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수' 폭도들, 닥치고 경배하라?
        2011년 05월 27일 06:42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연일 <나는 가수다> 때문에 난리다. 온갖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사실관계가 어떻든, 거론되는 인물들 중 누가 잘못한 것이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이렇게 난리가 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사람들은 <나는 가수다>를 통해 음악의 감동을 느꼈다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음악을 듣고 감동한 사람들이 왜 집단적 공격성을 나타내는 걸까? 원래 예술적 감동은 화를 가라앉히고 있던 공격성도 없애지 않나? 그런데 왜 <나는 가수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공격적이 되는 걸까?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그 무엇인가가 과연 음악의 감동이었을까, 서바이벌 경쟁의 자극이었을까?

       
      

    음악의 감동은 마음을 더 관대하고 여유롭게 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경쟁의 자극은 마음을 더 황폐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계속 나타나는 집단적 공격성을 보면 <나는 가수다>는 황폐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초기부터 그랬다. <나는 가수다> 팬들은 이 프로그램에 조금이라도 비협조적인 사람들의 ‘꼴’을 봐주지 못했다. 비판적인 지적을 한 조영남이나 신해철부터 시작해 심지어는 단지 나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을 뿐인 인순이 같은 사람에게도 악플세례가 퍼부어졌다.

    닥치고 경배하라?

    사람들이 외치는 것은 오직 하나, "닥치고 경배!"였다. 비판과 우려는 집어치우고 오로지 <나는 가수다>를 숭배만 하라는 것이다. 평자는 경탄만 늘어놓을 것이며, 가수들은 <나는 가수다>의 간택만 기다리는 순한 양이 되기를 강요받았다.

    음원 문제도 그렇다. 예능 프로그램의 음원이 음악 시장을 초토화하는 것의 문제를 지적하자, 다시 사람들이 벌떼같이 나서서 <나는 가수다> 음원을 지켰다. 말하자면, <나는 가수다>는 성역이 돼버렸다. 누구도 흠집을 낼 수 없는 성역.

    여기에 흠집을 내는 불경을 저지른 사람은 가차없는 처단의 대상이 된다. 외부의 비판자나 비순응자는 기본이고, 내부의 불순분자도 마찬가지다. 내부인 중에서 처음엔 김건모, 이소라, 김제동, 김영희 PD부터 시작해 지금은 옥주현, 신정수 PD가 찍힌 상태다. 이렇게 살벌하고 공격적인 분위기는 음악적 감동과 매우 거리가 멀다.

    <나는 가수다>가 음악과 가수의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도 사실은 음악적인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나는 가수다>를 보며 노래는 이렇게 감동을 줘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임재범처럼 열창을 하는 것이 진짜 가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감동과 열창이 없는 음악은 비웃음의 대상이 돼가고 있다.

    음율의 차원을 넘어선 인간적 감동을 주는 임재범의 무대가 훌륭한 건 맞다. 나도 ‘여러분’의 무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물론 그 감동엔 노래의 힘뿐만 아니라 편집의 힘도 크게 작용한 것이지만) 하지만 그렇게까지 감정을 증폭시키지 않아도 훌륭한 음악이 세상엔 많다. 가수가 꼭 자신의 삶으로 감동을 줘야 한다는 법도 없다.

    열창도 그렇다. <나는 가수다>는 노래 서커스가 돼가고 있다. 서커스를 해주지 않으면 등수가 내려가거나 김연우처럼 탈락당한다. 극한의 노래 기예를 펼칠 수 있는 것이 물론 가수의 중요한 미덕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수도 얼마든지 좋은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

    요는 다양성인 것이다. 세상엔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을 수 있다. 다양한 것들을 관용할 수 있은 힘, 다양한 것들이 어울려있는 아름다움, 바로 예술은 이런 것을 가능케 하는 세계다. 그러나 <나는 가수다> 현상에선 오히려 더욱 획일적인 기준이 나타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공격성이 배양되고 있다.

    핏대를 세울수록 나가수가 망가진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100%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그 프로그램을 둘러싼 사회적 현상이 잘못돼가고 있다는 얘기다. <나는 가수다> 자체는 빛과 그림자를 다 가진 프로그램이다. 아무도 음악을 듣지 않는 시대에 음악에 집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빛과, 그것이 기존 가수들에게 서바이벌 경쟁을 시키고 등수를 매기는 형식이라는 그림자 말이다.

    그림자는 무시하고 음악에만 집중하면 <나는 가수다>의 빛이 극대화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그림자에만 집중하고 있다. 서바이벌 경쟁의 자극성, 평가와 등수 매기기의 짜릿함, 서커스성 열창과 인생 스토리텔링의 감정 과잉.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지금의 공격성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음악에 집중하고 감동해 우리 사회가 보다 문화적으로 돼간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진짜로 다양한 가수들이 보고 싶고, 그런 음악들을 듣고 싶다면 이렇게 집단적으로 공격성을 불태우지 않아도 간단한 방법이 있다. 전문 음악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올려주기만 해도 된다. 핏대를 세울 필요가 전혀 없다.

    핏대를 세울수록 <나는 가수다>는 음악적 감동과 멀어진 집단 공격성의 진원지가 돼간다. 정말로 음악이 좋아서 이 프로그램을 사랑한다면,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히 다양한 음악들을 즐길 일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변한다면 <나는 가수다>는 역사에 남을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