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오타이주 본고장 상인들 쫓겨날 판
        2011년 05월 22일 07: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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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필자가 즐겨보는 TV프로가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CCTV 1채널에서 매일 밤 방영되는 ‘초점방담'(焦點訪談)이다. 저녁 7시 40분부터 약15분 간 방영되는데, 시청률이 가장 높다는 7시 뉴스(新聞聯播)와 연이어 배치되어 있으면서 함께 황금시간대를 장식한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카메라출동’과 비슷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의 비리뿐만 아니라 ‘감동 사례’ 등의 긍정적 보도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양자 간의 비율을 본다면 대략 1:3 내지는 1:4 정도는 될 것 같다. 그래도 거의 매일 같이 방영되는 프로이기 때문에 1년 365일 전체로 치면 상당히 많은 사회 비리가 이 프로를 통해 고발되고 폭로되는 셈이다.

    주은래가 칭찬한 그 술

    얼마 전 5월 15일에는 중국에서 제일 유명한 술인 마오타이주(茅台酒)의 고장인 마이타이 진(鎭-우리나라 농촌의 면 단위에 해당)의 강제 철거 얘기가 보도 되었다. 한국의 애주가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마오타이주는 귀주성 준이(遵义)시의 한 진(鎭)의 이름을 빌려 명명한 것이다.

    이곳의 마오타이주가 유명한 이유는 붉은 수수를 재료로 우려내서 텁텁한 된장 비슷한 맛이 나오게끔 하는 발효 과정의 독특한 제조 비법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 산골짜기에서 솟는 깨끗한 물 역시 마오타이의 고유한 술맛에 한 몫을 한다.

       
      ▲마오타이주를 빚는데 이용되는 계곡물. 전날 비가 와서 물빛이 황색이다. 맞은 편 절벽에는 ‘美酒河’라는 글자가 붉게 암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글자마다 가로세로가 5미터씩이나 된다.(사진=김정호)

    필자는 작년에 모처럼 학교에서 마련해준 기회를 통해 마오타이주 제조에 사용한다는 계곡물을 직접 구경한 적이 있다. 그곳은 아주 깊은 골짜기를 흐르는 급류로 일반인들은 감히 내려가보기도 겁이 나는 곳이다.

    과거 홍군은 1935년 장정 중에 이 주변을 거쳐 갔는데, 중국공산당은 이때 유명한 ‘준이(遵义)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를 통해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의 당내의 지도적 위치를 처음으로 확립하고, 왕명의 좌익모험주의 노선을 청산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술맛을 즐길 줄 알았던 주은래는 그때 이곳 술맛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급박한 상황 하에서도 천하의 명주를 즐길 줄 아는 당시 혁명가들의 낙천성과 여유를 엿보는 듯하다.

    그런데 역사적 유례가 깊은 이곳이 이번에 TV카메라를 타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마을상가들에 대한 鎭정부의 ‘강제 철거’ 때문이다. 이곳 상인들은 지난 달 鎭정부로부터 느닷없이 5월 1일부터 5월 3일까지 상가를 비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상가 현대화와 쫓겨나는 기존 상인

    명목은 전국적인 상표 지명도를 가진 ‘마오타이주’의 본 고장답게, 이곳의 상가들도 현대식으로 새 단장을 하여야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낡은 상가들을 모두 헐고 새로 지은 후 ‘마오타이’ 술 관련된 취급소로 바꾸어서 마을 전체를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사실 이 같은 의욕적인 재개발 자체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문제는 鎭정부의 이런 재개발계획이 상인들의 동의와 충분한 보상이 전제되지 않고 추진되는 데 있다. 그리고 시일도 너무 촉박하다.(이들 절차들은 이미 지난 해 개정된 행정법규인 ‘도시가옥철거관리조례’에 명문화 되어있다)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는 상인들은 각자의 딱한 사정들을 하소연한다. 중국이동통신 핸드폰 대리점을 경영하는 어떤 아저씨는 금년 초에 막 20만 위안(약 한화 3400만 원)을 들여 점포를 계약하고 내부 장식을 끝마쳤는데, 이들 투자금을 모두 날리게 생겼다고 걱정한다. 또 다른 잡화가게 아주머니는 정부 보상이 1인당 몇 천 위안 씩밖에 안 된다고, 그것 가지고서는 다른 곳에 정착하기에 어림없다고 울상이다.

    카메라는 물론 고발당한 측인 마오타이 鎭정부 관리도 인터뷰한다. 많아야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비교적 젊은 부鎭장이 주로 인터뷰에 응했는데, 기자의 질문에 대한 이 자의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식 답변은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을 것 같다.(필자도 그의 뻔뻔스런 응답에 화가 치밀었다)

    그는 상인들의 원성이 높은 강제철거에 대하여, "처음에는 막막하더라도 막상 1~2년만 지나면 어떻게 해서든 다들 자리 잡을 것이다."라고 답한다. 터무니없이 적은 이주비에 대해선 "鎭정부의 재정 형편상 더 이상 줄 여력이 없다"고 변명한다.

    뻔뻔한 관료들

    그리고 "우리 고장의 발전을 위해서 그런 것이니,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이해해 달라"는 뻔한 논리도 펼친다. 이런 젊은 부진장의 인터뷰와 함께, 며칠이 지나 철거반원들이 상인들 앞에 나타나 상점에서 물건들을 강제로 내다 놓으며 살기등등하게 설쳐대는 모습들이 잡혔고, 한편에선 상인들의 당황하고 막막해 하는 모습들이 모두 화면에 실려 나왔다.(아마 몰래 카메라기술을 쓴 듯하다)

    어떻든 이런 보도가 한 번 나오고 나면 ‘운이 없게’ 카메라를 받은 관리는 십중팔구 초상 날이 머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초점방담’ 배후엔 중앙정부인 국무원의 강력한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십 수 년의 방영 기록을 가진 이 프로는 이제는 중국사회에서 준공식적 제도나 다름없다.

    이 프로에서 고발된 지방정부나 기관 사업장들은 그 직급을 막론하고 해당 상급기관이 즉각 사실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보고를 省정부를 통해 국무원에 제출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보도가 나간 지 3일 후인 5월 18일 언론에선 마오타이鎭의 鎭장이 정부 감찰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과 인터뷰를 하였던 부鎭장은 이미 직위해제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CCTV 1의 이 프로를 통해 감투를 잃어버린 관료들을 모두 세면 상당한 수에 이를 것이다. 이처럼 효과가 빠르고 강력한 것이 이 ‘초점방담’ 프로가 중국일반 서민들에게 인기를 누리면서 전국 각지의 끊임없는 제보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이번 회 진행자인 여성앵커는 "마오타이鎭의 정부 지도자가 ‘법에 의거’ 철거를 진행한다고 했는데, 정상적인 영업 행위를 하고 있는 상인들에게서 그들의 동의나 충분한 보상도 없이 강제철거를 진행하는 그 마오타이鎭의 법은 도대체 어떤 법인가?" 라는 반문으로 끝을 맺는다.

    이 같은 유의 강제철거와 관련된 보도는 앞으로도 한 동안 중국 매스컴을 계속 장식할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중국은 현재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분규가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날의 보도는 필자로 하여금 여전히 뿌리 깊은 일부 지방 관료들의 권위주의적 행정 작태와 함께, 점차 증대하고 있는 중국사회의 여론정화 작용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힘의 충돌을 새삼 느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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