭된 노동자들의 수는 상당하다. 그에 의하면 지금까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관련된 부상자 및 행방불명자는 도쿄전력 사원 13명, 협력업체 작업원 13명으로 총 26명이다. 또 이외에 3월 말일까지 100mv 이상의 방사선량을 쪼인 사원과 작업원이 16명이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3월 24일의 피폭 사고는 심각했다. 제1핵발전소 3호기 터빈건물 1층과 지하에서 케이블 부설작업을 하고 있던 협력업체 작업원 3명이 방사성물질로 오염된 물 속에서 작업 중에, 170mSv 이상을 초과하는 방사선량을 쪼였다. 그 중 2명이 베타선 열상 가능성을 의심받아, 후쿠시마현에서 치바현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로 이송되었다. 이후 그들에 대한 소식은 뉴스에서 사라졌다.

    또한 최근에는 도쿄전력의 사원으로서 중앙 제어실에서 근무하던 30~40대의 노동자들이 250mSv가 넘는 피폭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연간 50mSv로 정해진 노출한계량을 5배나 넘은 수치이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어떤 경로로 피폭을 당했는지 확인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피폭 사실을 확인한 홀바디카운터라는 특수검사기의 설치 대수가 한정되어 있어서, 지금까지 3700명 작업자 중 1400명(40%)만 이 정밀기기로 체크받았다.

    * 이 글은 노동건강연대에서 발행하는 <노동과 건강> 5월호에 기고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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