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꿈꾸는 유쾌한 정당과 '새노추'
    "진보양당 지도부 차라리 민주당으로"
        2011년 05월 17일 02: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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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는 2012년이 다가오니 진보정당의 진로를 둘러싼 온갖 이합집산으로 어지럽다. 오른쪽부터 왼쪽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해서 참여하는 사람의 면면을 얼추 안다는 나조차도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새로운 정당에서 한 자리 얻고 싶거나, 권력을 갖고 싶은 사람들의 움직임만 눈에 들어올 정도로 바쁘고 절실할 뿐, 실제 당원이나 조합원들은 뭐가 뭔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한 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도로 통합하는 건지, 내년 총선에서 후보단일화 할 건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밀 건지 이런 물음을 자주 던진다.

    아무리 사회정치적인 정세의 필요성, 한국정치의 중차대한 격변기 등 온갖 수사를 들이대도, 이런 물음에 명료하게 대답할 수 없다면 탁상공론이며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 물음에 솔직하고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게 여전히 불안하고 답답하다.

    노동자들이 만든 민주노동당,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해방 이후 노동자들의 중앙조직인 민주노총이 조직의 힘으로 만든 최초의 노동자 정당이며 진보정당이다. 나는 창당 과정에 직접, 그리고 매우 중요한 역할로 참여했던 기억 때문에 민주노동당을 탈당할 때 마음이 아프고 착잡했다.

    90년대 말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진보정당 추진위원회를 꾸려 각 단위의 합류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때가 생각난다. 더 이상은 야당 들러리 서지 말자는 거, 그리고 IMF 사태와 총파업의 실패를 겪으면서 노동자를 대변할 세력이 아닌, 노동자 자신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에 진보정당 창당은 가능했다.

    나는 노동자였고 노동자의 대표였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노동자라는 계급의식을 강조해 왔다. 그래서 노동자 정당 건설에 동의했고 참여했다. 그러나 현장의 노동자들은 당의 강령을 꼼꼼히 살필 시간도, 경험도 없을 뿐더러, 민주적 절차 같은 건 생활과 동떨어진 이야기였기 때문에, 큰 정치의식보다는 현장에서 함께 투쟁한 동지와 민주노조 집행부를 믿고 가입했다.

    그렇게 조직적인 입당 운동을 벌여 노동자들이 돈 대고, 표도 대 주고, 선거운동도 해 주어서 만든 게 바로 민주노동당이다.

    분당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노조를 만들고, 상급단체를 만든 것은 단결해서 저항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이 저항의 존재뿐만 아니라 스스로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주체가 되기 위해 만든 당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당선시키면서 또 다른 권력의 장이 되었다.

    노동자를 위해 투쟁해야 할 민주노총은 이른 바 민주세력이라는 정권에 속아 정리해고를 받아들였다. ‘민주정부’에 부역한 민주노총 간부들은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급도 되고, 정부 산하기관의 장들이 되어 화려한 변절을 했다. 그들의 출세를 도왔고, 상당수 변절자들을 배출한 정파는 지금도 민주노총을 장악하고 있다.(그래서 이들을 정치집단인 정파가 아닌 계파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하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모두 한 계파가 권력을 잡다 보니 자기 세를 불리기 위해 1인 7표제 같은 무리수들이 생겨나 싹쓸이가 판을 쳤다. 싹쓸이는 패권으로 이어졌고, 노동자들이 만든 민주노동당은 계파의 패권 놀음에 장악되고, 끝 모를 추락을 하더니 결국은 분당이 되었다.

    분당은 노동자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다. 나 또한 분당 이후 탈당을 결심할 때까지 설득해서 함께 입당시킨 노동자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고, 탈당 후에도 다시는 노동자들에게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정당 가입에 신중했다. 민주노동당이 쇄신할 것인가를 지켜봤고, 진보신당이 새로운 노동자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지켜봤다. 다시 노동자들과 함께 입당할 만한 정당을 기다렸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아니요’였다. 노동자 당에 노동자 없이 정파만 살아있고, 그들 정파에 충성하는 노동자만이 살아있는 정당들이 되어버렸다.

    다시 두 정당이 통합하는 게 능사일까?

    그런데 도저히 당을 함께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서 갈라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통합하려는 이유는 뭘까? 지금 진행되는 통합을 보면 굳이 분당까지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분당 사태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한다. 특히 분당을 주도한 진보신당의 대표들은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마치 자신의 책임은 없는 것처럼 다시 통합을 하자고 주장한다. 반한나라당과 반이명박을 위해 통합하자는 게 아니라, 통합을 위해 반한나라당과 반이명박을 명분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진보정당의 힘을 키워서 정권을 잡자는 사람들이 한나라당 반대를 명분으로 민주당과도 손을 잡자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손잡는 건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 함께 힘을 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열린우리당 2중대를 자처하며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해 망했다. 그런데 다시 2중대 노릇을 또 하고 있다.

    심지어 야권연대에 일관성도 없다. 반한나라당 야권연대를 한다면서 호남에서는 ‘민주당 심판’을 내걸고, 영남에서는 ‘한나라당 심판’을 내건 후보단일화를 한 것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다. 그래서 이들의 주장이 진짜 진보정당의 앞날을 걱정하기보다는, 본인들이 잠시 춥고 외로운 걸 못 참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묻지마 통합, 닥치고 통합

    자본가는 노동자들이 삶에 지쳐 정치에 무관심할수록 더 많은 부를 챙긴다. 그래서 진보정당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여 정치에 관심을 가지도록 해서 자본의 본질을 깨우치게 할 책임이 있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무관심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권력을 유지한다. 검찰에 로비해서 노동자만 구속하고, 말 안 듣는 판검사는 더 센 권력한테 로비해서 해결한다. 언론도 장악하려 한다. 내가 노동자로 살아온 30년 동안 이 구조가 변한 적은 한 번 도 없다. 민주당 정권 10년도 마찬가지다. 그 때 노동자 탄압한 경찰, 검찰, 판사는 지금도 승승장구 한다.

    민주당 정권 10년 동안 역대 최고 노동자 구속, 역대 최고 노동자 해고, 역대 최고 노동자 죽음 같은 기록들이 계속 경신됐다. 비정규직법안으로 노동자들 피눈물 흘리게 했고, 온갖 반노동자정책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리고, 구속되고 죽었다.

    특히 손배소송이라는 괴물을 남발해 노동자들이 파업 한 번 한 대가로 몸과 마음, 재산까지 다 빼앗기는 최악의 상태를 만든 것이 이 두 정권이다. 반노동자 정권인 면에서는 한나라당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진보대통합이 과연 무엇을 위해, 누가 앞장서서 하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소리만 꺼내도 통합을 반대하는 거냐고 윽박지르고, 분열주의자라 욕한다. 또 다른 패권이다. 누구도 통합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누가 진짜 노동자를 위한 통합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왜 잘못이고, 분열주의인가?

    결국 남는 것은 누구인가?

    시민사회단체와 운동가들도 진보통합을 위해 애쓰고 있다. 노동자들이 동지라고 부르고 많이 의존한 조직과 사람들이다. 그러나 독재시대가 가고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동자와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체감하는 세상의 변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민주정권 10년 동안 그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래서 그 10년 정권 동안 노동계와 시민사회계가 불화한 적도 많았다.

    시민사회 운동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지금 통합을 외치는 시민사회단체의 동지들은 나처럼 갈 곳도, 피할 곳도 없는 노동자와 다르다는 것이다. 통합 논의 과정에 일정 기간 몸을 담고 열심히 논하겠지만, 결국 이들은 정당이 주축이 된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노조 출신의 배신자들, 자신의 출세를 위해 노동자를 모으는 야바위꾼, 그리고 진보정치한다면서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무늬만 진보들에 대한 정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이다. 그런데 학자들,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무조건 통합을 외치는 바람에 진보정당 운동을 성찰할 기회를 빼앗겨버렸다. 진보정당의 역할을 하지 못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진보란 노동자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고, 노동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매우 중요한 기준이며, 특히 자유주의세력, 개혁세력 같은 용어로 모호하게 섞여 있을수록 더더욱 노동문제는 매우 중요한, 그리고 가장 큰 잣대가 되어야 한다. 반성 없이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잘못은 반복될 것이고 결국 이에 실망한 사람들은 떠나고 또 분노하고 실망한 노동자만 남을 것이다.

    나는 솔직히 지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지도부에 있는 대표급 인사들이 민주당에 가도 별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그 당의 왼쪽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럴 때 그들의 능력이나 존재가 더 빛날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감히 제안 드리면 노동자와 서민은 안중에도 없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확실히 심판하기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주고, 정권교체를 위해 민주당에 입당하면 좋겠다. 기꺼이 박수치며 보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의 왼쪽에 있는 세력으로 훨씬 더 편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 헷갈릴 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 편이 서로를 위해 훨씬 낫지 않은가?

    총선 끝나자마자 한-EU FTA 통과시켜버리는 민주당한테 투정부리는 모습보다는 그 당 안에서 싸워주는 모습이 개혁 정치인인 그들의 정체성에 더 들어맞는다.

    내가 꿈꾸는 정당

    지금 진보대통합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정당을 꿈꿀 수 없도록 상상력을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새로 통합정당이 만들어지면 아마 예전의 강령이 조금 수정될 것이고, 그 밥에 그 나물인 지도부가 적당히 옛날 얘기하면서 결국 도로 민주노동당이 될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 앞두고 후보단일화라는 격랑을 겪으면서 존재감은 사라지고, 대선에선 정권교체 외엔 어떤 진보적인 의제도 모두 쓸려 가버릴 것이다.

    분당 과정에서 어디에도 가입하지 않고 남은 노동자들이 꿈꾼 정당은 도로 민주노동당이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노동자정당, 진짜 진보정당을 꿈꾼다. 그런데 그 상상력을 묻지마 연대, 닥치고 통합을 주도하는 세력이 막아서고 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 반대가 전가의 보도가 되었다. 우리는 꿈꿀 자유를 잃었다.

    그러나 그래도 꿈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계속 꿈꿔야 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동자로 살면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이론은 정확히 몰라도 편하게 사는 길보다 신념으로 살아가는 활동가들이 아직도 주변에 많이 있다. 나는 이들이야말로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진짜 운동가라고 생각한다. 이들과 함께 진보대통합이라는 격랑 속에서도 꿋꿋하게 꿈을 꿀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그런 꿈을 꾸는 노동자들이 시작한 정당이 있다. 아직은 작은 움직임이지만 제대로 된 진보정당, 진짜노동자 정당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이 대통합의 쓰나미에 휩쓸리지 않으며, 조급해하지 않고, 더디 가도 바른 길로 가고자 한다.

    ‘새로운 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가칭 새노추 www.newlabor.kr)’의 시작에 함께 해볼 생각이다. 그 끝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10년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정당, 어렵고 힘들어도 먼 훗날 우리 다음 세대가 진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씨앗이 되는 정당을 만들 것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테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관망하는 것 보다 이 중요한 시기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에 다시 한 번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정당에 가입하려 한다.

    나와 같은 꿈을 꾸는 노동자들이 함께 이 정당을 유쾌하게 꾸려가면 좋겠다. 꼭 정당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정말 치열하게 살고 있는 나보다 더 왼쪽의 동지들과도 함께 만나고 싶다. 말로만 떠들고 한 번도 실행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실제로 신나게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꿈꾸는 정당은 유쾌한 노동자 정당이다.
    내가 꿈꾸는 정당은 노동자가 주인인 정당이다.
    계파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없는 정당,
    투쟁하는 노동자를 계파 조직원으로 만들기 위해 작업하지 않는 정당,
    현장의 노동자가 회의 구조에 들어 갈수 있도록 조직적으로 배려하는 정당,
    내부 권력을 잡기 위해 1인 7표제 같은 거 하지 않는 정당,
    삶과 투쟁에서 검증된 사람이 후보가 되는 정당,
    북한이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말하는 정당,
    같은 값이면 사회적으로 더 약자인 사람이 온갖 직책을 맡는 정당,
    리더들이 잘못하면 가차 없이 징계하는 정당,
    아무도 발언에 억압받지 않은 정당,
    평당원과 지도부의 권력은 같되, 책임과 의무는 지도부가 훨씬 높은 정당,
    정파낙하산이 없는 정당,
    노동자탄압세력과 야합하지 않는 정당,
    계파지도부가 범죄 저질러도 감싸지 않는 정당,

    너무나 하고 싶은 게 많은 정당을 꿈꾼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정당을 꿈꾼다.
    노동자들이여 함께 꿈을 꾸자. 그리고 시작해보자.
    그 꿈을 억압한다면 진보정당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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