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 있는데, 왜 나라가 지키게하지 않나요?"
        2011년 05월 12일 05: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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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날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신촌에 모였다. 청년유니온에서 단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알려주기 위해 진행하는 사업에 참가하려고 신촌역 근처에서 2시에 모임을 가졌다. 오늘을 위해 몇 주 전부터 여러 차례 회의를 열고, 홍보물을 만들고 사업에 참가할 인원을 뽑는 등 준비를 철저히 했다.

    어린이날이기 때문인지 휴일을 즐기려고 나온 사람들이 신촌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런 날은 우리에게 결코 호의적인 날이 아닌데, 그 이유는 사람이 많으면 편의점도 손님들로 북적거려서 제대로 된 설명을 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편의점 노동자들이 손님들을 적게 상대할수록 우리가 활동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난다.

       
      ▲청년유니온 홍보자료.

    주휴 수당 받는 사람 거의 없어

    실제로 몇몇 편의점에서는 손님이 너무 많거나, 매장에 물건을 채워 넣는 등의 바쁜 업무로 인해 일하는 분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럴 경우 우리가 준비했던 홍보물과 체불임금을 받아낸 사례가 적힌 종이만 두고 나왔다.

    우리는 회원들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 지역을 나누어서 활동하기로 했다. 신촌과 홍대 입구 등으로 책임 지역을 나누고,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편의점들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간 편의점은 20대로 보이는 여성분이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간단한 질문이 적힌 설문지를 작성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설문지의 질문 사항은 ‘현재 받고 있는 시급이 얼마인지’, ‘1주일에 만근을 하면 받을 수 있는 주휴수당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그리고 ‘일하는 중에 돈 계산이 잘못되어 금액이 맞지 않을 경우 부족한 돈을 직접 채워 넣고 있는지’ 등을 묻는 내용이 적힌 종이였다.

    답변을 보니 시급은 최저임금 보다 약간 더 받았지만 ‘주휴수당’은 받지 못하고 있었고, 그 금액도 수십만  원에 달했다. 대부분의 편의점 상황이 다르지 않았는데, 어떤 곳은 최저임금도 지키지 않는 것을 물론 ‘주휴수당’마저 지급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편의점은 30대를 훌쩍 넘긴 것으로 보이는 여성분께서 혼자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설문 조사를 부탁한 후 우리의 활동에 대해 설명을 했다.

    “청년유니온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처럼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분들을 위해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법이 있는데, 국가가 왜 안 지키나요?

    설명을 드리자 우리의 활동을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설문지 작성이 끝나고 설문에 답변한 것을 보니 시간당 최저임금이 법정 기준보다 200원 부족했다. 게다가 ‘주휴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나이가 비교적 많아서 여쭈어 보았다.

    “여기서 어느 정도 일하셨나요?”
    “꽤 오래 했어요.”

    일한 기간을 물어 본 이유는 못 받은 돈이 얼마인지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대가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눈치여서 대략 6개월 일했다는 가정하에 계산을 해드렸다. 계산을 해보니 얼추 40만 원이 넘게 체불되고 있었다. 적은 액수가 아니라서 이 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고 하자 이런 반응이 왔다.

    “이렇게 지켜야 할 법이 있는데 왜 국가에서는 지키도록 하지 않고 있나요?”

    위의 내용을 여러번 반복해 우리에게 항의를 하듯 말했다. 생각해 보면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이 손을 놓고 방치하듯 하기 때문에 우리가 행동하는 것인데, 그 분은 그런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결국 받지 못한 돈을 사업주에게 받아야 겠다고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적은 액수가 아니지만 그 돈을 요구함으로써 겪을지도 모르는 사업주와의 갈등을 걱정하는 눈치다. 이런 경우 아쉽지만 그만 나갈 수밖에 없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돈 벌려고 이 일 하는 거 아녜요"

    밖으로 나와서 길을 건넜다. 다른 편의점을 찾기 위해 계속 주변을 살폈다. 편의점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함께 이동하던 청년유니온 회원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멋있게 퍼머한 젊은 남성이 혼자 손님을 맞고 있었다.

    설문지를 건네서 작성을 부탁했다. 설문을 받은 후 그 분에게 우리의 활동 내용을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상대는 매우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근로기준법에 대한 설명에 맞장구도 치면서 경청했다. 연락처를 물어 봤더니 자연스레 적어 주기까지 한다. 이런 경우는 참 드문데 이렇게 일이 잘 되면 우리도 기분이 좋다.

    이런 방식으로 여러 군데를 찾아 들어갔다. 이렇게 발품을 팔며 만난 분들 가운데 특별하게 두 명이 기억에 남는다. 그 중 한 명은 회사를 다니다가 편의점 일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편의점에서 일한 기간이 두 달 정도 됐다고 말했다. 두 달 동안 받지 못한 ‘주휴수당’을 계산해 드렸는데 그 금액이 18만 원 가량 되었다.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분에게 이 돈을 받을 수 있으니 함께 요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독특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회사 다니면 이것보다 더 받을 수 있어요. 돈 벌려고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이 말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순간 당황이 되었고, 말문이 막혔다. 당연히 받아야 하고 받을 수 있는 돈인데, ‘과거의 화려함’을 근거로 쉽게 권리를 포기하는 그 분만의 논리가 독특했다.

    돈의 액수도 일한 기간이 길지 않아 18만 원만 체불된 것이다. 앞으로 그 곳에서 장기간 일하면 체불액도 그만큼 올라가게 된다. 단순히 과거의 화려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현재의 손해를 간단히 포기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경우도 별다른 이야기 없이 나올 수밖에 없다.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기억에 남는 또 다른 편의점 노동자가 있다. 그 분은 편의점에서 10개월을 일하고 있었는데, 못 받은 주휴수당을 계산해보니 140만 원이 넘었다. 액수가 적지 않아 받을 수 있도록 해보자는 내용으로 설득을 해보았는데, 눈만 ‘멀뚱멀뚱’ 하면서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쯤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이 분들이 일하는 것은 본인이 돈벌기 위함인가, 아니면 사업주에게 헌신하기 위함인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권리조차 ‘향유하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들. 심지어 권리를 찾기 위한 과정에서 혼자 하기 힘이 들면 우리가 도와 주겠다고 먼저 손을 내밀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

    법언에 ‘권리 위에 잠든 자는 보호 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하지 않으면 항상 손해를 보게 되어 있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화려한 ‘스펙’이 아니라, 부당한 현실을 겪었던 사람들이 모여 함께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편의점 방문을 2시간 정도 한 후 흩어져 홍보 활동을 하던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모였다. 모두들 얼굴에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말수도 적어져 입을 가만히 다문 채 자료를 취합하는 모습만 바라보는 분도 있었다.

    자신들의 권리 찾기에 두려워하고 무신경한 사람들을 만나면 기운이 많이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의 활동이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느껴졌다. 한 명씩 만남을 가질수록 인식의 변화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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