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 그 이상의 후퇴
        2011년 05월 20일 09: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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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5월 한국의 의사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인권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방한한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2011년 2월 한국정부에 ‘모든 인권과, 발전권을 포함한 시민·정치·경제·문화적 권리의 증진과 보호 : 대한민국 실태조사 보고서(MISSION TO THE REPUBLIC OF KOREA)’ 초안을 전달하였다.

    6월 초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될 예정인 이 보고서는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이룩한 성과에도 불구, 한국에서의 표현의 자유 영역은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줄어들고 있다”며, 그 “주된 이유는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 견해를 표현하는 개인에 대한 사법처리와 박해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데 있다”고 밝혔다.

    또한 명예훼손, 인터넷상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국가안보를 이유로 하는 의사표현의 자유 제한, 공무원 의사표현의 자유권, 언론매체의 독립성 등 8개 분야에서 우려를 표하고 제도개선을 권고하였다.

       
      ▲지난 해 인권위가 ‘2010 대한민국 인권상’ 시상식을 개최했으나, 인권위의 반인권적 행태에 저항하는 인권상 수상 거부, 위원장 사퇴 촉구 기습시위가 열리기도 했다.(사진=레디앙) 

    사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의사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는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보고서 내용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 취임 당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2008년 2월 25일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과 그 정부에 대해, 전국 41개 인권단체는 3월 5일 청와대 들머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5개 분야별 인권과제 의견서>를 발표·전달하였다.

    인권단체는 이 의견서를 통해, 새 정부의 수장인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에 대한 비하와 무시를 나타내는 발언”을 통해 드러난 그의 인권관에 우려스러움을 표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인권의 개선과 증진을 위한 어떤 진지한 고려도 하지 않”고, “오히려 국가인권위원회를 순치시키고, 북한인권 전담기구로 삼으려는 의도”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화하려고 시도”를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인권단체들은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의 정책을 수립,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인권상황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야 할” 8가지 새 정부의 주요한 인권정책 방향을 제시하였다.

    민주주의 후퇴와 인권의 위기

    이러한 인권단체의 예견된 우려와 걱정은 이내 현실화되고 만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한미FTA협정의 국회비준과 미국산 쇠고기 협상으로 비롯된 촛불집회를 공권력의 폭력을 통한 탄압으로 일관하는 등 집회·시위 및 언론·의사·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또한, ‘부자감세’, ‘4대강 사업’으로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붓고, 이를 벌충하고자 차상위계층의 건강보험 혜택을 대폭 축소하는가 하면, 저소득층 및 취약 계층의 지원과 보장까지도 줄이는 등 민생·복지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말았다.

    공기업 민영화를 골자로 한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은 한층 더 강화된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변한다. ‘경제위기’를 구실로 노동계의 정당한 요구를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된다”는 등의 강경발언으로 변함없이 반노동과 노동자 적대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사용자를 사용자라고 부를 수 없는’ 현대판 홍길동 비정규직 문제는 “2년 이상 근무한 파견직 근로자도 정규직 전환의 권리가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불과하고, 사용자임을 부인하는 현대자동차에 맞서 싸우는 비정규직 지부의 파업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경북 구미의 KEC와 기륭전자, 동희오토 등 목숨을 건 농성 끝에 미완성의 정규직 또는 원직복직이라는 성과를 쟁취하기도 하였지만, 지금도 1000일 넘게 투쟁하고 있는 재능교육 비정규직 노동자, 콜트콜텍 노동자, GM대우 사내하청 노동자, 홍익대 청소노동자 그리고 이름 없이 고용 중단, 해고 등을 당하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재개발정책의 모순과 공권력의 과잉진압으로 무고한 5명의 생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발생하여 1년 만에 범국민 장례식을 치렀으나, 정부 차원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책임 등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구속된 철거민들은 대법원에서 4~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으나, 여전히 살인진압을 한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0년 12월 1일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의 철거작업이 진행되었다. 남일당의 철거는 용산참사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철거민들만 구속된 채 살인진압의 현장이 묻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지난 3년간의 이명박 대통령 임기동안 그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인권의 후퇴를 절감하는 시기였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의사표현의 자유는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여전히 1996년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도 폐지 권고를 한 바 있는 국가보안법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매카시즘 혹은 빨갱이 낙인찍기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인권 탄압의 상징이다.

    참여정부 시절 범민련,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통일연대 간부들이 합법적인 신분과 방법으로 북측과 접촉해왔던 것을 모르지 않던 정보기관이, 이명박 정부로 바뀌자 뒤늦게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

    2006년 35명이었던 국가보안법 입건자가 2010년 10월 현재 130명으로 크게 늘어났지만, 구속영장 기각률은 지난 3년 동안 43.3%에 달한다. 이는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국가보안법 적용과 남용이 늘어 국가보안법에 의한 인권침해가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겠다.

    방송, 언론뿐만 아니라 인터넷, 노조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극단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심지어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이를 정권의 통제 하에 두려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정권은 종교단체와 교육기관에서도 그 정치적인 입장을 관철시키려하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사회를 무력화시키고 관변단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면서 일상적인 의사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집요하면서도 전 방위적인 통제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법의 지배’(the rule of law)를 가장한 ‘법에 의한 지배’(the rule by law), ‘빨갱이 사냥’(red hunt)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한국의 의사표현의 자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으로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인권위 흔들기

    무엇보다도 가장 극적인 변화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몰락이라고 하겠다. ‘몇 년 전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듯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1년 설립된 이후 우리사회에서 인권의 증진과 보장을 위해 활발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대통령 직속화 논란, 21% 조직 축소, 안경환 위원장의 임기 만료 전 사퇴와 ‘무자격/도둑취임/MB하수인’ 현병철 위원장의 임명, 정부정책에 반하는 진정사건을 둘러싼 입장 대립, 조직의 비민주적·반인권적 운영문제, 문경란·유남영 상임위원과 조국 비상임위원의 사퇴, 자문위원·전문위원·상담위원 69명의 사퇴, 인권위 직원의 1인시위와 이에 대한 부당한 징계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바람잘 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준비하고 있는 토론회와 심포지엄 등이 참가자들의 참가 거부로 무산되고 있고, 인권상과 인권에세이 공모전, 인권논문 공모전, 인권영상 공모전의 수상자들이 잇따라 수상 거부가 이루어졌다. 사실상 ‘명패’만 달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권전문가들이 아닌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미래가 심각하게 우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병철 위원장과 국가인권위원회는 세계인권선언 62주년인 12월 10일 위원장 명의의 보도자료를 통해, “일각에서는 오늘도 우리 위원회에 대한 폄하와 인권위원에 대한 비난이 그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전문위원 등의 집단 사퇴, 인권상 및 인권공모상 수상 대상자 일부의 수상 거부 등 일련의 행동들이 있었”지만, “앞으로도 우리 위원회에 대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겠으나, 사실관계에 대한 명확한 확인없는 일방적·편파적 주장 등은 우리 위원회의 활동이나 결정에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하여, 이러한 국내외 인권공동체의 비판과 우려에 대해 그 의미를 축소하고 폄하하면서 눈과 귀를 닫고 있다.

    현병철 위원장 등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 인권위원의 임명으로 인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인권위 흔들기와 무력화’는 이들의 이후 활동으로 그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게 된다.

    즉 현병철 위원장과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 흔들기와 무력화’로 인해 인권에 관한 법령·제도·정책·관행의 조사와 연구와 권고 또는 의견에 대한 표명의 소극적 대응, 인권침해 진정사건에 대한 소극적 대응, ‘북한인권위원회’로의 전환, 인권시민사회단체와의 협력관계 단절과 반인권적·보수적 단체들과의 협력관계 설정 등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과 위상이 위축되고 훼손되기에 이른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 훼손, 조직축소, 비민주적·반인권적 인권위원의 임명 등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 흔들기과 무력화’에 대한 인권단체의 문제제기와 항의표시에 대해 오히려 시설보호 요청에 따른 경찰 공권력을 동원하여 강제퇴거 시키는 등 다른 국가기관이 인권을 억압하는 것처럼 인권수호기관으로서의 역할과 위상과는 모순되는 반인권적 행태를 보이기도 하였다.

    국가인권위 독립성 및 운영의 민주성 강화방안

    우리사회 민주주의 후퇴와 인권의 위기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 독립성 확보를 위한 대정부 투쟁과 내부역량을 함께 키워가야 한다.

    이를 위해 법적·제도적 미비점의 보완보다도 절실한 것이 바로 우리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차별받고 억압당하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증진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의식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이러한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으로 잃어버린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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