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승소해도 감옥 가는 더러운 세상
    2011년 05월 11일 05:03 오후

Print Friendly

여기 두 명의 젊은이가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라는 골리앗에 맞서 싸운 다윗입니다. 성서에서는 다윗이 이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젊은이는 삼성과 더불어 한국 최대의 재벌이자 세계 자동차 5위인 현대자동차와 정몽구 회장 일가에 ‘감히’ 맞섰습니다.

두 청년은 울산공장의 최병승과 아산공장의 김준규입니다. 이들은 대법원과 고등법원에서 현대차와 김앤장을 상대로 싸워 이겼고, 현대차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차가 이들에게 가한 탄압은 가혹했습니다.

최병승은 5월 5일 어린이날 사랑하는 딸아이에게 가지 못한 채 수배생활을 하고 있으며, 김준규는 5월 8일 어버이날 안동에 계시는 늙으신 부모님께 꽃 한 송이 달아드리지 못하고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현대차 재벌에 맞섰다는 이유로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해고자 최병승(35).
그는 2002년 3월 13일 울산 1공장에 사내하청 노동자로 들어가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2005년 2월 2일 해고되었습니다. 2003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만들어졌고, 2004년 노동부는 울산공장 101개 사업장에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당시 노조 사무국장으로 회사와 불법파견 특별교섭도 했지만 회사는 노동부 판결을 무시했고, 그는 2006년 7~8월 파업으로 구속됐습니다.

그는 석방된 이후에도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을 계속했고, 현대미포조선의 사내하청 용인기업 노동자가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하자, 2009년 지역 대책위를 구성해 싸웠습니다. 그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고소고발로 현대차 공장 안에서 수배생활을 하다가 2009년 5월 16일 경비대에 의해 공장 밖으로 끌려 나갔고, 동부경찰서 형사들에게 넘겨져 두 번째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1심에서 1년 10월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 현대차 건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현대미포조선 건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아 2010년 1월 출소하였습니다. 그의 집행유예는 2012년 10월에야 끝납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그는 금속노조 비정규국장으로 서울로 올라와 생활했습니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심과 2심 법원도 그를 외면했습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 그는 “사내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참가인이 사업장에 파견되어 참가인으로부터 직접 노무지휘를 받는 근로자파견에 있었다”며 현대차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지회 조합원들의 상경투쟁 모습(사진=금속노조) 

두 번 구속되고, 이제는 끝 없는 수배생활

그는 ‘금속노조 불법파견 정규직화 특별대책팀’을 구성해 울산과 전국을 오가며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온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2010년 11월 15일부터 시작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25일간의 파업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공장 밖에 있었는데도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6개월이 넘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5월 5일 사랑하는 딸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5월 8일 부모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2011년 2월 10일 파기환송된 서울고등법원에서 모두 현대차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회사는 재상고를 했습니다. 대법에서 회사의 재상고가 기각되고, 회사가 그에게 출근하라고 해도 그는 출근할 수가 없습니다.

내년 말까지 집행유예 기간이기 때문에 지금 들어가면 언제 나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출근하지 않아 다시 해고가 되겠지요. 현대차는 영원히 그를 직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어버이날 앞두고 구속된 비정규직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해고자 김준규(38).
그는 어버이날을 이틀 앞둔 5월 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실형 1년 6월을 선고받아 그 자리에서 법정 구속되었습니다. 2009년 12월 철도노조 파업으로 민주노총 건물이 경찰에 의해 둘러싸여 있을 때 그는 검문하는 경찰의 명령을 거부하고, 경찰을 치었다는 어거지를 이유로 그 자리에서 연행되었습니다. 해당 경찰은 병원에서 진단서도 끊어주지 않자 경찰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는 등 공적인 권력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장실질심사에서 풀려났지만, 1심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이 유죄로 인정되어 실형 1년6월을 받았는데, 판사가 항소심까지 구속을 유예하였고, 이날 고등법원에서 다시 실형이 확정되었습니다. 현대차 자본에 찍혀 수많은 고소고발 건으로 처벌을 받았던 그는 많은 전과에 누범 기간이어서 집행유예를 받기 어려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1년 5월 26일, 김준규는 현대차 아산공장 태승기업에 입사해 소나타 용접공정에서 일하다 2003년 6월 3일 해고되었습니다. 2003년 3월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그는 회계감사를 맡았습니다. 회사는 그를 고소․고발했고, 6개월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현대차에 찍힌 그에게 시련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2006년 정몽구 회장이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정몽구를 구속하라”고 외치다 경비대와 직원들에 의해 짓밟혀야 했습니다. 현대차는 출입금지가처분신청, 업무방해, 경비폭행 등 수차례 그를 고소․고발했습니다.

현대차를 처음으로 이긴 비정규직

그는 현장에 있을 때 모아두었던 자료, 사진과 정규직 간부들에게 받은 회사의 문서 등 모든 자료를 다 끌어 모았습니다. 정규직노조와 회사와의 합의서, 회사가 직접 업무지시를 했던 내용 등 현대차의 불법 자료가 모두 그의 손에 있었습니다.

그는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고, 2007년 6월 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승소했습니다. 비정규직이 현대차를 상대로 처음 이겼습니다. 그리고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하급심의 엇갈린 판결을 정리하였고, 이어 11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은 재차 그에게 현대차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현대차는 김준규 항소심에서 “근로자파견 관계가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계속근로기간 2년이 경과하지 않았다”며 비정규직만 근무하는 태승기업 무빙라인 6개월과 결근 기간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2001년 5월 23일 입사해 2003년 6월 3일 해고된 김준규는 2년 10일을 일했는데, 그 10일 때문에 정규직으로 간주되는 것이 싫은 현대차가 치사하게도 결근일까지 계산해 2년이 안됐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원고 김준규의 대영기전 근무기간 동안 피고 주장과 같은 결근 등의 사정이 일부 있다고 하여 그 기간을 근로자파견기간에서 제외할 것도 아니다.”라며 김준규는 2003년 5월 25일부터 현대차 근로자의 지위에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올해 대법원에서 현대차 정규직이라는 판결이 나고, 회사가 출근을 하라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현대차가 노동부 판결 이후 정규직화 했다면?

현대차가 이 두 노동자들이 2년이 지난 2003~2004년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면 이들은 감옥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2004년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을 때 정규직으로 채용했다면, 늦어도 2007년 6월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2년 이상 사내하청은 현대차 근로자라는 첫 판결이 났을 때라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면 이들은 지금 구속과 수배생활을 하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백 번을 양보해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의 판결 이후 노사 교섭을 통해 정규직화를 약속했다면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대차 자본은 정말로 잔인하고 악랄합니다. 김준규와 최병승은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했어야 할 자리에 비정규직을 채용해 불법 파견과 착취를 일삼아 온 현대차 재벌에 맞서 1만 명에 달하는 현대차 비정규직, 나아가 850만 비정규직을 위해 싸움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 대가로 헤아릴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젊은 노동자가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각계각층에 호소합니다.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 깨어 있는 각계각층의 양심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가난하고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싸우다 영어의 몸이 되어버린 두 젊은이가 사랑하는 이들의 곁으로 하루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간절히 호소 드립니다.

탄원서 작성 동참하기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