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파견 판례 쌓여도 자본 꿈쩍 안해
    비정규직 집단소송 등 저항, 힘 부쳐
        2011년 07월 19일 08: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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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2일이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므로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는 취지의 대법 판결이 난 지 1년이다. 그 동안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법원이 동일한 취지의 판례를 계속 내놓고 있으나 자본은 꿈쩍하지 않고 오히려 비정규직 확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집단 소송을 내고, 노조에 대거 가입하는 등 저항하고 있지만, 아직 판례는 그들을 정규직으로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학계와 야권이 중심이 된 정치권의 지지 여론은 확산되고 있으나, 정규직 노조의 대응은 여전히 미흡한 구석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법부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자본 권력의 위세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7.22 대법판결 그 후 1년

    지난 해 7. 22 대법판결 이후 각급 법원에서는 대법의 취지와 똑같은 판결을 계속 내고 있다. 7월 22일 이후 눈에 띄게 변화된 부분이다.

    지난 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은 현대차아산 사내하청 노동자도 불법파견이므로 현대차 정규직으로 간주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한 달 뒤인 지난 해 12월 창원지방법원도 한국지엠(옛 GM대우) 창원공장의 불법파견 사실을 확인해줬다.

    이어 올 2월 고등법원은 지난해 7.22 대법원 파기환송 건을 대법판결 취지에 맞게 다시 확정했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 1일 대법원은 금호타이어에서도 불법파견 사실이 있다고 판결했다. 특히 이 판결은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이 아닌 포장과 지게차 업무를 하는 비정규 노동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7월 26일 ‘대법 판결’ 이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금속노조.(사진=신동준)

    잇따르는 법원 판단은, 제조업에서 비정규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 불법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법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 이상우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실장은 “제조업 생산공정의 하도급을 반복하고 있는 재벌 대기업의 관행이 불법부당하다는 사회적 기준이 확실히 자리를 잡은 셈”이라고 강조한다.

    노동자 2천5백명 집단 소송

    이처럼 누적되고 있는 판례에 따라 확실히 자리 잡힌 ‘사회적 기준’은 제조업체 내 비정규 노동자들이 정규직화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분명한 명분이 됐다.

    실제로 전국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1천9백여 명은 법원에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쌍용차, 금호타이어, STX조선,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하청노동자들도 연달아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기아차와 현대하이스코의 하청노동자들도 조만간 집단적인 소송을 낼 계획이다.

    현재까지 인원만 모두 2천 5백 여 명에 이를 정도다. 이들은 모두 원청의 직접고용, 즉 정규직임을 확인하는 근로자 지위 확인과 함께 비정규직 차별에 따라 그 동안 적게 받아온 임금을 청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법원 판결 이후 눈에 띄는 변화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행동은 노조가입 ‘붐’이었다. 길면 수 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집단 소송 결과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쌓여가는 판결문 취지대로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할 것을 원청 사용자에게 촉구했다. 또 이들은 ‘노동조합’으로 몰려들었다.

    울산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1천3백여 명이 지난 해 7월 말부터 석 달 동안 새로 금속노조에 가입한 게 첫 출발이었다. 대법 판결 이전 6백 명 수준이던 조합원 수와 비교하자면 노조 조합원 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에 가입한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은 지난 해 11월, 25일 동안 점거파업 등의 격렬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이들의 요구는 ‘즉각 정규직화’였다. 지난 해 12월 1일 한국지엠 하청노동자 2명도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64일 동안 부평공장 정문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한 노동자는 45일 동안 단식도 벌였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강병재도 지난 3월 7일 송전탑에 올라 88일 동안 대우조선에 ‘직접고용’을 촉구했다.

    노조가입 늘고 극한 싸움도 늘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는 1년 내내 정치권을 움직이기도 했다. 이에 야당 국회의원 81명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지난 5월 18일 공동발의했다. 여기에는 특히 사용자 범위를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과 영향력이 있는 자로 넓히라는 대목이 있다. 이른바 ‘원청사용자’가 이에 해당된다.

       
      ▲지난해 11월24일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열린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사진=신동준)
     

    정치권이 직접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지난 달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야당 국회의원들은 ‘사내하청 불법파견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제도개혁과제를 도출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원하청 공동교섭 제도화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과 영향력이 있는 자를 사용자로 간주토록 사용자 개념 확대 △사내하도급 실태조사에 노조 참여 보장 △불법파견인 경우 즉시 직접고용으로 간주 등의 제도개혁 방안들도 쏟아져 나왔다. 

    정치권도 움직이고 학계도 나서다

    하지만 1년 동안 들끓었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비정규 조합원들이 싸움을 벌인 어느 곳도 정규직화가 실현됐다는 소식은 없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은 지난 해 11월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 이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도 못했다.

    금속노조는 지난 해 11월 22일 정기대의원대회 때 “상시업무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걸고 전 조직적인 투쟁을 진행한다”는 사업계획을 전체 사업계획 안에 담아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7월 현재까지 사실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상우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실장은 “현대차 외의 다른 곳으로 정규직화 싸움이 확산되는 속도가 늦어지면서 금속노조 전체적인 투쟁을 만들지 못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어 이 실장은 “사내하청 노동자가 법적 소송에 집단적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아니거나, 싸움에 나선 비정규 노동자가 없는 곳에서는 불법파견 정규직화 관련 투쟁이 확산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는 동안 자본은 오히려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을 향해 ‘보복성 탄압’으로 맞섰다. 현대차는 비정규 조합원들의 파업 종료 뒤 48명(울산), 41명(아산), 15명(전주)의 비정규 조합원을 해고했고 정직이나 감봉, 견책 등을 포함해 1천 건에 달하는 대규모 징계가 단행했다. 현대차는 비정규 조합원들에게 2백억여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대기업 사용자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기업들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뿐만 아니다. 자본은 도리어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자본은 노동조합 조합원이 한 명도 없거나 극소수여서 힘이 부족한 곳 위주로 비정규직을 늘리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기아차 모닝공장, STX중공업 창원공장,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현대하이스코 울산공장 등이다. 모두 정규직 제로(0) 공장이다. 반대와 저항에 부딪힐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 위주로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노동조합 조합원이 있는 사업장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올 5월 25일 금속노조가 정리해 발표한 고용현황 자료에 따르면 케피코, 대원강업, 에코프라스틱, 한국로버트보쉬, 보쉬전장, 동원금속 등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이 있는 주요 사업장의 경우 생산직 대비 사내하청 노동자 비율이 ‘제로(0)’다.

    현대차(20%), 기아차(11.3%), 한국지엠(23.7%) 등도 생산직 대비 사내하청 고용 비율이 낮지 않지만 이른바 ‘무조노’ 사업장과 확실히 비교된다. 자본이 ‘무노조’를 선호하거나 노조 힘을 최대한 약화시키려는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한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6대 조선소의 사내하청 노동자 비율이 모두 50%를 넘는다. 현대삼호중공업은 71%, STX조선은 무려 81%를 넘는 비율을 보인다. 생산직 노동자 10명 중 5~8명이 사내하청이고, 정규직은 2~5명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금속노조는 올 해 중앙교섭 요구안으로 ‘2년 이상 지속된 업무의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를 제출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이 같은 비정규직 단계적 정규직화 관련 문구는 의견접근안 안에 어떠한 문구로도 담기지 않았다. 지난 11일 의견접근한 뒤 조합원 총회에서 승인된 한국지엠 노사 잠정합의안에도 애초 별도요구였던 ‘비정규직 정규직화’ 관련 문구는 없었다.

       
      ▲4월 13일 열린 ‘현대차 비정규직 부당징계, 노조탈퇴 강요에 대한 인권 법률단체 진상조사단’ 기자회견(사진=신동준)
     

    이와 관련해 이재인 노조 단체교섭실장은 “금속노조 소속 단위 대부분은 정규직 노동자를 구성원으로 하고 있어 비정규직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보지 않는 경향이 아직 크다”고 말한다. 이는 ‘산업노조’를 표방한 금속노조가 풀어야 할 향후 과제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금속노조는 정규직 문제만?

    이제 곧 대법판결 1주년이다. 비정규 노동자 70여 명은 이에 맞춰 18일부터 23일까지 버스 두 대를 나눠 타고 전국순회투쟁을 시작했다. 23일 금속노조는 서울 도심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도 계획 중이다. 이들의 이번 행사는 이른바 ‘비정규직 없는 공장만들기 희망버스’다.

    이상우 실장은 “노조가 전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동안 자본은 정규직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사내하청으로 그 자리를 채워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강조한다. ‘비정규직 없는 공장만들기 희망버스’ 일행은 “지금은 비정규직 문제를 다시 사회쟁점화 시키고 직접고용 쟁취를 위한 전 조직적 연대와 투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원재 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은 “금속노조 등 노동계에서 정규직까지 포함해 조직적 태세를 갖추지 못하는 동안 정부와 자본은 현 파견법을 바꿔 제조업에서 금지하고 있는 파견을 이참에 아예 합법화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 판결과 이후 잇단 각급 법원의 판결, 그리고 호의적인 여론과 정치권의 움직임까지 있었지만 대기업 사용자의 태도를 바꾸는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문제는 역시 정규직 노동자까지 가세한 금속노조 차원의 조직적인 투쟁 여부다. ‘산업노조’임을 자임하는 금속노조가 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고 앞으로 무엇을 기획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져야 한다.

    * 이 글은 금속노조 기관지 ‘금속노동자'(www.ilabor.org)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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