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만 열사의 삶과 죽음
        2011년 05월 16일 02: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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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때문이다.
    내가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밑받침은 인간을 사랑하려는
    못난 인간의 한 가닥 희망 때문이다.
    이 땅의 민중이 해방되고 이 땅의 허리가 이어지고
    이 땅에 사람이 사는 세상이 되게 하기 위한
    알량한 희망, 사랑 때문이다.
    나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 1988년 3월 18일, 조성만의 일기에서

    역사상 최초로 혁명을 모색했던 80년대 세대

       
      ▲책 표지. 

    이 평전의 주인공은 ‘조성만’이면서 조성만과 함께 한 시대를 살아온 80년대 세대의 청춘들이다. 요셉 조성만 평전 『사랑 때문이다』(송기역 지음, 오마이북, 15000원)는 조성만 열사의 삶과 죽음, 1980년대 정치·사회·문화적 변화를 배경으로 고민하고 흔들렸던 청춘들의 삶과 사랑, 투쟁을 다루고 있다.

    91년에 대학을 들어간 저자가 88만원 세대이자 촛불세대인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23년 전 80년대 세대의 청춘보고서인 셈이다.

    저자인 송기역 씨는 조성만 평전을 집필하기 위해 2년 가까이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취재하면서 80년대와 조성만을 우리 곁으로 복원시켰다.

    저자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혁명의 길을 모색한 80년대 세대를 조명함으로써, (체제 내적 삶에 포박된 1990년대, 2000년대 세대를 극복하려는) 촛불세대들이 찾으려는 길과 희망에 단서를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격동의 80년대, 스물넷의 짧은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젊은 ‘신부’로 살았던 이름, 조성만. 그는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5·18 광주민중항쟁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던 성당 벗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후 할복 투신했다. 스물넷 짧은 삶이었다. 유서에는 한반도 통일, 미군 철수, 군사정권 퇴진, 서울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신부가 되고 싶었던 대학생

    1984년 서울대 자연대 화학과에 입학한 조성만은 지하서클과 명동성당 가톨릭민속연구회에서 활동했다. 이 시기에 조성만은 인간의 자유와 해방이 과연 무엇이고 어떤 모습인가를 본질적으로 질문하며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던 조성만이 가슴속에 이처럼 뜨거운 불덩이를 품고 있으리라는 것을 당시엔 누구도 쉽게 눈치 채지 못했다.

    특히 신부의 삶을 꿈꾸던 조성만에게 점점 보수화되는 교회의 모습과 고통받는 민중의 모습은 외면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조성만은 1987년 6월항쟁 시기에 서울의 거리와 명동성당에서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고, 그해 12월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목격하고 투표함을 지키기 위해 구로구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이 책은 조성만 자신이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꿈인 한 신부의 삶에 관한 표식이자, 1980년대를 살아간 청춘들의 표식이다.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 조성만의 삶은 ‘인간을 향한’ 치열한 순례의 과정이었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인간을 향한’ 길은 결국 당시 80년대 상황 속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군사정권 반대, 미군 철수 등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과 투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명동성당 가톨릭민속연구회 회원들이 중심이 된 조성만 추모모임 ‘성만사랑’은 매년 5월 15일 기일이 되면 추도식과 함께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그를 기억하는 천주교 단체들은 그날의 고통과 의미를 간직하기 위해 조성만이 투신한 자리에 표지석을 세우려 하고 있다.

    또한 조성만의 죽음을 ‘정치적 순교’로 규정하고, 순교자로 공식 지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명동성당과 천주고 주교단의 반대로 아직은 이를 현실화하는 일이 요원한 상태다. 조성만을 ‘신앙의 스승’이라 부르며 23년 동안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온 문정현 신부는 이 책에서 “언젠가 그가 떨어진 자리에 작은 돌이라도 새겨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조성만 열사는 누구인가?

    1964년 12월 13일(음력) 전북 김제군 용지면 용암리 모산마을에서 조찬배, 김복성의 4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전주 해성고에 입학한 해에 5·18 광주민중항쟁을 겪으며 사회적 자아를 만났고, 고교 시절 중앙성당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의 삶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때 가슴에 품은 신부의 꿈은 죽는 날까지 변하지 않았다. 그의 인생은 사제의 길을 향한 ‘순례자’의 삶이었다.

    1984년 서울대 자연대 화학과에 입학한 후 지하서클과 명동성당 가톨릭민속연구회에서 활동했다. 제대 후 복학을 포기하고 신부가 되려고 했으나 가족의 반대로 뜻을 뒤로 미루었다.

    1987년 6월항쟁 시기에 서울의 거리와 명동성당에서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다. 그해 12월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목격하고 투표함을 지키기 위해 구로구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1987년 가톨릭민속연구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5·18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성당 벗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바라본 후 할복 투신했다. 스물넷 짧은 삶이었다. 한반도 통일, 미군 철수, 군사정권 퇴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등을 외치며 투신 전에 뿌린 유서는 80년대 청년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가 온몸을 던진 자리에는 명동성당과 가톨릭 주교단의 거부로 작은 표지석 하나 없다.

                                                      * * *

    저자 : 송기역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시를 쓰고, 숨어 있는 사람들과 생명의 목소리를 받아 적는 르포작가로 살고 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 사라져가는 세대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대추리 주민들의 삶과 저항을 다룬 시 〈트랙터 순례자들의 노래〉로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허세욱 평전-별이 된 택시운전사》, 《흐르는 강물처럼-우리 곁을 떠난 강,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요셉 조성만 평전-사랑 때문이다》 등이 있다. 2011년 현재 여러 매체에 르포르타주를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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