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창단원'이 되다
        2011년 05월 23일 07: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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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언직, 그의 친구인 손낙구가 소개한 그의 젊은 시절을 요약하면 이렇다.
    전두환 군사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85년, 삼민투의 ‘고공야사(고공의 야전사령관: 가두시위를 주도한 사람을 당시 학생운동의 은어로 이렇게 불렀다)’로 징역 1년을 꼬박 살았고, 출옥 후 87년엔 노동운동을 위해 위장취업, 6월항쟁 당시 신분이 들통나 수배생활을 했다.

    그후 박노해, 백태웅 등과 사노맹 초기 집행부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1990년에는 인천 노동자대학의 자금을 조달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살았다. 징역살이 중에 동구권 사회주의가 붕괴되는 걸 보았고, 만기 출옥 이후 ‘지구전’이 필요하다며 사노맹을 정리하고 전노협에 들어가 대중운동에 복무했다.

    그 후 민주노총 조직실장으로서 대우자동차 조합원에 대한 살인적 폭력에 항의하는 수만 명의 노동자 집회에서 봉고차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진격하라"고 선동한 혐의로 세번째 징역살이를 했다. 단병호 의원 보좌관, 강남 좌파로 총선 출마,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 강남당원협의회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그는 쉼없이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운동의 한 길을 달려왔다.

    그런 그가 최근엔 합창단(?)에 합류했다. 이른바 진보판 백만민란이라는 ‘진보의 합창’이다. 연합정치의 진로를 두고 백가쟁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언직의 선택은 진보단일정당이었다. 치열하게 살아 온 만큼 그의 선택 또한 가볍지 않다. 치열하게 토론하되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무서운 추진력을 발휘하는 그의 발걸음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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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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