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의 나라, 또다시 확인됐다"
        2011년 05월 25일 01: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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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11월 15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울산 1공장을 25일 동안 점거 파업을 했지만 경찰력은 투입되지 않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자동차 부품회사인 유성기업에서는 지난 18일 오후 부분 파업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공격적 직장 폐쇄를 하고, 이에 저항하자, 이번에는 신속하게 경찰 물리력을 투입해 파업을 와해시켰다. 고도로 준비된 일련의 작전을 보는 듯했다.

    왜 그랬을까. 이명박 정권과 총자본이 유성기업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를 잘 보여준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주간 2교대제라는 매우 중요한 제도 도입의 문제가 깔려 있다. 이것이 재벌, 특히 현대기아차의 이해 관계와 직결된  문제인만큼 ‘재벌보위부’인 이명박 정권은 자본과 공동 전선을 치면서 작은 부품사 노조를 공격을 한 것이다.  

    경총은 지난 22일 “유성기업과 같은 불법 분규가 계속 방치될 경우 복수노조 허용과 맞물려 노사 관계와 정국 불안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신속히 공권력을 작동해 법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경찰 물리력 투입의 명분을 제공해줬다.

    현대차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 있는 한국자동차공업협회도 “유성기업 노조가 완성차 생산직보다 높은 급여를(연 평균임금 약 7000만원)를 받으면서 완성차업계도 실시하고 있지 않는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를 요구하며 파업을 하고, 직장폐쇄 중임에도 불구하고 불법으로 생산 시설을 점거하고 있어 공권력 투입 등 엄정한 법 집행으로 즉각적인 회복조치가 필요하다”며 물리력 사용을 촉구했다. 언론을 이를 크게 보도하며 보조를 맞췄다.

    전명박 또는 이태우

    재계의 강력한 압력을 받은 이명박 정권은 경찰 투입의 후폭풍을 무릅쓰고, 최단 시간에 공권력을 투입해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노사관계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모든 파업은 ‘불법’으로 ‘만들어’ 물리력으로 짓밟아서 무력화시킨 그 시절의 필름이 다시 돌기 시작한 것이다.

    유성기업은 2009년 임금단체교섭에서 2011년부터 야간 철야노동이 없는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사측은 현대와 기아차 등 원청사의 압박을 내세우며 합의 사항을 파기했다. 유성기업 지회는 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냈고, 지난 17~18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18일 2시간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회사는 즉각 같은 날 저녁 8시 직장폐쇄 공고문을 부착한 후 용역깡패를 동원해 정문을 봉쇄하고, 야간조 출근을 막았다. 조합원들은 용역깡패와 사측 관리자를 밀어냈고, 충북 영동공장의 조합원까지 500명이 넘는 조합원이 공장으로 들어왔다.

    회사 측의 계산된 불법 파업, 업무 방해 유도를 위한 수순이었으나, 노동조합으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일 새벽 12시 30분, 조합원들이 정문 주변에서 용역깡패를 발견하고 쫓아내는 과정에서 용역은 카니발로 조합원들을 향해 돌진해 13명을 치고 도주했다. 조합원들은 현대차 구매담당 총괄이사의 차량에서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발견하고 23일 민주노총이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폭로했다.

    폭로된 문서의 의미

    ‘유성기업 쟁의행위 대응요령’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과 관련해 현대차가 부품회사의 노동시간 단축으로 원청인 현대차의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이 문서는 유성기업, 금속노조, 현대차․기아차의 현황을 분석한 뒤, 유성기업이 노사 간 주간연속 2교대 시행 합의 시, “현대차/기아차 본 교섭에 일부 변수 발생 우려”된다고 밝혀, 현대차가 유성기업 노사문제에 개입한 배경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유성기업에서 임금삭감과 노동 강도 강화 없는 주간 2교대를 합의할 경우 완성차 조합원들이 그 영향을 받아 유성기업 합의내용보다 낮게 합의할 수 없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현대차는 부품 공급의 심각한 차질 현상이 발생하더라도 주간 2교대제 시행을 막아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현대차 시행 후 3개월 내 시행 추진”하도록 해 현대차/기아차 시행 전 부품회사의 주간 2교대제 노사 합의 ‘금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유성기업을 비롯해 자동차 부품회사들이 현대와 기아차보다 먼저 임금 삭감과 노동 강도 강화 없는 주간 2교대제에 합의하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라는 뜻이다.

    주간 2교대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현장 노동자들의 비상한 주목을 받으면서 노조가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제도이다. 특히 현대차 노조에서는 여러 집행부를 거치면서 이 문제를 가지고 회사와 교섭해왔으며, 회사 측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이를 막아왔다.(관련기사 하나, , )

    주간연속 2교대제의 3무원칙

    지난 2009~2010년 금속노조 소속 케피코, 두원정공, 유성기업 등에서 임금 삭감과 노동 강도 강화 없는 주간연속 2교대에 합의한 바 있고,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논의를 향후 관제로 남겨놓았다. 현대차와 기아차 등 완성차는 2011년 임단협에서 주간 2교대제가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다.

    노사관리를 총괄하는 현대차 윤여철 부회장은 지난 5월 12일 제8회 자동차의 날 기념식에서 “생산라인에 투입될 인력(맨아워)과 시간당 생산대수(UPH) 협상이 잘 되면 노사 모두에 이익”이라며 “주간연속 2교대는 노사 양측에 서로 좋을 수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즉, 노동 강도가 강화되면 올해 주간 2교대제를 합의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8년 9월 현대차지부는 임금 손실, 노동 강도 강화, 고용 불안이 없는 ‘3무원칙’의 주간연속 2교대제를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 잠정합의안이 나왔으며, 대의원들이 이 안을 총회에 상정할 수 없다며 1차 거부했고, 재협상에서 임금 3천원 인상과 성과급 100만원이 추가로 나왔지만 조합원들은 61.2%라는 사상 최대의 반대로 이를 부결시켰다.

    따라서 올해 현대와 기아차, 자동차 부품회사들의 주간연속 2교대제가 임금 삭감, 노동 강도 강화, 고용 불안 없는 ‘3무원칙’이 어떻게 합의되느냐가 금속 노사의 최대 관심사가 된 것이다.

    현대차가 부품사에 지배․개입하는 이유

    자동차완성차 업체로서, 수많은 부품회사를 ‘거느린’ 원청사인 현대차가 하청사의 노사 관계에 개입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03년 7월 15일 금속노조와 100여개 사용자들은 13차 중앙교섭에서 기존임금 삭감 없는 주 40시간(주5일)근무제를 합의해 그해 10월부터 시행했다. 이에 앞서 자동차부품사인 만도가 주40시간을 합의한 바 있다. 이에 영향을 받은 현대, 기아, GM대우 등 완성차가 다음 해에 주40시간을 합의했다.

    2005년 금속노조는 해외공장 생산품 역수입(바이백) 금지를 내걸고 중앙교섭을 벌였으나 원청회사의 압박과 개입으로 인해 해외공장 생산품 역수입을 합의하지 못했다. 중앙교섭에서 사용자들은 공공연하게 현대기아차 그룹에서 합의를 강력하게 반대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2008년 현대차 노사의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에 대해 현장 조직에서 자동차부품사인 한일이화의 합의안과 비교하며 비난하자, 한일이화지회 박한용 사무장은 “회사에서는 현대자동차 눈치 보여서 앞으로 임금을 더 못준다고 한다.”며 하소연을 했다.

    또 2009년 생산 공정에 비정규직이 한 명도 없는 경기의 한 자동차부품사는 청소, 식당, 경비노동자 16명을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고, 임금과 성과급도 동일하게 지급받기로 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자 현대차그룹 본사에서 직접 그 사업장에 압박을 가해왔고, 노조 간부들은 금속노조에 제발 언론에 보도되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할 정도였다.

    2010년 2월 금속노조가 100인 이상 사업장의 비정규직(사내하청) 사용 실태를 조사해 126개 사업장 중 36곳(28.6%)이 ‘비정규직 없는 공장’이라고 밝혔고, 언론에 보도되자, 여러 사업장에서 간부들이 현대차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며 힘들어 했다.

    현대차 자본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총자본’을 대신해서 부품회사의 단체교섭 내용이나, 청소노동자 정규직화 문제까지 개입하며 ‘진취적, 전투적’으로 투쟁해 나가는 모습은, 1사 1조직이나 제대로 된 산별노조 전환에 결정적인 순간 발목을 잡거나, 내부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를 외면했던 현대차 지부의 ‘소극적, 방어적’인 태도와 대비된다.

    현대차 지부 비판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조 간 연대투쟁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현실을 인식하기 위해 환기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금속노조 26일 연대파업

    현대차는 이처럼 부품회사 물량을 줄여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막강한 힘을 이용해 부품회사 노사가 자율적으로 맺은 임금과 단체협약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다. 현대차는 발레오만도, KEC 등에서 공격적 직장폐쇄로 노조를 무력화시켜왔던 ‘창조컨설팅’과 함께 금속노조 사업장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온 것이다.

    유성기업에 이어 앞으로 두원정공, 경주의 에코플라스틱, 다스 등이 현대차와 이명박 정부의 다음 공격 대상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금속노조는 24일, 충남지부, 대전충북지부가 공권력 투입에 항의해 오는 26일 연대파업을 벌인다고 밝혔다. 자동차 부품사의 노사관계에 원청의 막강한 힘을 동원해 개입해 노사관계를 파탄시키는 현대차그룹과 공정사회는커녕 노사관계를 군사정권 시절로 되돌리는 이명박 정권에 맞서 전국적인 연대투쟁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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