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사용자, ‘물타기 술수’ 중단돼야"
        2011년 05월 12일 09: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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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 산하 노동시장 선진화위원회가 오는 5월 13일에야 비로소 ‘사내하도급 근로조건 개선 가이드라인’에 대한 공익위원안을 처음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1월 초 고용노동부가 청와대 업무보고시 약속한 가이드라인 확정 시기 3월 말을 훌쩍 넘겨 이제야 공익위원 초안이 검토되는 것이다.

    가이드라인 발표 지연에 숨어 있는 의도?

    무슨 속사정이 있기에 권고안에 불과한 가이드라인의 발표가 이토록 늦어지는 것일까? 노사정위는 공식적으로 가이드라인 세부 내용에 대한 노사간의 이견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속사정은 분명 다른 것으로 판단된다.

    노사정위가 용역 발주한 ‘(가칭) 사내하도급근로자의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하여 수급사업주와 원사업주가 강구할 조치에 관한 가이드라인(안)’ 보고서 내용이 언론에 일부 공개되면서 정부와 재계의 반발과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경총과 전경련은 용역보고서 유출을 트집삼아 가이드라인 논의 자체를 무산시키려고 애쓰고 있으며, 고용노동부와 노사정위는 공익위원안 마련을 최대한 지체시키려 하고 있다.

    5월 말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임시국회에서 여야간 노동법 개정안과 개악안이 격돌하게 될 정치국면을 틈타 용역보고서의 핵심적인 내용을 뺀 채 실효성이 전혀 없는 ‘허구적’ 가이드라인을 슬그머니 내놓겠다는 의도가 짙게 엿보인다. 한마디로 용역보고서에 근거한 가이드라인 원안을 최대한 ‘물타기’하여 결국 ‘맹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노사정위 회의 모습(사진=노사정위원회) 

    사각지대 사내하청 노동자의 최소 안정 조치

    노사정위가 아직도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고 있지만, 가이드라인 용역보고서의 세부 내용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지난 2월 17일 노동시장 선진화위에서 발표된 가이드라인 용역보고서의 결과는 수급사용자 변경시 고용승계 노력의무, 근로조건 저하금지 노력의무, 원하청 근로자간 임금격차해소 노력 권고, 사내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근기법 준용, 원하청 사업주와 사내하도급 노동자가 참가하는 노사공동협의회 구성 및 의견개진권 부여 등과 같은 의미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정부 가이드라인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 또한 분명하다. 당사자에 대한 법적 의무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이를 악용하는 경우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매뉴얼로 악용될 소지 또한 존재한다.

    특히 원사업주가 실질적인 사업주로서 지휘와 명령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가이드라인이 형식적인 조치에 머물고 외형상으로 정상 도급을 인정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이드라인이 지닌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임금 및 근로조건의 차별을 최소화하고 원사업주의 고용 책임을 높일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정장치가 시급하게 요구된다.

    어떻게 보면 불법파견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일면 행복한지도 모른다. 적어도 사법부에서조차 흐름생산공정에서 정규직과 함께 일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는 판결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진성도급, 혹은 완전도급이라는 이름으로 불법파견에 대한 법적 소송조차 낼 수 없는 약 30만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지금도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법적 보호의 완전한 사각지대에 서 있는 이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과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현 정권 하에서 불가능한 ‘이상적인’ 법률 개정안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임금 및 노동조건의 차별을 축소하고 계약해지 시 고용 승계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최소 안정 장치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은 공익위원들이 대충 정부와 재계의 눈치를 보면서 얼렁뚱땅 만들 사안이 아니다.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사회적 공론화의 길을 열어야

    지금까지 금속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은 수 차례에 걸쳐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고용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을 지니고 있는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와 사회적 공론화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노사정위와 고용노동부는 이미 제출된 용역보고서 결과를 공개하고 있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익위원안은 이와 무관하게 논의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지난 4월 29일 진행된 노사 추천 전문가 의견청취조차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하였고 공익위원안 확정 일정과 이후 사회적 여론수렴 계획을 전혀 세우고 있지 않다. 무엇이 두렵기에 노사정위 활동을 이토록 철저하게 장막 속에서 진행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려고 하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명실상부한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원청사업주의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책임을 높이고 임금 및 노동조건의 차별을 최소화하는데 실효성을 발휘하는 가이드라인을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원하청 간 차별 및 격차 축소와 함께, 사내하청 노동자의 임금, 노동조건과 고용에 대한 원하청업체의 공동책임, 사내하청업체 변경시 고용 승계는 물론, 기존 임금 및 노동조건의 보장, 원하청 노사 모두가 참가하는 공동노사협의회의 구성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4개월을 기다려온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 공익위원안이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노사정위에서 흘러서 나오는 이야기로는 경총의 압박과 청와대의 입김에 의해 공익위원안이 아주 공허(空虛)하다고 한다.

    늘 그러했듯이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문구로 치장되어 노사정위 활동기록에나 남을 수밖에 없는 가이드라인이라고 한다면, 노사정위의 존재가치는 다시 한번 반문해야 할 것이고 공익위원에 대한 사회적 질타 또한 매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순간에도 이들의 상식과 양심을 기대해보는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절박한 삶의 현실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가 이번에도 결국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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