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은 행복을 파괴한다"
        2011년 05월 22일 01: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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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1960년대 이후 한국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1인당 GDP는 60년대에 비해 약 250배가 늘어났고, 1996년에는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에도 가입했다. 2011년 현재,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 달러에 이르고, 경제 규모는 세계 13위를 차지할 만큼 경제성장의 모범국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렇지만 이 같은 눈부신 성적표를 받아든 한국인들의 자화상은 우울하기만 하다. 여러 조사를 보면, 세계에서 한국인의 행복도는 최하위권이며(영국 레스터 대학, 103위),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한국인의 70%는 “나는 불행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SERI, 2008).

    실제 통계를 보면, 한국은 자살률은 세계 1위이고(WHO, 2009), 출산율은 가장 낮으며(통계청, 2007), 노동 시간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환경 면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 속도 역시 OECD 최고이다.

    이런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운명은 “어렵게 태어나서 좋지 못한 환경에서 죽도록 일만 하다가 자살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게다가 소득불평등으로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고용 없는 성장으로 실업률은 치솟기만 한다. 결국 경제는 계속 성장했지만, 우리들의 삶은 결코 행복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성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1인당 GDP가 3만 달러가 되고, 경제 규모가 더 커지고, 주가가 더 높아지면 지금 행복하지 않은 우리들의 삶이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새책 『성장숭배-우리는 왜 경제성장의 노예가 되었는가』(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김홍식 옮김, 바오, 16000원)에도 나오지만, 한국보다 더 잘 산다는 구미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성장률을 높이면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고,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주장해왔던 정치 지도자나 경제학자들의 ‘믿음’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대답은 바로 “그렇다”이다. 그리고 경제성장이 이데올로기로 둔갑해 숭배의 대상이 됨으로써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키는 현상을 낱낱이 고발한다.

    우리는 왜 경제성장의 노예가 되었는가

    좌파든 우파든 자신이 사는 사회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다만 어떤 방법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에서만 차이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우파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더 잘 살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경제가 성장하고, 그 믿음을 마치 신앙처럼 숭배한 결과,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살기 좋은 곳이 되었는가? 경제가 성장했다고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경제성장을 당연시하는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극히 평범한 관념에 불과한 경제성장에 온 사회가 과도하게 집착해 경제성장의 관념이 망상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한 강박관념이 살아 움직이는 이데올로기로 둔갑해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개인의 심리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체를 조직하고 시스템을 재생산하는 체계화된 망상(fetish)으로까지 진화했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그리고 이 망상이 정치와 경제는 물론, 문화와 의료, 심리, 지구와 궤도권 우주(돈벌이를 위해 인간이 우주에 저지른 일이 있다는 것이 믿기는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번지며 저지른 실상을 낱낱이 고발한다.

    이 책은 우선 경제가 더 성장해도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이스탈린의 역설’을 다양한 통계와 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제시하면서, 한 발 더 나아가 경제성장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행이 경제성장을 지탱해준다고 지적한다.

    즉 현대 소비자본주의는 사람들의 불만족 상태를 계속 조장해서 스스로의 존재를 유지하며, 광고산업의 본질적 역할이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경제성장이 행복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경제성장으로 행복을 주던 많은 요소들, 즉 개인의 정체성과 가족, 공동체, 환경 등이 현실 속에서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책에서 언급한 구미 선진국의 예를 볼 것도 없이 위에서 언급한 한국의 예를 보라).

    저자는 경제성장에 집착해온 구미권 사회의 강박관념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늘면 더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 명백한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이 현대 자본주의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좌우파를 불문하고 정치권은 경제성장을 부르짖고 개인들은 더 부자가 되려고 안달하는 사회 분위기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러느라 더 불행해질 뿐 아니라 자연환경까지 망치고 있으며, 성장에 집착한다고 해서 여전히 남아 있는 빈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무조건 경제성장을 반대하는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개발도상국이나 극빈국의 경우 여전히 경제성장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사치스런 자본가나 탐욕스런 금융족벌의 권세를 키워주기보다는 올바른 유형의 성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 *

    저자 : 클라이브 해밀턴 (Hamilton, Clive)

    호주의 진보적인 경제학자이자 실천적인 지식인이다. 성장 이데올로기에 대한 치밀하고 예리한 비판과 함께 기후 변화와 복지, 민영화 등 공공정책 분야에서 진보적인 이론을 수립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호주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2009년에는 녹색당 후보로 정치 일선에도 나서는 등 실천적인 지식인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호주국립대에서 역사학과 심리학, 순수수학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으며, 시드니 대학에서는 경제학 전공으로 학위를 받았다.

    1986년 영국 서섹스 대학 경제발전연구소에서 《한국의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호주국립대에서 경제발전론을 강의하였으며, 정부 조직인 호주국립서비스Australian Public Service 산업경제국과 자원평가위원회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1994년 진보 두뇌집단인 ‘오스트레일리아 인스티튜트’를 설립해 2008년까지 14년 간 연구소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호주국립대와 멜버른 대학, 찰스스터트 대학이 공동으로 설립한 ‘응용철학 및 공공윤리센터Centre for Applied Philosophy and Public Ethics’의 공공윤리 담당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역자 : 김홍식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 박사교과과정을 수학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국제경제팀과 삼성전자 국제본부 등에서 근무한 뒤 현재 경제/금융/투자 분야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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