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완용, 합리적 근대인
        2011년 05월 29일 10: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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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와 한겨레출판이 공동 기획한 ‘한겨레역사인물평전’ 시리즈의 세 권이 나왔다. 『이완용 평전』(김윤희 지음, 한겨레출판, 16000원), 『안중근 평전』(황재문 지음, 18000원), 『최남선 평전』(류시현 지음, 15000원)이 나왔다.

    이완용, 합리적 근대인

    첫 번째 책은 그간 ‘매국노’로 낙인찍혀 거의 실체를 조명받지 못했던 이완용의 평전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완용은 어린 시절 명문 반가의 양자로 들어가 고전을 익혔으며 과거 급제 후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주미대사관 참찬관으로 파견되었던, 동양의 전통과 서양의 지식에 두루 열려 있는 인물이었다. 또한 각종 교육 개혁을 이끌고 독립협회 회장을 지내며 정동파의 수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등 복잡다단했던 구한말 정계에서 주목받는 기민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이완용은 을사조약 체결과 함께 국망의 원인 제공자이자 인간적으로도 타락한 존재로 낙인찍혔다. 물론 그의 매국 행위는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대한제국의 정치 구조 속에 배태되어 있던 문제들이 이완용 개인의 문제로 환원됨으로써 이완용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국가 혹은 민족의 이름 아래 일종의 탈출구를 얻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 추적해본 이완용은 기존의 평가처럼 탐욕스러운 인물도, 근대적인 주권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한 전통적인 관료도 아니었다. ‘매국노’ 이완용은 오히려 합리적인 근대인이었다. 근대적 합리성이 극단의 시대와 마주했을 때 어떻게 발현되는지 이완용의 행적을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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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행적 엄밀하게 규명

    우리 근대사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안중근만큼 주목을 많이 받은 이도 드물 것이다. 이토가 저격을 당한 것은 당대에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저격일인 1908년 10월 26일부터 11월 4일까지 이 사건과 관련한 전보만 9만여 통에 이를 정도였다.

    이후 안중근은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에 빠질 수 없는 인물로 자리매김했으며, 박은식 같은 역사학자를 비롯하여 조정래 같은 문인까지 그의 전기를 집필할 정도로 다방면에서 다양하게 조명받았다. 또한 작년에는 안중근 서거 100주년을 기념한 다양한 행사들이 기획되어 새로이 조명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안중근과 관련한 많은 저작들에서는 각기 다르게 기술된 사실들이 간간히 보인다. 그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인정하더라도 사실 기술의 차이는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이는 안중근을 영웅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부각될 때 더욱 두드러지게 불거진다.

    따라서 이번 『안중근 평전』에서는 그간 이견이 있거나 사실 확인이 덜 된 부분들을 하나하나 비교, 분석해가며 안중근의 행적을 찬찬히 짚어보았다. 이는 안중근의 영웅성을 부인하는 작업이 아니라 엄밀한 사실을 규명함으로써 실제의 안중근에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기획이다.

    20대의 안중근은 민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꿈꾸었지만 엄혹한 민족의 현실을 마주하고서 해결 방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부당한 일을 당한 이의 송사에 관여해 원칙을 주장하기도 하며, 삼흥학교 운영에 관여했고,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국가의 재정 문제를 고민하기도 했다. 또한 블라디보스토크에 방문하여 지역 거물인 이범윤, 최재형 등에게 조국을 위한 활동을 호소했고, 비록 성공을 거두진 못하지만 군자금을 모아 의병 활동을 도모하기도 했다.

    이후 안중근은 이토 저격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안중근뿐만 아니라 저격에 관여했던 우덕순와 유동하의 진술, 안중근의 딸인 안현생의 회고, 그리고 일본의 정보 및 조사 기록이 전해온다. 이 자료들은 진술 및 조사 주체의 차이에 따라 조금씩 다른 부분이 보이는데, 이번 평전은 발화 주체의 입장을 고려하며 이토 저격의 사전 계획부터 시작해 하얼빈 역에서의 실제 저격, 안중근의 체포 후 뤼순 감옥에서의 생활과 재판 과정의 전말까지를 찬찬히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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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적 인간, 최남선

    일본 유학을 거친 후 <소년>을 창간하며 신지식층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던 계몽운동가, 당대 최고의 지식 아카데미였던 조선광문회를 주도하며 조선사 연구에 매진했던 역사학자, 「기미독립선언서」를 집필하며 당당히 3ㆍ1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민족운동가.

    이러한 최남선을 우리 근현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반열에 올리는 것은 분명 타당할 것이다. 그를 거치지 않고서는 한국 근현대 지성사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남선은 당대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신문화의 선구자였다.

    그러나 그는 민족주의자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우리 근현대사의 아물지 않은 상처이기도 하다. 일본의 관변 단체인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면서 최남선은 변절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내고 만주 건국대학 교수를 거쳐 일제의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강연을 하는 등 최남선은 돌이키기 힘든 선택을 했다.

    그러나 이처럼 굴곡 있는 그의 행보는 우리 근현대사가 경유했던 극단적 스펙트럼을 되짚어보는 데 그 무엇보다 유효한 지표이기도 하다. 문제적 인간 최남선의 삶을 통해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거쳐온 우리 근대와 민족주의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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