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진적 열정 & 폭력과 투쟁 사이
    [기고] 통합진보당 사태…진보적 성찰성, 진보적 정치력 상상①
        2012년 05월 18일 09: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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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에서 주최하는 ‘통합진보당 사태’ 토론회가 있었다. 거기서 이번 중앙위원회 사태는 명백한 ‘폭력’ 사태이므로 이를 진보의 이름으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토론 와중에 사회자가 일본의 사회운동에 조예가 있는 성공회대 권 모 교수에게 일본 좌파운동의 폭력과 이번 사태를 비교해서 이야기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권 교수가 일어나서, 일본 좌파운동 내부의 폭력에 비교하면 이것은 폭력 축에도 못 낀다고 이야기해서 청중들이 모두 웃었다. 모두 웃으면서 들었지만, 권 교수의 이야기는 우리가 통합진보당 사태를 접근하는데 ‘폭력’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급진적 열정은 언제 ‘폭력’이 되는가?

    이번 사태는 현재도 진행형이고 이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착잡하다. 요즘 나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포함하여 매일매일 경험하는 사건들을 과도한 감정이입을 자제하고, ‘쿨하게’ 약간 거리를 두면서 지적으로 성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도 많은 질문들을 상당히 ‘의도적으로’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있다. 예컨대 변혁적 열정 혹은 급진적 열정이 어떤 때는 퇴행적인 것으로 비난을 받고 어떤 때는 사회진보를 위한 공공적(公共的) 동력이 되는가. 왜 급진적 열정, 그리고 그에 따른 ‘전투적 행위’가 어떤 때는 국민적 지탄을 받는 ‘폭력’이 되고, 어떤 때는 사회진보의 당당한 ‘투쟁적 행위’가 되는가.

    예컨대 FTA 반대를 위한 김선동 의원의 저지행위는 ‘영웅적 행위’가 되고 중앙위원회의 저지행위는 ‘폭력’의 극단적인 사례로 비판을 받는가. 도대체 급진적 열정과 폭력의 관계는 무엇인가.

    또한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14일 분신한 박영재 씨의 경우와 91년 분신들, 86년 이재호-김세진 열사의 분신은 어떻게 다른가. 이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가. 박영재 씨가 분신하면서 말하고자 했던 ‘들려지지 않는 목소리’에 대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경청’해야 하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진보정당이 선거주의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사회운동정당’으로 존재하기를 주문하는데, 사회운동 정당에게 민주주의적 절차는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준수되어야 하는가. 앞으로 진보정당의 패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당내민주주의 제도는 어떻게 제도화될 수 있는가.

    민주주의라는 것이 단지 ‘다수파 통치’라는 의미 외에 ‘소수자가 존중되는 통치’ 혹은 ‘소수자가 다수자가 될 수 있는 공간이 허용되는 통치’라고 볼 때-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당권파의 ‘패권주의’에 의해 억울해하면서 소망했던 ‘소수파도 존중받는 진보정당의 당내 민주주의’를 앞으로 비당권파는 어떻게 실현해가야 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구현할 것인가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중의 열정과 행위의 흐름과 괴리될 때

    그에 대한 해답은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면, 특정한 집단의 급진적 열정이 ‘대중의 열정의 흐름’과 분리될 때이다. 특정한 ‘전위적’ 집단의 전투적 행위라도 그것이 대중의 열정과 행위의 흐름과 분리될 때, 그것은 퇴행적이 될 수도 있고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한국사회의 대중, 최소한 진보개혁적 지향을 갖는 대중은 기성의 정당정치를 부정과 기득권으로 점철된 것으로 보고, 그것에 도전하면서 앞으로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당권파의 ‘폭력적 행위’는 국민들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정당정치에서, 그 일부로서의 기존의 부정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행위로 ‘투영’되었다(여기서 일단 ‘투영’이라고 하자). 그래서 ‘진정한 폭력’으로 되었다.

    지금까지 급진적 열정과 전투적 행위는 독재의 폭력과 민주화 과정에서의 독재세력의 기득권에 저항하는 행위의 맥락에서 발휘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당권파의 행위는 경선부정을 옹호하는 행위로, 그리고 당내 기득권을 옹호하는 행위로 투영되었다.

    당권파의 전투적 행위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행위로 투영되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더구나 한국사회의 진보개혁적 대중은 심지어 ‘묻지마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한 높은 개혁 열망에 비추어서 이 사건은 용납할 수 없는 ‘보수(保守)’적 행위가 된다. 특히 당권파가 이렇게 ‘구성’된 현실을 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보수세력의 공세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수언론은 진보의 급진적 열정과 전투적 행위가 대중의 급진적 열정의 흐름과 괴리되고 그것이 ‘부도덕한’ 것이 될 때, 즉 ‘진보가 대중과 분리될 때’, 파죽지세로 공격하고 진보세력을 폭력세력으로 규정하고 공격한다. 이때 진보세력을 비폭력적 진보와 폭력적 진보, 수구적 진보와 개혁적 진보로 나누어 방어하는 것은 크게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큰 틀에서 보면, 대중의 급진적 열정과 진보좌파집단의 급진적 열정이 괴리되고 진보좌파집단이 ‘폭력’ 세력으로 ‘낙인화’ 되면, 이른바 보수가 열망하는 ‘부르주아적 정치질서’는 공고화되고 완성된다.

    진보좌파집단의 급진적 열정과 전투적 행위가 대중의 급진적 열망과 결합돼 제도정치 내의 균열을 자아내는 집단으로 존재할 때 그 제도정치를 혁파해가는 동력이 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이 된다.

    한국현대사를 돌아보게 되면, ‘도덕성’에서 보수를 부끄럽게 한다고 ‘간주되는’ 진보가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부도덕한 모습을 보일 때, 바로 그러한 ‘국면적 괴리’가 발생하고, 바로 그 때 파죽지세로 보수(언론)이 공격해 왔고 그래서 사회진보의 과정은 교착국면을 맞거나 우회하게 되었다.

    급진적 열정도 그것이 진보가 도덕적 약점을 보이는 국면에 놓이게 될 때 퇴행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부족한 지식을 동원해 과도한 단순화를 무릅쓰고 이야기한다면, 일본에서 한때 40%를 육박했던 공산당의 지지율은 4~5%로 추락했고, 비(非)공산당적 신좌익은 대중의 급진적 열정과 괴리된 ‘무장’ 투쟁이 TV에 생중계되면서 ‘대중적 세력’으로서 막을 내려가게 되었다.(관련기사)

    부정이 ‘확증된 부정’이 될 때

    이런 상황을 가속화한 ‘상황적’ 요인들도 많다. 이번에 통합진보당 ‘사태’가 구성된 데에는, 무엇보다 하나의 운동권 조직 내의 문제나 진보정당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민적 이슈’가 되었다는 점이다.

    하나의 문제가 사적 공간에서의 문제로 존재할 때와 그것이 공적 공간의 문제로 전화됐을 때는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경선 부정이 일부의 억울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국민의 눈으로나 보수의 눈으로 보면 ‘확증된 부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경선 부정은 민주통합당이나 새누리당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고, 통상 ‘확증된 부정’이 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국민참여당계의 문제 제기와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에 의해서 내부적으로 확증된 사건이 되었다(한나라당이 붕괴한 것은 고승덕 의원이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을 내부자로서 ‘폭로’함으로써 ‘확증된 부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권파가 일부 사실에 대해 억울해하고 하는 것은 큰 흐름에서는 주변적인 문제가 된다. 그래서 조중동 등 보수언론에 대해서는 ‘융단폭격’을 할 수 있게 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폭력’의 현장이 신문언론에 나는 것과 ‘방송카메라’에 의해 비쥬얼한 생동하는 화면으로 국민에게 전달되었다는 점이다.

    91년 5월 분신정국에서도 진보에 거대한 상처가 났던 것은 정원식 총리 고별강의에서 일어난 ‘밀가루 투척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커진 것은 그 투척 장면이 카메라 화면에 적나라하게 포착된 것이었다. 당시에도 학생들이 항변했다. 정원식 총리의 행태에 대한 ‘정당한 항의’의 표시였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묻혔고, 학생운동을 포함한 진보진영은 ‘융단 폭격’을 받았다.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의 ‘상식’화

    여기서 진보정당, 특히 당권파가 응시해야 하는 사실로서 이번 상황을 구성하는 요인은, 진보정당 내부의 소수정파들의 ‘패권주의’라고 하는 항변, 그리고 그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고 하는 항변이 일정하게 ‘상식의 프레임’으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즉 당권파의 패권주의에 대한 일정한 비판적 시선, 당권파가 관행적으로 자신의 패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상식’화된 의견이 강력하게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선 부정 조사 결과의 발표가 ‘총체적인 부실’이고 특정하게 누가 부실이었다는 것을 초기에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언론과 대중의 시선은 그것을 곧 당권파의 문제로 인식했고 당권파에 대한 비판으로 곧바로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당권파가 항변하게 되면서 그것은 더더욱 확고부동한 사실처럼 인식되었고, 더구나 폭력사태까지 유발하는 방식으로 항변하게 되면서 이는 전면적으로 당권파의 ‘본질’적 문제로 동일시되는 식으로 변화되어 갔던 것이다.

    이 국면이 효과적으로 처리되지 않을 때, 당권파는 ‘폭력’ 집단이 되고, 당권파가 긍정적으로 담지하는 이른바 ‘반외세민족해방운동’적 열정과 전투성은 고스란히 ‘진정한 폭력’의 열정이 된다. 이것은 비당권파(개혁자유주의정파와 평등파)의 우위를 강화하는 식으로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이른바 ‘부르주아적 정치질서’ 일반이 공고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계속)

    필자소개
    성공회대 교수. 민교협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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