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양심적 체벌 거부를 선언한다"
        2011년 05월 13일 05: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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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가 된 첫 해. 우리 반에는 수업 시간 때마다 큰소리로 욕을 십여 번씩 하는 학생이 있었다. 권위에 대한 반발심이 굉장히 강했고, 학교에서 그런 반발심은 모두 내게로 향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굉장히 잘하던 그 학생에겐 따르는 학생도 많았고 신규 교사였던 내 깜냥으로는 내 한 몸 주체하기도 벅찼다.

    "때려서라도 녀석을 바로잡아야지"

    시간이 흐를수록 학급 내 분위기는 그 학생과 나의 기싸움이 되어갔고 학교 생활은 말그대로 엉망이 되어갔다. 그렇게 2학기 중반을 지날 무렵 내게는 ‘힘으로라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내일은 그 녀석을 때려서라도 잡아야지’라는 다짐을 했다.

    "oo, 오늘 남아."

    사실 그 학생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매일매일 방과 후에 나와 단 둘이 교실에 남게 됐다. 그 전날 체벌을 해서라도 이 학생을 ‘잡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나는 교사 책상 위에 매를 준비해두었다. 마음을 먹고 때리겠다고 그 학생을 불러 옆에 세워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니가 이러는 건 더 이상 안된다."라며 이야기를 하고 이제, 책상 아래에 있는 팔을 들어 매를 들어야 하는데……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체벌에 ‘실패’한 나는 그 학생을 그냥 돌려보냈다. 다소 의아한 눈빛으로 집에 돌아가는 그 학생의 등을 보며 착잡한 마음이 들었었다. 내가 무능한 교사인 것 같은.

    나는 며칠 동안 매일같이 그 학생을 체벌하는 것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매번 내 팔에 매는 들리지 않았고 결국 나는 그 학생을 체벌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 이후로 나는 스스로를 안 때리는 교사가 아니라 ‘못 때리는 교사’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안심하기도 했다. ‘난 정말 힘들어도 학생을 때리진 않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이듬해 나는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직접)체벌을 하지 않겠다고 처음부터 선언하고 한해살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쉽진 않았다. 상대적으로 통제가 안 되는(?) 우리 학급에 대해 불만스러워 하는 사람도 많았고 질서있는 모습의 다른 반을 볼 때면 내 스스로도 우리 학급에 대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여전히 내 깜냥은 부족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한 장면. 

    꿀밤 한 대 맞고 엉엉 울던 아이

    그러던 중, 초겨울이었나? 교무실에 내려갔다 왔는데 한 학생이 엉엉 울고 있고 다른 학생들이 에워싸서 위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더니 옆 반 교사에게 꿀밤을 맞았다고 했다. 맞은 학생을 위로하고 자초지종을 더 알아보고, 또 수업을 하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에 빈 교실에서 혼자 남았을 때야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이 아이들에게 꿀밤 한 대는 큰 일이 되었구나.’

    그제서야 학생들이 서로 장난치거나 싸울 때도 때리는 일이 줄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폭력이 그들에게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게 된 것일까, 라는 생각에 반쯤은 뿌듯해 하고 반쯤은 내년부터 혹은 그 이후에 겪을지도 모르는 폭력에 그들에게 더 많은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 한해 한해를 보내며 나는 그 첫 해 내가 차마 때리지 ‘못한’ 그 경험에 몇 번을 감사했는지 모른다. 30여 명의 사람들을 한 공간 내에서 몇 시간씩 매일 통제하고, 그들이 원치 않는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다.

    아무리 활동을 재미있게 구성하고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더라도 학생들에게 선택권이 없는 이상 강요이기 때문이다. 강요하는 한 사람과 강요받는 다수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벌이는 심리적 전쟁 속에서 체벌은 정말 유혹적이다.

    그 유혹을 선택하는 사람과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측면에서는 별다른 점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체벌 역시 하나의 행위이고, 행동의 패턴으로 교사에게 새겨지게 된다. 체벌의 피해자인 학생에게 평생 남는 상처가 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체벌, 그 달콤한 유혹

    학생들은 내가 때리지 않아도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쳐다보면 "살려주세요"라며 손을 모아 빈다. "많이 때려주세요."라는 부탁아닌 부탁을 하시는 학부모님들도 많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학생을 때려야 한다고 심각하게 충고하는 교사들도 있다. 학교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직업을 밝히면 "나 학교 다닐 때 되게 많이 맞았는데."라고 말하곤 한다.

    즉, 사람들에게 나는 누군가를 일상적으로 때릴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숙제를 안 했다고, 복도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고 학생들은 으레껏 내가 자신들을 때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그 눈빛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마치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운전하다가 급정거를 했을 때 보행자가 날 바라보는 눈빛처럼 위협적 존재에 대한 적대와 공포가 그 눈빛에는 담겨있다.

    나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더 이상 체벌하기를 강요당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내게 폭력을 행하지 않을 자유는 있지 않은가.

    학생들의 시험성적이 체벌하지 않고서는 높아지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체벌 없이는 숙제를 해오지 않는다면 그건 체벌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체벌을 하고자 마음을 먹고 시도를 했다는 고백은 사실 이미 내 마음으로는 그 학생을 수십 번 때리고도 남았다는 부끄러운 고백이다. 부끄러움을 뒤로 하고 나는 선언하고자 한다. 진정한 교육을 행하는 스승을 기리는 날이자 평화를 위한 행동인 병역거부를 기리는 세계병역거부의 날인 5월 15일.

    교육과 평화에 대한 그간의 고민들의 종합으로 나는 선언한다. 모든 직간접 체벌을 학생들에게 강제하지 않을 것을. 그리고 나의 모든 선택지에서 체벌을 제외시킬 것을. 학생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소망을 지켜낼 것을 나는 오늘,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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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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