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선대본 구성인가, 정당 건설인가
    중간 통합파, 기회주의 행태를 비판함
        2011년 05월 16일 08: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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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석회의를 무대로 ‘새 진보정당 건설’ 혹은 ‘진보대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당 건설 과정 치고는 지나치게 긴장도가 떨어지고 무게도 없다. “아래로부터”, “대중의 참여로” 운운하는 말들은 많지만 전형적인 상층 협상만 계속된다.

    이것은 지금의 ‘통합’ 논의가 애초부터 단추를 잘못 꿴 탓이다. 이것은 오로지 지난 선거 결과 평가 그리고 다음 선거의 타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실제로는 ‘총선 선대본 구성’으로만 보이는 목표를 ‘정당 건설’이라 포장하며 추진하는 상황이 작년 지방선거 이후부터 거의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결정을 해도, 어떤 성명을 내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는커녕 속 보이는 상투적 정치 행위로만 다가오는 것이다. 각 정당 안에서 혼란만 가중되고 막상 정당 간 논의 자체는 가닥을 잘 잡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필요한 정당’과 ‘필요하지 않은 정당’

    연석회의의 목표가 정말 새로운 ‘정당’ 건설인가? 그렇다면 그 논의에는 지금 빠져 있는 한 가지 쟁점이 의제로 추가되어야 한다. 그것은 새로 건설될 진보정당이 2010년대의 한국 사회에 ‘필요한 정당’이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정당은 선관위에 등록만 하면 존재할 수 있다. 선거에 후보를 내고 당선자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정당들 중에는 당대의 그 사회에 ‘필요한 정당’이 있는가 하면 ‘필요하지 않은 정당’도 있다. 그럼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제도권 진출 여부나 의석 수가 중요한 한 요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주된 기준은 아니다. 당장은 원내 의석이 없더라도 그 사회에 ‘필요한 정당’일 수 있고, 그래서 언젠가 원내 진출은 물론 주요 정당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닐 수 있다. 2004년 이전의 민주노동당은 그 좋은 예다.

    정반대로, 의석이 있더라도 아무런 잠재력도, 하다못해 지속 가능성조차 갖지 못한 정당도 있을 수 있다. 대한민국 의정사에 명멸한 수많은 원내 군소정당들은 이에 속한다.

    주된 기준은 무엇보다도 ‘권력과의 관계’다. 정당은 ‘현 권력의 담지자 혹은 그 의미 있는 참여자’이거나 아니면 ‘현 권력에 대한 의미 있는 반대 세력’, 더 나아가 ‘미래(‘차기’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없는) 권력의 의지와 비전을 갖추고 이를 준비하는 세력’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필요한 정당’이고, 이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정당’이다. 정당이 무엇보다도 권력을 획득하자는 조직이기에 그렇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현 권력에 대한 입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명박 정권은 이미 레임덕에 빠졌고, 대선 국면은 벌써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2012년에 등장할 새 권력에 대한 입장이다.

    안타깝게도 진보정당이 2012년의 그 새 권력이 될 가능성은 전무하다(필자가 2012년 지구 대격변 같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까지 염두에 둘 이유는 없을 것이다). 새 권력은 다시 한나라당의 것이거나 아니면 범민주당(국민참여당까지 포함하는)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어떤 정당이려면 결국 다음의 두 길 중 하나를 분명히 선택해야만 한다. 하나는 범민주당의 집권 과정에 적극 참여해 미래 범민주당 권력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범민주당 권력이 등장하더라도 (물론 한나라당 권력이 등장할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권력에 맞선 적대자로서 성장하면서 독자적인 미래 권력 전망을 다져가는 것이다.

    진보신당 내 중간-통합파의 정치적 기회주의

    진보신당 안에 ‘통합파’와 ‘독자파’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진보신당 안에 새 정당 건설 자체를 부정하는 흐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독자파’는 적절한 명칭이 아니다. 오히려 새 정당 건설의 방향을 서로 다르게 잡는 세 통합파가 있다고 봐야 한다. 굳이 말하면, ‘우-통합파’가 있고, ‘중간-통합파’가 있으며, ‘좌-통합파’가 있다.

    우-통합파는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까지 통합 대상으로 보는 흐름이다. ‘복지국가 단일정당’을 주장하는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중간-통합파는 민주노동당을 주된 통합 대상으로 바라본다. 좌-통합파는 민주노동당을 통합 대상으로 열어놓고는 있으나 ‘도로 민노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진보신당 정기당대회 결정을 관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는 흐름이다. 이들은 연석회의 참여 단체 전체가 이러한 원칙에 합의하는 데 실패한다면 일단 이에 동의하는 세력만으로 새 진보정당 건설을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필자는 이 중 좌-통합파에 속한다. 이러한 필자의 입장과 우-통합파 사이에는 무슨 강 정도가 아니라 대양(大洋)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중간-통합파보다는 우-통합파를 존중한다. 왜냐하면 후자는 자기들 나름대로 한국 사회에 ‘필요한 정당’이 되기 위한 한 길을 선택하고 그것을 대중 앞에 분명히 내세우지만, 전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간-통합파에게서 필자는 가장 나쁜 기회주의의 냄새를 맡는다.

    우-통합파는 범민주당을 미래 권력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 국민참여당과 합당을 해서든 연립정부를 수립해서든 그 권력에 참여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신당 내 우-통합파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 내 다수의 입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장래의 통합정당은, 더 이상 ‘진보정당’이라 불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 상황에서 ‘필요한 정당’일 수는 있다.

    반면 좌-통합파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든 범민주당이 집권하든 그 미래 권력에 맞서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야당으로 활동하며 성장하자는 것이다. 즉, 좌-통합파는 우-통합파가 그 일부가 되고자 하는 미래 권력에 맞설 의미 있는 대항 세력이 됨으로써 이 시대에 ‘필요한’ 또 다른 정당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이러한 지향은 진보신당 정기 당대회에서 “민주연립정부에 대한 반대”라는 문구 삽입을 통해 당론으로 채택되었다.

    당대회 토론 과정에서도 확인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정은 범민주당 세력과의 후보단일화 협상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 노림수는 민주연립정부 노선과는 정반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나라당 정권보다는 범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는 게 반자본주의 야당이 성장하기 더 좋은 조건이 될 것이라는 전술적 고려에 바탕을 두고 이뤄지는 것이다. 2012년에 등장할 권력에 맞선 가장 의미 있는 대항 세력이 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우-통합파와 좌-통합파는 각각 정반대 방향에서 한국 정치에 ‘필요한 정당’을 건설하려 한다. 둘은 결국에는 서로 결별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안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정당’이 무엇인지에 대해 각자 분명한 전망을 갖고 이를 실천하려 한다는 점에서 어쨌든 상대방의 진지함을 존중할 수는 있다.

    문제는 중간-통합파다. 이들은 새 정당과 미래 권력의 관계에 대해 답변을 회피한다. 이들의 주된 통합 대상은 민주노동당인데, 지금 민주노동당의 다수는 범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추구한다. 큰 방향에서 진보신당 내 우-통합파와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간-통합파의 시나리오에 따른 새 당에서는 범민주당 권력을 수립하고 이에 참여하려는 입장이 다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중간-통합파는 이런 빤한 사태 전개를 애써 외면한다. 그들이 우-통합파나 민주노동당 다수파의 전망에 반대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다. 미래 권력에 대한 입장은 총선 이후에 결정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말만 한다. 그럼 총선 이전에 만들자는 소위 진보대통합당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정당은 미래 권력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없이 총선에 뛰어드는 정당이 되는 것인가?

    이러한 정당이야말로 ‘불필요한 정당’이다. 원내 의석을 10석을 얻든 20석을 얻든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정당 간판을 내건 총선 선대본일 뿐이며, 멀지 않은 시기에 정리 혹은 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총선을 일단 넘기고 나면 결국 당 내 다수의 뜻대로 범민주당 집권연합에 합류하게 되든가 아니면 대선을 앞두고 다수파와 소수파가 다시 분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남을 속이는 게 아니라면 자신을 속이는 길일뿐이다. 좋게 보아줘도, 오로지 국회 의석만을 위해 책임 있는 정치적 선택을 어떻게든 총선 이후로 미루려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행태야말로 정치가로서 책임 윤리의 회피다. 이념이니 노선이니 하는 문제를 다 떠나서 이러한 기회주의적 흐름은 역사의 작은 일화나 각주 외에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계속)

    * 이 글은 5월 18일에 발간될 <좌파저널>(leftjournal.tistory.com) 창간준비 3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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